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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가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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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가져온 문서/자유인사전]] [[외부:https://i.imgur.com/3WlRunR.jpg|width=300px]] >알에서 나오는 것, 태에서 나오는 것, 습한 곳에서 나오는 것, 화해서 나오는 것, 형색이 있는 것, 형색이 없는 것, 생각이 있는 것, 생각이 없는 것, 생각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닌 이 모든 중생들을 내가 무여열반으로 이끌어 이들을 열반으로 넘게 하리라 하여 수 없이 많은 중생들을 열반에 들게 하였으나, 실로 열반에 든 중생이 아무것도 없다. >---- >석가모니, 금강경 제3분 대승정종분에서 釋迦牟尼 / Gautama Buddha 불교의 창시자. 줄여서 석가라고도 한다. 본명은 고타마 싯다르타다. 생애에 자신만의 철학과 종교관을 설법한 부처로, 그의 깨달음과 철학과 종교관은 그 당시에 그가 처음으로 설한 신선한 사상이였고, 많은 사람들이 이에 감명받았기 때문이다. 기원전 500~600 년 사이에 태어나서 80세에 죽었다. == 삶 == === 탄생 설화 === 인도 북부 네팔과 가빠운 히말라야 산 부근의 샤카족이 세운 카필라 왕국의 수도다나 왕과 마야부인 사이에서 생겼다. 출산을 위해 마야부인이 자신의 친정으로 향하던 중 룸비니 꽃동산에서 쉬었다. 쉬다가 일어나서 무우수가 너무 예쁘게 피어있어 오른팔로 그 가지를 꺾으려고 하는 순간 싯다르타가 마야부인의 팔을 뻗은 오른쪽 옆구리에서 오른팔을 들고 쑥 나와서 스스로 일어서서 사방을 가르키며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라 했다. 주류 해석으로, 사람이 옆구리에서 나왔다는것은 인도의 사상으로 볼 때, 왕족을 의미한다. 인도의 원시 종교의 신화에서 신명을 전할 사람은 신의 머리에서, 금속으로 무기를 만들어 국가를 지배할 사람들은 신의 옆구리에서, 그들에게 순종할 사람들은 신의 배에서, 이민족이였다가 정복당할 사람은 신의 발바닥에서 나왔다고 한다. 스스로 일어나 걸어 유아독존이라고 한 것은 석가모니가 스스로 의지함 없이 존귀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 인도 샤카족의 땅 카필라의 룸비니에서 왕자로 태어났다. 무사 계급의 왕족인 그는 몸이 약해 단련을 잘 못했다. 어느 날 카필라 성의 북문을 산책하면서 성 외곽의 여러 병자들이 죽어나가는걸 보고 자기가 병에 잘걸리고 허약해서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스트레스를 받아 가출해서 뜬금없이 수행을 시작한다. 그는 수행을 한다며 나갔으면서도 고행에 힘겨워 하다가 여러 고행자들이 죽어나가는걸 보고 포기한 뒤 보리수나무 아래에서 참선을 하다 깨달음을 얻고 데뷔를 한다.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고통받는다. 사람을 죽음으로 들이미는 것은 모든 실체가 있는 것들이고 내가 그것들을 갖지도, 놓지도 않고 그저 마음을 두지 않고 바르게 마음을 갖고 행동하며 살면 고통에서 벗어나는 경지에 오른다며 같이 동행하던 행자들을 자기 제자로 삼았다. 인도 북부 전역에 그의 열반의 경지에 대한 소문이 퍼지면서 그는 행자들의 최고의 지도자가 되었다. 여러 나라의 국왕들을 자기의 제자로 삼기도 했는데 마가다 국의 빔비사라와 뛰어난 사촌동생 아난다 등을 자신의 제자로 받았고 후에 기원정사라는 사당에서 여러 제자들을 앉혀놓고 자기는 옆으로 누워서 건방진 사자후를 펼쳤다. 이로써 진정한 지존이 되었다. 죽을땐 자연사 하였다. 죽기 전까지는 자주 설사와 열에 시달렸다. 지금도 남방불교에선 스님들이 먹을것을 전부 탁발로 해결하는 엄격한 규칙이 있는데, 뭘 주든 전부 다 먹어야 한다. 그게 설령 고기라도 먹어야한다. 당시도 석가모니는 밥을 빌어서 하루 끼니를 모두 해결했는데, 상하거나 식중독균에 오염된 고기를 먹을 때가 자주 있었던 모양이다. 그가 가장 아끼던 제자중 한명이자, 역시 혈연이던 제바달다는 사교화된 자신의 교단을 만들어 독립했다. 그러나 얼마 못가 사라졌다. 일단 행자들이 포교를 위해 여행을 할 여력이 없었다. 제바달다 교단은 행자들을 또다시 지독한 규율과 고행의 늪으로 빠뜨렸기 때문이다. 색을 보지 않는 수행을 한다는 본질을 망각하고 온갖 색으로 도배한 사교를 만든 것이다. 그리고 그 물거품과 같은 색들에 의해 저절로 망했다. 흔히들 스님들이 결혼을 하지 않고 관계도 하지 않으니 부처님도 그렇다고 생각하는데, 그가 출가하기 전에 이미 부인이랑 결혼하고 관계를 하여 아들도 낳았다. 아들 역시 자기 제자로 편입시켰다. 이 석가모니의 아들이 라훌라이다. == 사상 == 그는 지금 존재하는 모든 종교와 차원이 다른 구원관을 가지고 있다. 사실 구원관이 없다. 그는 그 자신을 메시아로 칭하지 않았고, 죽을 때도 부활이나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죽은게 아니라, 그냥 사람들 죽듯이 죽었다. 그의 가장 큰 가르침은 사람 뿐만 아닌 모든 종류의 중생들은 깨달아서 부처가 될 수 있으며, 그 깨달음은 자신이 얻는 것이라고 했다. 이런 깨달음을 얻으면 죽음을 두려워하는 고통도 없다고 하고 있다. 이런 죽음을 초월한 사람들 중에는 안락사를 찬성하는 큰 병에 시달리는 환자들도 많다. 사람은 죽기전까지 죽음의 공포에 떨면서 살지만, 막상 죽음을 코앞에 두게 되면 사람은 초연해질 수 있는 것이다. == 불상 == 그렇게 며칠을 굶어가면서 참선을 했으나, 중국 등지에서 만든 불상은 그렇지 않은 후덕한 인상이다. 지역차이가 큰데 고대 인도 등에서 만들어진 불상은 엄청 말라서 갈비뼈만 보이는 느낌에다가 얼굴도 선이 뚜렷한 인도 아리아인의 느낌이다. 미학적으로 간다라형이라고 한다. 중국에서 넘어오면서 동양인의 눈코입과 후덕한 밑턱살과 뱃살이 튀어나오게 되었다. 또 가슴이 크다. 불교권이 아닌 서방에선 이런 가슴이 큰 부처가 유명하다. 은근히 여성처럼 묘사되기도 한다. 불교용품점에서 부처의 초상화라고 걸어놓은 것이 무슨 화장한 여인네가 걸려있기도. 화강암이 많은 동북아지역에선 돌부처가 짜세였는데 시대가 지날수록 돌부처보다 금속제에 금박을 씌운 금부처상을 만든게 더 세련된 트렌드가 된다. 그리고 이런 금속형 부처들이 녹이 스는 것을 막기 위해 실내(석가모니상은 대웅전)로 넣었다. 석가모니불은 보리수나무에서 가부좌를 하고 참선하던 자세를 하고 있거나 가부좌를 한 상태에서 오른손의 손가락을 살짝 땅을 짚는 손모양을 하고있다. 이 땅을 살짝 짚는 손모양이 바로 부처가 깨달음을 얻는 도중 사마의 방해를 땅을 짚어 사라지게 했다는 항마촉지인이다. 땅을 짚는다는 표현은 매우 의미가 깊은데, 불교에서 말하는 연기설과 관계가 매우 깊다. 우리의 땅은 일체 중생들의 삶처럼 그 일체 중생들에게 밟히고, 가진 것을 빼앗기고, 침뱉음 당하고, 심지어 오염당한다. 하지만 그 일체 중생들은 그들이 서있거나 앉아있거나 누워있는 땅 없이는 살아갈 수 없다. 항마촉지인은 단순히 마귀를 쫓는 수인이 아니라, 모든 중생들이 이러한 관계에 서로 얽혀있고, 그것으로 오는 고통에 대한 연민으로 쓰담아 주는 것을 나타낸다. 뒤통수 뒤에는 수레바퀴라고 하는데 아우라나 헤일로로 보이기도 한다. == 예수 == 예수보다 몇 백년 전에 나타났으나 역사적인 내용은 예수보다 자세하고 많다. 족보도 확실하다. 어쨌든 무언가 깨달은 위치에 있고, 많은 제자를 두었고, 기존 종교에 대해 회의를 느끼고 자신의 길을 닦은 모습같은 공통점들이 많다. 시대가 달라서 아쉬운 같은 성향의 종교인들이다. 같은 시대에 살아서 토론까지 했다면 볼만 했을 것. == 조선 == 조선시대에는 숭유억불로 인해 크게 탄압받았다. 실제로 정도전은 불교에 대한 비판을 담은 불씨잡변이라는 책도 썼다. == 영상 == [youtube(IjfyynhmwJc)] [Include(틀:가져옴,O=자유인사전, C=[[https://creativecommons.org/licenses/by-nc-sa/3.0/deed.ko|CC BY-NC-SA 3.0]], L=[[http://web.archive.org/web/20201020152954/https://licentium.net/wiki/%EC%84%9D%EA%B0%80%EB%AA%A8%EB%8B%88|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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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가져온 문서/자유인사전]] [[외부:https://i.imgur.com/3WlRunR.jpg|width=300px]] >알에서 나오는 것, 태에서 나오는 것, 습한 곳에서 나오는 것, 화해서 나오는 것, 형색이 있는 것, 형색이 없는 것, 생각이 있는 것, 생각이 없는 것, 생각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닌 이 모든 중생들을 내가 무여열반으로 이끌어 이들을 열반으로 넘게 하리라 하여 수 없이 많은 중생들을 열반에 들게 하였으나, 실로 열반에 든 중생이 아무것도 없다. >---- >석가모니, 금강경 제3분 대승정종분에서 釋迦牟尼 / Gautama Buddha 불교의 창시자. 줄여서 석가라고도 한다. 본명은 고타마 싯다르타다. 생애에 자신만의 철학과 종교관을 설법한 부처로, 그의 깨달음과 철학과 종교관은 그 당시에 그가 처음으로 설한 신선한 사상이였고, 많은 사람들이 이에 감명받았기 때문이다. 기원전 500~600 년 사이에 태어나서 80세에 죽었다. == 삶 == === 탄생 설화 === 인도 북부 네팔과 가빠운 히말라야 산 부근의 샤카족이 세운 카필라 왕국의 수도다나 왕과 마야부인 사이에서 생겼다. 출산을 위해 마야부인이 자신의 친정으로 향하던 중 룸비니 꽃동산에서 쉬었다. 쉬다가 일어나서 무우수가 너무 예쁘게 피어있어 오른팔로 그 가지를 꺾으려고 하는 순간 싯다르타가 마야부인의 팔을 뻗은 오른쪽 옆구리에서 오른팔을 들고 쑥 나와서 스스로 일어서서 사방을 가르키며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라 했다. 주류 해석으로, 사람이 옆구리에서 나왔다는것은 인도의 사상으로 볼 때, 왕족을 의미한다. 인도의 원시 종교의 신화에서 신명을 전할 사람은 신의 머리에서, 금속으로 무기를 만들어 국가를 지배할 사람들은 신의 옆구리에서, 그들에게 순종할 사람들은 신의 배에서, 이민족이였다가 정복당할 사람은 신의 발바닥에서 나왔다고 한다. 스스로 일어나 걸어 유아독존이라고 한 것은 석가모니가 스스로 의지함 없이 존귀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 인도 샤카족의 땅 카필라의 룸비니에서 왕자로 태어났다. 무사 계급의 왕족인 그는 몸이 약해 단련을 잘 못했다. 어느 날 카필라 성의 북문을 산책하면서 성 외곽의 여러 병자들이 죽어나가는걸 보고 자기가 병에 잘걸리고 허약해서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스트레스를 받아 가출해서 뜬금없이 수행을 시작한다. 그는 수행을 한다며 나갔으면서도 고행에 힘겨워 하다가 여러 고행자들이 죽어나가는걸 보고 포기한 뒤 보리수나무 아래에서 참선을 하다 깨달음을 얻고 데뷔를 한다.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고통받는다. 사람을 죽음으로 들이미는 것은 모든 실체가 있는 것들이고 내가 그것들을 갖지도, 놓지도 않고 그저 마음을 두지 않고 바르게 마음을 갖고 행동하며 살면 고통에서 벗어나는 경지에 오른다며 같이 동행하던 행자들을 자기 제자로 삼았다. 인도 북부 전역에 그의 열반의 경지에 대한 소문이 퍼지면서 그는 행자들의 최고의 지도자가 되었다. 여러 나라의 국왕들을 자기의 제자로 삼기도 했는데 마가다 국의 빔비사라와 뛰어난 사촌동생 아난다 등을 자신의 제자로 받았고 후에 기원정사라는 사당에서 여러 제자들을 앉혀놓고 자기는 옆으로 누워서 건방진 사자후를 펼쳤다. 이로써 진정한 지존이 되었다. 죽을땐 자연사 하였다. 죽기 전까지는 자주 설사와 열에 시달렸다. 지금도 남방불교에선 스님들이 먹을것을 전부 탁발로 해결하는 엄격한 규칙이 있는데, 뭘 주든 전부 다 먹어야 한다. 그게 설령 고기라도 먹어야한다. 당시도 석가모니는 밥을 빌어서 하루 끼니를 모두 해결했는데, 상하거나 식중독균에 오염된 고기를 먹을 때가 자주 있었던 모양이다. 그가 가장 아끼던 제자중 한명이자, 역시 혈연이던 제바달다는 사교화된 자신의 교단을 만들어 독립했다. 그러나 얼마 못가 사라졌다. 일단 행자들이 포교를 위해 여행을 할 여력이 없었다. 제바달다 교단은 행자들을 또다시 지독한 규율과 고행의 늪으로 빠뜨렸기 때문이다. 색을 보지 않는 수행을 한다는 본질을 망각하고 온갖 색으로 도배한 사교를 만든 것이다. 그리고 그 물거품과 같은 색들에 의해 저절로 망했다. 흔히들 스님들이 결혼을 하지 않고 관계도 하지 않으니 부처님도 그렇다고 생각하는데, 그가 출가하기 전에 이미 부인이랑 결혼하고 관계를 하여 아들도 낳았다. 아들 역시 자기 제자로 편입시켰다. 이 석가모니의 아들이 라훌라이다. == 사상 == 그는 지금 존재하는 모든 종교와 차원이 다른 구원관을 가지고 있다. 사실 구원관이 없다. 그는 그 자신을 메시아로 칭하지 않았고, 죽을 때도 부활이나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죽은게 아니라, 그냥 사람들 죽듯이 죽었다. 그의 가장 큰 가르침은 사람 뿐만 아닌 모든 종류의 중생들은 깨달아서 부처가 될 수 있으며, 그 깨달음은 자신이 얻는 것이라고 했다. 이런 깨달음을 얻으면 죽음을 두려워하는 고통도 없다고 하고 있다. 이런 죽음을 초월한 사람들 중에는 안락사를 찬성하는 큰 병에 시달리는 환자들도 많다. 사람은 죽기전까지 죽음의 공포에 떨면서 살지만, 막상 죽음을 코앞에 두게 되면 사람은 초연해질 수 있는 것이다. == 불상 == 그렇게 며칠을 굶어가면서 참선을 했으나, 중국 등지에서 만든 불상은 그렇지 않은 후덕한 인상이다. 지역차이가 큰데 고대 인도 등에서 만들어진 불상은 엄청 말라서 갈비뼈만 보이는 느낌에다가 얼굴도 선이 뚜렷한 인도 아리아인의 느낌이다. 미학적으로 간다라형이라고 한다. 중국에서 넘어오면서 동양인의 눈코입과 후덕한 밑턱살과 뱃살이 튀어나오게 되었다. 또 가슴이 크다. 불교권이 아닌 서방에선 이런 가슴이 큰 부처가 유명하다. 은근히 여성처럼 묘사되기도 한다. 불교용품점에서 부처의 초상화라고 걸어놓은 것이 무슨 화장한 여인네가 걸려있기도. 화강암이 많은 동북아지역에선 돌부처가 짜세였는데 시대가 지날수록 돌부처보다 금속제에 금박을 씌운 금부처상을 만든게 더 세련된 트렌드가 된다. 그리고 이런 금속형 부처들이 녹이 스는 것을 막기 위해 실내(석가모니상은 대웅전)로 넣었다. 석가모니불은 보리수나무에서 가부좌를 하고 참선하던 자세를 하고 있거나 가부좌를 한 상태에서 오른손의 손가락을 살짝 땅을 짚는 손모양을 하고있다. 이 땅을 살짝 짚는 손모양이 바로 부처가 깨달음을 얻는 도중 사마의 방해를 땅을 짚어 사라지게 했다는 항마촉지인이다. 땅을 짚는다는 표현은 매우 의미가 깊은데, 불교에서 말하는 연기설과 관계가 매우 깊다. 우리의 땅은 일체 중생들의 삶처럼 그 일체 중생들에게 밟히고, 가진 것을 빼앗기고, 침뱉음 당하고, 심지어 오염당한다. 하지만 그 일체 중생들은 그들이 서있거나 앉아있거나 누워있는 땅 없이는 살아갈 수 없다. 항마촉지인은 단순히 마귀를 쫓는 수인이 아니라, 모든 중생들이 이러한 관계에 서로 얽혀있고, 그것으로 오는 고통에 대한 연민으로 쓰담아 주는 것을 나타낸다. 뒤통수 뒤에는 수레바퀴라고 하는데 아우라나 헤일로로 보이기도 한다. == 예수 == 예수보다 몇 백년 전에 나타났으나 역사적인 내용은 예수보다 자세하고 많다. 족보도 확실하다. 어쨌든 무언가 깨달은 위치에 있고, 많은 제자를 두었고, 기존 종교에 대해 회의를 느끼고 자신의 길을 닦은 모습같은 공통점들이 많다. 시대가 달라서 아쉬운 같은 성향의 종교인들이다. 같은 시대에 살아서 토론까지 했다면 볼만 했을 것. == 조선 == 조선시대에는 숭유억불로 인해 크게 탄압받았다. 실제로 정도전은 불교에 대한 비판을 담은 불씨잡변이라는 책도 썼다. == 영상 == [youtube(IjfyynhmwJc)] [Include(틀:가져옴,O=자유인사전, C=[[https://creativecommons.org/licenses/by-nc-sa/3.0/deed.ko|CC BY-NC-SA 3.0]], L=[[http://web.archive.org/web/20201020152954/https://licentium.net/wiki/%EC%84%9D%EA%B0%80%EB%AA%A8%EB%8B%88|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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