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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우스 엑스 마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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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생 == 데우스 엑스 마키나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Poetics), 호라티우스의 시학(Ars Poetica) 등에서 언급되는 표현으로, 데우스 엑스 마키나를 직접 언급한 것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을 그리스어에서 라틴어로 번역한 책에서 나온 표현이다. 당시 그리스 사회에서 만연해있던 흥미 위주의 각종 막장드라마스러운 억지전개를 보이던 희곡이나 연극 무대 등은 이야기 전개보다 개개별의 자극적 소재를 남발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는데, 당연히 자극적인 소재를 남발하다보면 뒷감당이 되지 않기 때문에 이야기가 엉망이 되고, 종극이 다가와도 문제가 해결될 기미를 보이지 않을 수 밖에 없다. 그렇다고해서 문제를 벌려놓은 채로 극을 끝낼 수도 없기 때문에 생각해낸 것이 신을 소환해서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이었던 것이다. 하늘에서 신이 내려와 막장전개가 되고 있던 상황에 이런저런 지시를 해서 문제를 해결해버림으로서 문제를 해결했던 것이다. 극단적으로 예를 들어 주인공이 연애를 하다 A와 결혼하고 B라는 여자와 바람을 피다가 형수 C에게 들켜서 C를 덮쳐서 임신시키자 부인인 A가 자살하고 주인공의 형님이 주인공을 죽이려고 하는 찰나, 하늘에서 신이 내려와서 이렇게 명령하는 것이다. ‘괜히 피흘리지 말고 주인공은 C를 임신시켰으니 C와 결혼해 살고 주인공 형은 B와 결혼해서 살아라. 자살한 A는 불쌍하니 내가 별로 만들어주마’. 그러면 방금까지의 Nice Boat (나이스 보트)로 흘러가야 할 전개를 잊고, 신의 뜻을 받들어 인간들이 그 지시대로 행복하게 살면서 엔딩을 맞이하게 되는 것이다. 이 때 ‘하늘에서 신이 내려온다’라는 것을 연극 무대에서 표현하기 위해 도르레에 매달린 크레인를 타고 무대 위에서 신의 복장을 입은 사람이 내려오게 되는데, 이를 두고 기계장치에서 나온 신, 즉 데우스 엑스 마키나라 부른다. 그리스 시대에는 이러한 형태의 희곡이 상당수를 차지했는데, 이 때문에 문학적인 시점에서 이러한 전개를 반대한 사람도 적잖이 있었으나 흥미위주의 전개를 즐거워하는 대중과, 신앙과 생활이 분리되지 않은 생활을 하던 그리스였기 때문에 이러한 작품의 인기는 매우 높은 편이었다. 그리스 3대 비극작가의 한 사람인 에우리피데스의 희곡에서는 빠지지 않고 데우스 엑스 마키나를 통한 문제 해결을 보여준다. 심지어는 오디세이아에서도 마지막에 오디세우스에 의해서 참살된 혼인청원자들의 가족이 복수를 하려 하자, 아테나가 등장해서 중재하는 장면이 나온다. 아래는 아리스토 텔레스가 시학에 남긴 글의 내용이다. >In the characters too, exactly as in the structure of the incidents, [the poet] ought always to seek what is either necessary or probable, so that it is either necessary or probable that a person of such-and-such a sort say or do things of the same sort, and it is either necessary or probable that this [incident] happen after that one. > >사건의 구조를 다룰 때와 마찬가지로, 캐릭터를 다룰 때에도 [시]는 언제나 무엇이 필수적인지, 아니면 개연성이 있는지를 탐구하여야 한다. 그러한 것으로 이런저런 인물이나, 대사나, 행동이 필수성이나 개연성을 가질 수 있으며, 저러한 것으로 초래되는 [사건]이 일어날 때에도 필수성이나 개연성을 가질 수 있게 된다. > >It is obvious that the solutions of plots too should come about as a result of the plot itself, and not from a contrivance, as in the “Medea” and in the passage about sailing home in the “Iliad”. A contrivance must be used for matters outside the drama—either previous events which are beyond human knowledge, or later ones that need to be foretold or announced. For we grant that the gods can see everything. There should be nothing improbable in the incidents; otherwise, it should be outside the tragedy, e.g. that in Sophocles’ “Oedipus”. > >“메데아”에서나 “일리아드” 중 항해해서 돌아오는 길에 벌어지는 일처럼, 플롯이 해결되는 방식은 플롯 자체의 결과에서 와야 하며 억지스러운 전개를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건 명백하다. 억지스러운 전개는 반드시 극 바깥에서만 사용되어야 한다. 이는 인간의 지식을 넘어서는 곳에서 벌어지는 예전의 사건일 수도 있으며, 사전에 예언되었던 이후의 사건일 수도 있다. 그러면 우리는 “신들께선 모든 걸 볼 수 있으시다”라고 감사할 수 있을 것이다. 사건에는 반드시 개연성이 필요하며, 그렇지 않으면 적어도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처럼 비극의 바깥에서 개연성 없는 일이 벌어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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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생 == 데우스 엑스 마키나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Poetics), 호라티우스의 시학(Ars Poetica) 등에서 언급되는 표현으로, 데우스 엑스 마키나를 직접 언급한 것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을 그리스어에서 라틴어로 번역한 책에서 나온 표현이다. 당시 그리스 사회에서 만연해있던 흥미 위주의 각종 막장드라마스러운 억지전개를 보이던 희곡이나 연극 무대 등은 이야기 전개보다 개개별의 자극적 소재를 남발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는데, 당연히 자극적인 소재를 남발하다보면 뒷감당이 되지 않기 때문에 이야기가 엉망이 되고, 종극이 다가와도 문제가 해결될 기미를 보이지 않을 수 밖에 없다. 그렇다고해서 문제를 벌려놓은 채로 극을 끝낼 수도 없기 때문에 생각해낸 것이 신을 소환해서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이었던 것이다. 하늘에서 신이 내려와 막장전개가 되고 있던 상황에 이런저런 지시를 해서 문제를 해결해버림으로서 문제를 해결했던 것이다. 극단적으로 예를 들어 주인공이 연애를 하다 A와 결혼하고 B라는 여자와 바람을 피다가 형수 C에게 들켜서 C를 덮쳐서 임신시키자 부인인 A가 자살하고 주인공의 형님이 주인공을 죽이려고 하는 찰나, 하늘에서 신이 내려와서 이렇게 명령하는 것이다. ‘괜히 피흘리지 말고 주인공은 C를 임신시켰으니 C와 결혼해 살고 주인공 형은 B와 결혼해서 살아라. 자살한 A는 불쌍하니 내가 별로 만들어주마’. 그러면 방금까지의 Nice Boat (나이스 보트)로 흘러가야 할 전개를 잊고, 신의 뜻을 받들어 인간들이 그 지시대로 행복하게 살면서 엔딩을 맞이하게 되는 것이다. 이 때 ‘하늘에서 신이 내려온다’라는 것을 연극 무대에서 표현하기 위해 도르레에 매달린 크레인를 타고 무대 위에서 신의 복장을 입은 사람이 내려오게 되는데, 이를 두고 기계장치에서 나온 신, 즉 데우스 엑스 마키나라 부른다. 그리스 시대에는 이러한 형태의 희곡이 상당수를 차지했는데, 이 때문에 문학적인 시점에서 이러한 전개를 반대한 사람도 적잖이 있었으나 흥미위주의 전개를 즐거워하는 대중과, 신앙과 생활이 분리되지 않은 생활을 하던 그리스였기 때문에 이러한 작품의 인기는 매우 높은 편이었다. 그리스 3대 비극작가의 한 사람인 에우리피데스의 희곡에서는 빠지지 않고 데우스 엑스 마키나를 통한 문제 해결을 보여준다. 심지어는 오디세이아에서도 마지막에 오디세우스에 의해서 참살된 혼인청원자들의 가족이 복수를 하려 하자, 아테나가 등장해서 중재하는 장면이 나온다. 아래는 아리스토 텔레스가 시학에 남긴 글의 내용이다. >In the characters too, exactly as in the structure of the incidents, [the poet] ought always to seek what is either necessary or probable, so that it is either necessary or probable that a person of such-and-such a sort say or do things of the same sort, and it is either necessary or probable that this [incident] happen after that one. > >사건의 구조를 다룰 때와 마찬가지로, 캐릭터를 다룰 때에도 [시]는 언제나 무엇이 필수적인지, 아니면 개연성이 있는지를 탐구하여야 한다. 그러한 것으로 이런저런 인물이나, 대사나, 행동이 필수성이나 개연성을 가질 수 있으며, 저러한 것으로 초래되는 [사건]이 일어날 때에도 필수성이나 개연성을 가질 수 있게 된다. > >It is obvious that the solutions of plots too should come about as a result of the plot itself, and not from a contrivance, as in the “Medea” and in the passage about sailing home in the “Iliad”. A contrivance must be used for matters outside the drama—either previous events which are beyond human knowledge, or later ones that need to be foretold or announced. For we grant that the gods can see everything. There should be nothing improbable in the incidents; otherwise, it should be outside the tragedy, e.g. that in Sophocles’ “Oedipus”. > >“메데아”에서나 “일리아드” 중 항해해서 돌아오는 길에 벌어지는 일처럼, 플롯이 해결되는 방식은 플롯 자체의 결과에서 와야 하며 억지스러운 전개를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건 명백하다. 억지스러운 전개는 반드시 극 바깥에서만 사용되어야 한다. 이는 인간의 지식을 넘어서는 곳에서 벌어지는 예전의 사건일 수도 있으며, 사전에 예언되었던 이후의 사건일 수도 있다. 그러면 우리는 “신들께선 모든 걸 볼 수 있으시다”라고 감사할 수 있을 것이다. 사건에는 반드시 개연성이 필요하며, 그렇지 않으면 적어도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처럼 비극의 바깥에서 개연성 없는 일이 벌어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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