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편집
최근 토론
게시판 메인
도구
투표
무작위 문서
스킨 설정
파일 올리기
기타 도구
216.73.216.143
IP
사용자 도구
사용자 설정
로그인
회원 가입
최근 편집
최근 토론
돌아가기
삭제
이동
파일 올리기
세가 마스터 시스템
(편집) (1)
(편집 필터 규칙)
1805,3828
== 상세 == ‘세가 마스터 시스템’은 일본에서 발매된 세가 마크3 (SEGA MarkIII)를 해외에 선보이기 위해 일본 세가와 세가 어메리카가 공동으로 개발한 프로젝트였다. 동세대의 기기인 패밀리에 비해서 성능면에서는 더 우수한 편이었으나 이미 패밀리가 시장을 선점한 북미와 일본 시장에서는 큰 흥행을 거두지 못했다. 그러나 후에 발매된 유럽과 남미 시장에서는 저렴한 가격과 세가의 게임들, 특히 소닉, 베어너클 등의 유명 게임의 발매에 힘입어 큰 히트를 기록했다. 발매 이듬해인 1998년 세가의 거치형 게임기 후속기종인 메가드라이브(メガドライブ, Megadrive)가 선보였음에도 불구하고, 세가의 휴대용 게임기 게임기어와의 스펙 호환성을 통해서 소프트웨어 생명을 연장, 1995년까지 꾸준하게 게임을 공급해 대 히트를 기록했다. 최종적으로는 유럽과 남미 지역에서의 대 히트를 기반으로 1500만대 가량의 보급률을 보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며, 일본에서도 100만대가 넘는 보급을 성공했다고 전해진다. 이 흥행은 하위호환 기능을 포함한 후속기종인 메가드라이브로 자연스럽게 이어갈 수 있었다. 사실상 세가의 최대 히트기종은 메가드라이브가 아닌 마스터 시스템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 당시 유럽과 남미에서 차지한 시장 비율은 마스터 시스템이 대략 90%가량의 쉐어를 차지했다고 전해진다. 물론 유럽과 남미의 판매량을 감안해도 당시 압도적인 판매량을 기록했던 패밀리 앞에서는 승리를 선언할 수 없었던 것은 사실이다. 판매량 대결 면에서는 1:5정도로 닌텐도의 승리였다. 이는 게임기 시장의 태반을 차지하는 북미시장과 일본 시장을 고스란히 닌텐도에게 빼았겼기 때문이다. 유럽시장과 반대로 90%의 시장 쉐어를 닌텐도가 차지한 주요 시장에서 세가가 득세하는 것은 아직 시기상조로 보이는 것이 사실이었다. 하지만 세가라는 브랜드가 사실상 붕괴되고 세가 사미로 통합된 지금도 유럽에서 ‘소닉’이라고 하면 꿈벅 죽는 이유는 바로 이 시기에 마스터 시스템을 통해 소닉이라는 캐릭터를 많은 이들에게 각인시켰기 때문이다. 일본에서 ‘마리오’와 ‘젤다’라는 게임이 가지는 위상 전체를 소닉이 점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세가의 최고히트 게임기인 마스터 시스템은 타 기기와 달리 기기간 이동을 자연스럽게 잘 이행한 것으로 유명하다. 세가 SG-1000 → 세가 마크3 (SEGA MarkIII)/세가 마스터 시스템 → 게임기어로 이어지는 완벽한 호환성 및 소프트웨어 이식성 확보와 후속기종인 메가드라이브(メガドライブ, Megadrive)로의 부드러운 세대 이전은 게임업계가 황금률로 삼았던 모델 그 자체라 할 수 있으며, 가정용 게임기 사업을 행하던 세가의 황금기 그 자체였다.[* 이렇게 완벽한 세대 이전을 한번 해놓고도 세가새턴(Sega Saturn, セガサターン)에서 완전 깽판을 쳐 자기 시장을 붕괴시킨 세가는 여러모로 좀 정신 못차리는 회사라고 밖에 생각할 수가 없다.] 이 전개 방식은 소니의 플레이스테이션 사업에서 상당부분 차용되어 플레이스테이션1 → 플레이스테이션2 → 플레이스테이션 포터블(Playstation Portable)로 이어지는 유사 아키텍쳐의 재활용과 하위호환 유지 형태를 보여주었다.[* 그리고 소니도 이후 MIPS의 몰락과 함께 플레이스테이션3 (Playstation3)라는 희대의 실수패를 잡아 뽑으니… 동일 아키텍쳐에 기반한 세대 이전은 2번까지만 가능한 것이 아닌가 의구심을 한번쯤 품어볼 만도 하다.] 물론 그 과정이 세가가 거저 주워먹었다는 것은 아니다. 세가는 마스터 시스템 발매 후 메가드라이브 시스템을 발매, 16비트 대결을 펼치는 가운데서도 마스터 시스템의 라인업을 끊지 않고 꾸준히 유지, 무려 1998년까지 미력하게나마 게임을 발매해주었다. 또한 히트에 따라 불필요한 기능을 삭제한 저가형 모델을 두 차례나 선보였으며, 마스터 시스템과 사실상 호환되는 휴대용 게임기 게임기어를 선보이는 등 흥행을 유지하는 다양한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시장의 1위는 점거하지 못했지만 세가에게 ‘가정용 게임기에서의 가능성’을 보여준 성공사례였기에 그 의미는 결코 작지 않다.
(임시 저장)
(임시 저장 불러오기)
기본값
모나코 에디터
normal
namumark
namumark_beta
macromark
markdown
custom
raw
(↪️)
(💎)
(🛠️)
(추가)
== 상세 == ‘세가 마스터 시스템’은 일본에서 발매된 세가 마크3 (SEGA MarkIII)를 해외에 선보이기 위해 일본 세가와 세가 어메리카가 공동으로 개발한 프로젝트였다. 동세대의 기기인 패밀리에 비해서 성능면에서는 더 우수한 편이었으나 이미 패밀리가 시장을 선점한 북미와 일본 시장에서는 큰 흥행을 거두지 못했다. 그러나 후에 발매된 유럽과 남미 시장에서는 저렴한 가격과 세가의 게임들, 특히 소닉, 베어너클 등의 유명 게임의 발매에 힘입어 큰 히트를 기록했다. 발매 이듬해인 1998년 세가의 거치형 게임기 후속기종인 메가드라이브(メガドライブ, Megadrive)가 선보였음에도 불구하고, 세가의 휴대용 게임기 게임기어와의 스펙 호환성을 통해서 소프트웨어 생명을 연장, 1995년까지 꾸준하게 게임을 공급해 대 히트를 기록했다. 최종적으로는 유럽과 남미 지역에서의 대 히트를 기반으로 1500만대 가량의 보급률을 보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며, 일본에서도 100만대가 넘는 보급을 성공했다고 전해진다. 이 흥행은 하위호환 기능을 포함한 후속기종인 메가드라이브로 자연스럽게 이어갈 수 있었다. 사실상 세가의 최대 히트기종은 메가드라이브가 아닌 마스터 시스템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 당시 유럽과 남미에서 차지한 시장 비율은 마스터 시스템이 대략 90%가량의 쉐어를 차지했다고 전해진다. 물론 유럽과 남미의 판매량을 감안해도 당시 압도적인 판매량을 기록했던 패밀리 앞에서는 승리를 선언할 수 없었던 것은 사실이다. 판매량 대결 면에서는 1:5정도로 닌텐도의 승리였다. 이는 게임기 시장의 태반을 차지하는 북미시장과 일본 시장을 고스란히 닌텐도에게 빼았겼기 때문이다. 유럽시장과 반대로 90%의 시장 쉐어를 닌텐도가 차지한 주요 시장에서 세가가 득세하는 것은 아직 시기상조로 보이는 것이 사실이었다. 하지만 세가라는 브랜드가 사실상 붕괴되고 세가 사미로 통합된 지금도 유럽에서 ‘소닉’이라고 하면 꿈벅 죽는 이유는 바로 이 시기에 마스터 시스템을 통해 소닉이라는 캐릭터를 많은 이들에게 각인시켰기 때문이다. 일본에서 ‘마리오’와 ‘젤다’라는 게임이 가지는 위상 전체를 소닉이 점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세가의 최고히트 게임기인 마스터 시스템은 타 기기와 달리 기기간 이동을 자연스럽게 잘 이행한 것으로 유명하다. 세가 SG-1000 → 세가 마크3 (SEGA MarkIII)/세가 마스터 시스템 → 게임기어로 이어지는 완벽한 호환성 및 소프트웨어 이식성 확보와 후속기종인 메가드라이브(メガドライブ, Megadrive)로의 부드러운 세대 이전은 게임업계가 황금률로 삼았던 모델 그 자체라 할 수 있으며, 가정용 게임기 사업을 행하던 세가의 황금기 그 자체였다.[* 이렇게 완벽한 세대 이전을 한번 해놓고도 세가새턴(Sega Saturn, セガサターン)에서 완전 깽판을 쳐 자기 시장을 붕괴시킨 세가는 여러모로 좀 정신 못차리는 회사라고 밖에 생각할 수가 없다.] 이 전개 방식은 소니의 플레이스테이션 사업에서 상당부분 차용되어 플레이스테이션1 → 플레이스테이션2 → 플레이스테이션 포터블(Playstation Portable)로 이어지는 유사 아키텍쳐의 재활용과 하위호환 유지 형태를 보여주었다.[* 그리고 소니도 이후 MIPS의 몰락과 함께 플레이스테이션3 (Playstation3)라는 희대의 실수패를 잡아 뽑으니… 동일 아키텍쳐에 기반한 세대 이전은 2번까지만 가능한 것이 아닌가 의구심을 한번쯤 품어볼 만도 하다.] 물론 그 과정이 세가가 거저 주워먹었다는 것은 아니다. 세가는 마스터 시스템 발매 후 메가드라이브 시스템을 발매, 16비트 대결을 펼치는 가운데서도 마스터 시스템의 라인업을 끊지 않고 꾸준히 유지, 무려 1998년까지 미력하게나마 게임을 발매해주었다. 또한 히트에 따라 불필요한 기능을 삭제한 저가형 모델을 두 차례나 선보였으며, 마스터 시스템과 사실상 호환되는 휴대용 게임기 게임기어를 선보이는 등 흥행을 유지하는 다양한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시장의 1위는 점거하지 못했지만 세가에게 ‘가정용 게임기에서의 가능성’을 보여준 성공사례였기에 그 의미는 결코 작지 않다.
비로그인 상태입니다. 편집한 내용을 저장하면 지금 접속한 IP가 기록됩니다.
편집을 전송하면 당신은 이 문서의 기여자로서 본인이 작성한 내용이
CC BY 4.0
에 따라 배포되고, 기여한 문서의 하이퍼링크나 URL로 저작자 표시가 충분하다는 것에 동의하는 것입니다.
전송
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