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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르되시 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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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애 == 폴 에르되시는 1913년, 헝가리 부다페스트의 유대인 가문에서 태어났다. 그의 두 누나는 어릴 때 성홍열로 죽고, 아버지가 러시아군대의 포로로 잡혀간다. 그래서 그의 어머니는 폴 에르되시에게 극도의 집착을 보이면서, 학교에 보내지 않고 가정교사로 교육을 시킨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숫자에 대한 천부적인 감각을 선보이고 스스로 음수의 개념을 깨달았다. 또한 네 살때 이미 알려져 있던 소수의 몇몇 성질을 발견했다고 한다. 1920년, 아버지가 돌아오고 그는 영어와 수학을 배운다. 참고로 그의 아버지는 포로수용소에서 얼마나 할일이 없었으면 영어를 파기 시작했다고 한다. 포로수용소에서 풀려난 뒤 그는 에르되시에게 자신이 독학한 영어를 가르쳐주었는데 이 때문에 자신의 발음이 엉망이 되버렸다고 에르되시는 주장했다. 1930년, 그는 헝가리의 유대인 입학 제한 조치에 불구하고 대학에 입학한다. 이 때 그는 대학교에서의 수학모임에 참가하였고 이 때 만난 친구들과 많은 연구를 하게 된다. 1938년, 미국 프린스턴 대학교에 자리를 잡는다. 그 이후 그는 떠돌이 생활을 시작한다. 이후 30년간 그는 여러대학에 자리를 잡고 있었지만, 특정한 대학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좋다고 생각되는 대학을 전전하는 떠돌이였다. 그는 집이 사람을 구속한다고 생각하여 집도 없었다. 그는 자신의 친구 또는 수학자의 집에 찾아가 몇일을 묵으며 수학에 대해 토론하다가 집 주인이 지치면 그 집을 나와 다른 집을 찾아다니는 생활을 했다. 그는 아이같은 성품을 가진 사람이었으며, 어린아이를 엡실론이라 부르며 좋아했다. 하지만 그는 수학 외에는 지식이 전무했다. 한 예로 그가 친구 그레이엄의 집에 있었을 때 그레이엄이 에르되시를 위해서 그가 좋아하는 자두를 사서 냉장고에 넣어놓고는 에르되시에게 꺼내먹으라고 말했다. 잠시 후 에르되시가 냉장고 앞에 서서 한참 고민을 하더니 그레이엄에게 "이건 어떻게 여는거냐."라고 물었다고 한다. 그는 수학을 매우 좋아했다. 그는 암페타민을 다량 복용하여 하루에 4~5시간 밖에 자지 않았다고 한다. 그가 수학을 매우 좋아하는 것을 보여주는 일화로 그는 누군가의 집에 머무르고 있을 때 이른 시간 자고 있는 집주인을 깨워 수학 이야기를 시작했다고 한다. 또한 그는 크리스마스날, 친구의 집에 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메리 크리스마스! n과 k가 1이 아닌 정수일 때..." 그는 1996년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학술회에서 강연을 하다 도중에 쓰러지는 사고가 발생한다. 하지만 그는 정신을 차린 뒤 강연을 마저 마친다. 그러나 그는 결국 몇 시간 뒤 심장마비로 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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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애 == 폴 에르되시는 1913년, 헝가리 부다페스트의 유대인 가문에서 태어났다. 그의 두 누나는 어릴 때 성홍열로 죽고, 아버지가 러시아군대의 포로로 잡혀간다. 그래서 그의 어머니는 폴 에르되시에게 극도의 집착을 보이면서, 학교에 보내지 않고 가정교사로 교육을 시킨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숫자에 대한 천부적인 감각을 선보이고 스스로 음수의 개념을 깨달았다. 또한 네 살때 이미 알려져 있던 소수의 몇몇 성질을 발견했다고 한다. 1920년, 아버지가 돌아오고 그는 영어와 수학을 배운다. 참고로 그의 아버지는 포로수용소에서 얼마나 할일이 없었으면 영어를 파기 시작했다고 한다. 포로수용소에서 풀려난 뒤 그는 에르되시에게 자신이 독학한 영어를 가르쳐주었는데 이 때문에 자신의 발음이 엉망이 되버렸다고 에르되시는 주장했다. 1930년, 그는 헝가리의 유대인 입학 제한 조치에 불구하고 대학에 입학한다. 이 때 그는 대학교에서의 수학모임에 참가하였고 이 때 만난 친구들과 많은 연구를 하게 된다. 1938년, 미국 프린스턴 대학교에 자리를 잡는다. 그 이후 그는 떠돌이 생활을 시작한다. 이후 30년간 그는 여러대학에 자리를 잡고 있었지만, 특정한 대학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좋다고 생각되는 대학을 전전하는 떠돌이였다. 그는 집이 사람을 구속한다고 생각하여 집도 없었다. 그는 자신의 친구 또는 수학자의 집에 찾아가 몇일을 묵으며 수학에 대해 토론하다가 집 주인이 지치면 그 집을 나와 다른 집을 찾아다니는 생활을 했다. 그는 아이같은 성품을 가진 사람이었으며, 어린아이를 엡실론이라 부르며 좋아했다. 하지만 그는 수학 외에는 지식이 전무했다. 한 예로 그가 친구 그레이엄의 집에 있었을 때 그레이엄이 에르되시를 위해서 그가 좋아하는 자두를 사서 냉장고에 넣어놓고는 에르되시에게 꺼내먹으라고 말했다. 잠시 후 에르되시가 냉장고 앞에 서서 한참 고민을 하더니 그레이엄에게 "이건 어떻게 여는거냐."라고 물었다고 한다. 그는 수학을 매우 좋아했다. 그는 암페타민을 다량 복용하여 하루에 4~5시간 밖에 자지 않았다고 한다. 그가 수학을 매우 좋아하는 것을 보여주는 일화로 그는 누군가의 집에 머무르고 있을 때 이른 시간 자고 있는 집주인을 깨워 수학 이야기를 시작했다고 한다. 또한 그는 크리스마스날, 친구의 집에 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메리 크리스마스! n과 k가 1이 아닌 정수일 때..." 그는 1996년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학술회에서 강연을 하다 도중에 쓰러지는 사고가 발생한다. 하지만 그는 정신을 차린 뒤 강연을 마저 마친다. 그러나 그는 결국 몇 시간 뒤 심장마비로 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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