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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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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세 == 3DO를 만든 3DO사는 일렉트로닉 아츠(Electronic Arts, EA)의 100% 출자로 만들어진 회사였다. 당시에도 수많은 게임과 특히 스포츠 장르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확보한 일렉트로닉 아츠는 PC와 게임기 시장에서 매우 큰 영향력을 미치고 있었다. PC와 병행개발을 하던 EA는 급속도로 커져가는 게임기 시장에도 참여는 하고 있었으나 플랫폼홀더가 요구하는 막대한 라이센스비용을 탐탁치 않게 여겼기에 좀 더 범용적이고 오픈된 게임 플랫폼을 추구했던 것으로 보인다. 때문에 3DO의 규격은 상당히 PC와 흡사한 규격화된 포멀한 구조를 가지고 설계되었으며, 앞서 설명했듯 기본적으로 3DO사에서 설계한 시스템을 비디오 플레이어처럼 라이센스를 받아서 생산해 판매하도록 기획되었다. 때문에 단독 업체가 설계, 생산, 판매를 일원화하고 동시에 게임 개발사의 서포트까지 함께하던 전세대까지의 타 게임기 시스템과는 확연히 구분된다. 3DO사를 기준으로 보자면, 상당히 중간적인 입장으로 플랫폼 홀더로서의 입장에 서 있기는 하지만 닌텐도 등의 독점으로 플랫폼을 관리하는 회사에 비해서 기기 라이센스 비용도 소프트 라이센스 비용도 파격적으로 낮은 비용을 부과했다고 한다. 특히 소프트쪽의 경우 수십 퍼센트 단위의 수수료를 떼어가던 과거의 플랫폼들과 달리 게임 한장당 겨우 3달러라는 파격적으로 낮은 로얄티를 부과했다고 한다. 1990년에 3DO사가 설립된 이후 1992년까지 설계와 OS등 기반 구축과정이 이뤄졌고, 마쯔시타(파나소닉)나 금성전자(현 LG) 등의 하드웨어 업체들이 3DO 컨소시엄에 참여해 실제 설계를 개선하는 과정을 거쳐 1993년 10월 4일, 미국에서 마쯔시타의 3DO REAL FZ-1을 시작으로 판매가 개시되었다. 일본에서는 이듬해인 1994년 3월 20일 발매되었고, 한국은 금성전자에서 만든 3DO 얼라이브가 1994년 10월 발매함으로서 3DO가 전 세계에서 세번째로 발매된 국가가 되었다. 그러나 화려했던 이상과 달리 3DO는 CD-i와 메가시디 (MEGA-CD, メガCD)를 뒤섞어 발전시킨 듯한 어정쩡한 스펙과 지나치게 높은 기기 가격, 부족한 소프트 라인업 등으로 인해 발매 직후에 조차 별로 반짝이지 못한채로[* 미국의 잡지 Electronic Gaming Monthly에서 ‘1993년 최악의 게임기 런칭(Worst Console Launch of 1993)‘이라는 불명예스런 타이틀을 받았다.] 지지부진한 상태가 계속되었다. 1994년 후반에 일본에서 판매가 개시될 세가새턴(Sega Saturn, セガサターン)과 플레이스테이션1과의 경쟁을 위해 마쯔시타는 염가판에 해당하는 3DO REAL FZ-10를 발표했고, 비슷한 시기에 산요에서도 3DO TRY를 선보였으나, 기본적인 스펙에 변화를 줄 수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그대로 시장에서 밀려나는 수순을 밟게 되었다. (이때문에 3DO 컨소시엄에 참여했던 삼성의 경우에는 기기 디자인까지는 완성되었으나 결국 기기 발매를 포기하게 됨) 1994년 말 경쟁 기종들이 시장에 출시된 후, 승승장구를 하며 팔려나가면서 시장에서는 아예 언급조차 되지 않을 정도로 사향길을 걷게되었다. 그나마 일본에서 1994년 말에 발매된 슈퍼 스트리트 파이터2X가 체면치례를 도왔고, 1995년 2월 사무라이 쇼다운, 1995년 4월 워프의 D의 식탁과, 코나미(KONAMI)에서 코지마 히데오가 직접 이식한 폴리스 노츠의 파일럿 디스크(본편은 9월) 등이 발매되면서 약간의 이슈가 되긴 했으나 경쟁 기종에서는 훨씬 커다란 이슈 타이틀들이 쏟아지면서 그야말로 묻혀버렸다. 근본적인 성능 부족에 대해서는 3DO 컨소시엄도 충분히 자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에 대한 해결책으로 ‘M2(가칭)‘라는 확장형 장비를 이용해 3DO를 강화시키는 프로젝트를 발족하게 된다. 이는 PC엔진에 CD-ROM과 슈퍼카드를 애드온해서 강화한 것과 비슷한 수순의 프로젝트였으나, 문제는 이 발표를 통해 3DO는 사실상 ‘버려진 기계’취급을 받으며 더더욱 외면당하는 계기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1996년 초에는 마쯔시타가 본격적으로 3DO를 게임기로서 밀어보겠다는 포부를 가지고 M2에대한 권리를 3DO사로부터 인수하고 ‘파나소닉 엔터테인먼트’를 설립, 3DO기기 가격을 낮춰 판매하는 등의 프로모션을 펼치면서 M2를 차세대기로서 본격적으로 홍보하기 시작했다. 이와 함께 3DO 사는 3DO에대한 모든 권리를 넘기고 1996년 사업 포기를 선언, 게임 유통 등으로 사업 전환을 모색하게 된다. 1997년에는 마쯔시타와 LG전자(구 금성전자)가 협력해 M2에대한 계획이 어느정도 결실을 거둬 M2 기기에대한 기본 설계가 완료되었으나, 애시당초 런칭부터 압도적이었던 미국 시장 뿐만 아니라 일본 시장에서조차 세가새턴을 제치고 승세로 돌아선 플레이스테이션1의 기세를 꺾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고 판단, 1997년 6월 마쯔시타는 게임기 사업 포기를 선언하고 백기를 들어올리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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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세 == 3DO를 만든 3DO사는 일렉트로닉 아츠(Electronic Arts, EA)의 100% 출자로 만들어진 회사였다. 당시에도 수많은 게임과 특히 스포츠 장르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확보한 일렉트로닉 아츠는 PC와 게임기 시장에서 매우 큰 영향력을 미치고 있었다. PC와 병행개발을 하던 EA는 급속도로 커져가는 게임기 시장에도 참여는 하고 있었으나 플랫폼홀더가 요구하는 막대한 라이센스비용을 탐탁치 않게 여겼기에 좀 더 범용적이고 오픈된 게임 플랫폼을 추구했던 것으로 보인다. 때문에 3DO의 규격은 상당히 PC와 흡사한 규격화된 포멀한 구조를 가지고 설계되었으며, 앞서 설명했듯 기본적으로 3DO사에서 설계한 시스템을 비디오 플레이어처럼 라이센스를 받아서 생산해 판매하도록 기획되었다. 때문에 단독 업체가 설계, 생산, 판매를 일원화하고 동시에 게임 개발사의 서포트까지 함께하던 전세대까지의 타 게임기 시스템과는 확연히 구분된다. 3DO사를 기준으로 보자면, 상당히 중간적인 입장으로 플랫폼 홀더로서의 입장에 서 있기는 하지만 닌텐도 등의 독점으로 플랫폼을 관리하는 회사에 비해서 기기 라이센스 비용도 소프트 라이센스 비용도 파격적으로 낮은 비용을 부과했다고 한다. 특히 소프트쪽의 경우 수십 퍼센트 단위의 수수료를 떼어가던 과거의 플랫폼들과 달리 게임 한장당 겨우 3달러라는 파격적으로 낮은 로얄티를 부과했다고 한다. 1990년에 3DO사가 설립된 이후 1992년까지 설계와 OS등 기반 구축과정이 이뤄졌고, 마쯔시타(파나소닉)나 금성전자(현 LG) 등의 하드웨어 업체들이 3DO 컨소시엄에 참여해 실제 설계를 개선하는 과정을 거쳐 1993년 10월 4일, 미국에서 마쯔시타의 3DO REAL FZ-1을 시작으로 판매가 개시되었다. 일본에서는 이듬해인 1994년 3월 20일 발매되었고, 한국은 금성전자에서 만든 3DO 얼라이브가 1994년 10월 발매함으로서 3DO가 전 세계에서 세번째로 발매된 국가가 되었다. 그러나 화려했던 이상과 달리 3DO는 CD-i와 메가시디 (MEGA-CD, メガCD)를 뒤섞어 발전시킨 듯한 어정쩡한 스펙과 지나치게 높은 기기 가격, 부족한 소프트 라인업 등으로 인해 발매 직후에 조차 별로 반짝이지 못한채로[* 미국의 잡지 Electronic Gaming Monthly에서 ‘1993년 최악의 게임기 런칭(Worst Console Launch of 1993)‘이라는 불명예스런 타이틀을 받았다.] 지지부진한 상태가 계속되었다. 1994년 후반에 일본에서 판매가 개시될 세가새턴(Sega Saturn, セガサターン)과 플레이스테이션1과의 경쟁을 위해 마쯔시타는 염가판에 해당하는 3DO REAL FZ-10를 발표했고, 비슷한 시기에 산요에서도 3DO TRY를 선보였으나, 기본적인 스펙에 변화를 줄 수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그대로 시장에서 밀려나는 수순을 밟게 되었다. (이때문에 3DO 컨소시엄에 참여했던 삼성의 경우에는 기기 디자인까지는 완성되었으나 결국 기기 발매를 포기하게 됨) 1994년 말 경쟁 기종들이 시장에 출시된 후, 승승장구를 하며 팔려나가면서 시장에서는 아예 언급조차 되지 않을 정도로 사향길을 걷게되었다. 그나마 일본에서 1994년 말에 발매된 슈퍼 스트리트 파이터2X가 체면치례를 도왔고, 1995년 2월 사무라이 쇼다운, 1995년 4월 워프의 D의 식탁과, 코나미(KONAMI)에서 코지마 히데오가 직접 이식한 폴리스 노츠의 파일럿 디스크(본편은 9월) 등이 발매되면서 약간의 이슈가 되긴 했으나 경쟁 기종에서는 훨씬 커다란 이슈 타이틀들이 쏟아지면서 그야말로 묻혀버렸다. 근본적인 성능 부족에 대해서는 3DO 컨소시엄도 충분히 자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에 대한 해결책으로 ‘M2(가칭)‘라는 확장형 장비를 이용해 3DO를 강화시키는 프로젝트를 발족하게 된다. 이는 PC엔진에 CD-ROM과 슈퍼카드를 애드온해서 강화한 것과 비슷한 수순의 프로젝트였으나, 문제는 이 발표를 통해 3DO는 사실상 ‘버려진 기계’취급을 받으며 더더욱 외면당하는 계기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1996년 초에는 마쯔시타가 본격적으로 3DO를 게임기로서 밀어보겠다는 포부를 가지고 M2에대한 권리를 3DO사로부터 인수하고 ‘파나소닉 엔터테인먼트’를 설립, 3DO기기 가격을 낮춰 판매하는 등의 프로모션을 펼치면서 M2를 차세대기로서 본격적으로 홍보하기 시작했다. 이와 함께 3DO 사는 3DO에대한 모든 권리를 넘기고 1996년 사업 포기를 선언, 게임 유통 등으로 사업 전환을 모색하게 된다. 1997년에는 마쯔시타와 LG전자(구 금성전자)가 협력해 M2에대한 계획이 어느정도 결실을 거둬 M2 기기에대한 기본 설계가 완료되었으나, 애시당초 런칭부터 압도적이었던 미국 시장 뿐만 아니라 일본 시장에서조차 세가새턴을 제치고 승세로 돌아선 플레이스테이션1의 기세를 꺾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고 판단, 1997년 6월 마쯔시타는 게임기 사업 포기를 선언하고 백기를 들어올리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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