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편집
최근 토론
게시판 메인
도구
투표
무작위 문서
스킨 설정
파일 올리기
기타 도구
216.73.216.107
IP
사용자 도구
사용자 설정
로그인
회원 가입
최근 편집
최근 토론
돌아가기
삭제
이동
파일 올리기
SCP-1179
(편집) (1)
(편집 필터 규칙)
341,1997
== 발견 및 격리과정 == 1871년 펜실베이니아의 무연탄 광산 채굴 중 발견되었으며, 당시 ‘잠든 돌 거인’으로 불렸다. 발견 광산은 아일랜드계 미국인 비밀결사 몰리 마과이어스의 일원인 션 오말리 소유였고, 주 회원들은 주로 펜실베이니아의 탄광 노동자였다. 이 조직은 SCP-1179의 존재를 철저히 비밀에 부쳤고, 이 때문인지 몰리 마과이어스가 1870년대 후반 해체된 이후에도 거인의 수호자들은 기소를 피했다. 192█년, 재단 예비 요원이자 오말리의 손자인 이언 오말리에 대한 배경조사 과정에서 재단이 존재를 인지하였고, 재단 위장 회사가 해당 부지를 매입해 제██연구기지를 설립하였다. 1962년 5월 인근 마을 주민들이 폐광을 매립지로 사용하던 곳에서 쓰레기 소각을 하다가 무연탄층에 화재가 발생했다. 재단 지질학자들은 탄층이 작아서 불이 붙었더라도 약 2년 안에 자연적으로 꺼졌을 것으로 추정했지만, 불은 기지 아래까지 번졌고 불이 SCP-1179에 닿자 SCP-1179는 불의 존재로 즉시 재활성화되었다. 재활성화 직후 SCP-1179는 연구기지 인원을 전원 살해하고 벙커를 파괴한 뒤, 광산과 동굴망으로 퇴각하며 추가 무연탄 화재를 일으켰다. 광산과 동굴, 주변 지역이 제179구역으로 지정되었으나, 인근 마을에 수천 명의 민간인이 거주하고 있었기에 케테르 등급 격리구역 표준 건설 절차를 그대로 적용할 수 없이 상황에 맞게 수정된 절차가 시행되었다. 이후 1962~1970년 사이 다섯 차례 포획 시도가 있었으나 모두 실패하였다. 단 이 과정에서 SCP-1179가 동굴을 거대한 규모와 알 수 없는 깊이로 확장할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였다. 그러나 위성 사진이나 유해 가스 발생, 지반 붕괴 증거는 이런 보고와 모순되었고, 사진 증거도 광산 화재가 약 400에이커(1.62㎢) 범위에서만 진행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동굴 규모에 대한 이 불일치는 현재까지 해소되지 않았다. 1970년 재단 지질학자들은 SCP-1179가 야기한 지하 화재가 250년 이상 지속될 것으로 예측하였고, 이에 화재 원인의 은폐를 유지하고 있었음에도 SCP-1179 격리 실패와 화재 진압 불능으로 인해 인근 마을은 전면 이주 조치되었다. 동시에 프로젝트 타르타로스가 공식적으로 시작되어 SCP-1179의 영구적 특수 격리 절차를 개발·정교화하고 무연탄 화재를 진압할 방법을 모색하게 되었다. 그러나 SCP-1179의 민간인 접촉을 막기 위한 위장과 활동은 지역 상황 악화로 점점 어려워졌고, 결국 1981년 토드 돔보스키라는 12세 소년이 자택 뒷마당에서 직경 약1.25m, 깊이 46m의 싱크홀에 빠지는 일이 있었다. 다행히 사촌인 14세 에릭 볼프강이 소년을 구조하였다. 싱크홀은 치명적인 농도의 일산화탄소가 포함된 뜨거운 증기를 뿜어냈고, 이는 화학 분석 결과 SCP-1179의 호흡 샘플과 일치하였다. 악화되는 ‘광산 화재’ 상황과 재단 정치적 연락망의 비밀 로비에 힘입어 1984년 미국 의회가 4,200만 달러 이상의 이주 예산을 승인하였고, 잠입 중이던 █████ 요원의 제안으로 펜실베이니아 주정부가 해당 자치구 내 모든 부동산에 대한 토지수용권 행사 및 전 건물을 철거 대상으로 지정하였다. 재단은 주민들이 이 결정을 뒤집으려는 법적 시도가 모두 실패하도록 보장했고, 그 결과 완전한 케테르 등급 구역 격리 절차 적용이 가능해졌다.
(임시 저장)
(임시 저장 불러오기)
기본값
모나코 에디터
normal
namumark
namumark_beta
macromark
markdown
custom
raw
(↪️)
(💎)
(🛠️)
(추가)
== 발견 및 격리과정 == 1871년 펜실베이니아의 무연탄 광산 채굴 중 발견되었으며, 당시 ‘잠든 돌 거인’으로 불렸다. 발견 광산은 아일랜드계 미국인 비밀결사 몰리 마과이어스의 일원인 션 오말리 소유였고, 주 회원들은 주로 펜실베이니아의 탄광 노동자였다. 이 조직은 SCP-1179의 존재를 철저히 비밀에 부쳤고, 이 때문인지 몰리 마과이어스가 1870년대 후반 해체된 이후에도 거인의 수호자들은 기소를 피했다. 192█년, 재단 예비 요원이자 오말리의 손자인 이언 오말리에 대한 배경조사 과정에서 재단이 존재를 인지하였고, 재단 위장 회사가 해당 부지를 매입해 제██연구기지를 설립하였다. 1962년 5월 인근 마을 주민들이 폐광을 매립지로 사용하던 곳에서 쓰레기 소각을 하다가 무연탄층에 화재가 발생했다. 재단 지질학자들은 탄층이 작아서 불이 붙었더라도 약 2년 안에 자연적으로 꺼졌을 것으로 추정했지만, 불은 기지 아래까지 번졌고 불이 SCP-1179에 닿자 SCP-1179는 불의 존재로 즉시 재활성화되었다. 재활성화 직후 SCP-1179는 연구기지 인원을 전원 살해하고 벙커를 파괴한 뒤, 광산과 동굴망으로 퇴각하며 추가 무연탄 화재를 일으켰다. 광산과 동굴, 주변 지역이 제179구역으로 지정되었으나, 인근 마을에 수천 명의 민간인이 거주하고 있었기에 케테르 등급 격리구역 표준 건설 절차를 그대로 적용할 수 없이 상황에 맞게 수정된 절차가 시행되었다. 이후 1962~1970년 사이 다섯 차례 포획 시도가 있었으나 모두 실패하였다. 단 이 과정에서 SCP-1179가 동굴을 거대한 규모와 알 수 없는 깊이로 확장할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였다. 그러나 위성 사진이나 유해 가스 발생, 지반 붕괴 증거는 이런 보고와 모순되었고, 사진 증거도 광산 화재가 약 400에이커(1.62㎢) 범위에서만 진행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동굴 규모에 대한 이 불일치는 현재까지 해소되지 않았다. 1970년 재단 지질학자들은 SCP-1179가 야기한 지하 화재가 250년 이상 지속될 것으로 예측하였고, 이에 화재 원인의 은폐를 유지하고 있었음에도 SCP-1179 격리 실패와 화재 진압 불능으로 인해 인근 마을은 전면 이주 조치되었다. 동시에 프로젝트 타르타로스가 공식적으로 시작되어 SCP-1179의 영구적 특수 격리 절차를 개발·정교화하고 무연탄 화재를 진압할 방법을 모색하게 되었다. 그러나 SCP-1179의 민간인 접촉을 막기 위한 위장과 활동은 지역 상황 악화로 점점 어려워졌고, 결국 1981년 토드 돔보스키라는 12세 소년이 자택 뒷마당에서 직경 약1.25m, 깊이 46m의 싱크홀에 빠지는 일이 있었다. 다행히 사촌인 14세 에릭 볼프강이 소년을 구조하였다. 싱크홀은 치명적인 농도의 일산화탄소가 포함된 뜨거운 증기를 뿜어냈고, 이는 화학 분석 결과 SCP-1179의 호흡 샘플과 일치하였다. 악화되는 ‘광산 화재’ 상황과 재단 정치적 연락망의 비밀 로비에 힘입어 1984년 미국 의회가 4,200만 달러 이상의 이주 예산을 승인하였고, 잠입 중이던 █████ 요원의 제안으로 펜실베이니아 주정부가 해당 자치구 내 모든 부동산에 대한 토지수용권 행사 및 전 건물을 철거 대상으로 지정하였다. 재단은 주민들이 이 결정을 뒤집으려는 법적 시도가 모두 실패하도록 보장했고, 그 결과 완전한 케테르 등급 구역 격리 절차 적용이 가능해졌다.
비로그인 상태입니다. 편집한 내용을 저장하면 지금 접속한 IP가 기록됩니다.
편집을 전송하면 당신은 이 문서의 기여자로서 본인이 작성한 내용이
CC BY 4.0
에 따라 배포되고, 기여한 문서의 하이퍼링크나 URL로 저작자 표시가 충분하다는 것에 동의하는 것입니다.
전송
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