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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묘사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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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종 == 훈구가 아닌 중종이 직접 일으켰다는 주장이 있다. 실제로 삼사의 청요직(淸要職)들은 성종 이래 권귀대각(權歸臺閣)이란 말이 있을 정도로 강한 권력을 누렸으며, 중종 대에 이르러선 조광조를 비롯한 관료들이 조정을 손아귀에 쥐고 있다시피 하였다. 다수의 대신이 청요직이었기에 대간들이 주창하는 공론에 끌려다닐 수 밖에 없었다. 이에 중종이 강력한 왕권을 되찾기 위해 이들을 불가피하게 제거했다는 것이다.[* 송웅섭, 〈기묘사림과 ‘공론지상주의’〉, 《역사와 현실》 제108호, 2018, 81-83쪽.] 실제로 과거 사학계의 해석과는 달리 현재는 훈구와 사림은 확실하게 구분이 어렵다는 연구가 많다. 예컨대 사림의 본산으로 여겨지는 집현전도 훈구의 본산에 가깝고, 사림의 영수로 칭해지는 김종직도 훈구에 가까운 인물이며, 훈구=대지주, 사림=중소지주와 같은 해석에도 오류가 많다는 의견이 있다.[* 김범,〈조선전기 '훈구·사림세력' 연구의 재검토〉, 《한국사학보》 제15호,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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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종 == 훈구가 아닌 중종이 직접 일으켰다는 주장이 있다. 실제로 삼사의 청요직(淸要職)들은 성종 이래 권귀대각(權歸臺閣)이란 말이 있을 정도로 강한 권력을 누렸으며, 중종 대에 이르러선 조광조를 비롯한 관료들이 조정을 손아귀에 쥐고 있다시피 하였다. 다수의 대신이 청요직이었기에 대간들이 주창하는 공론에 끌려다닐 수 밖에 없었다. 이에 중종이 강력한 왕권을 되찾기 위해 이들을 불가피하게 제거했다는 것이다.[* 송웅섭, 〈기묘사림과 ‘공론지상주의’〉, 《역사와 현실》 제108호, 2018, 81-83쪽.] 실제로 과거 사학계의 해석과는 달리 현재는 훈구와 사림은 확실하게 구분이 어렵다는 연구가 많다. 예컨대 사림의 본산으로 여겨지는 집현전도 훈구의 본산에 가깝고, 사림의 영수로 칭해지는 김종직도 훈구에 가까운 인물이며, 훈구=대지주, 사림=중소지주와 같은 해석에도 오류가 많다는 의견이 있다.[* 김범,〈조선전기 '훈구·사림세력' 연구의 재검토〉, 《한국사학보》 제15호,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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