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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코타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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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3,inf
== 전개 == 미국인들은 땅을 빼앗은 것도 모자라 샌티족 영역 근처에서 샌티족이 땅을 포기한 대가로 받기로 한 연금을 사기쳐서 빼돌렸고, 원주민들의 사냥감인 야생 조수들의 씨를 말렸으며, 원주민들에게 모멸감을 주는 행동을 거리끼지 않았다. 그 와중에 농사까지 잘 되지 않자, 1862년 원주민들은 연금으로 구입하기로 한 식량이 있는 주재소로 몰려들었다. 그런데 당시 미국은 남북전쟁(1861~1865)중이어서 원주민들에게 줄 연금이 도착하지 않았다. 주재소의 상인들은 연금 없이는 식량을 주지 않겠다며 버텼으며, 그 중 머릭이라는 사람은 '배고프면 풀이나 자기 똥이나 먹으라지'라고 소리쳤고 이 말이 곧 원주민들의 마지막 인내심을 바닥냈다. 작은까마귀는 상술한 조약에 서명한 후에는 양복을 빼입고 성공회 신자가 되어 농사를 짓고 평화롭게 살려고 노력했지만, 상황이 이렇게 되자 더는 분노한 자신의 부족민들을 통제할 수 없었다. 그 와중에 원주민 전사 일부가 사냥을 나갔다가 백인 정착민들의 집을 습격하여 정착민들을 살해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백인들의 보복이 두려웠고 그간 쌓인 울분이 폭발한 작은까마귀는 대규모 유혈사태를 일으켰다. 그는 다른 샌티족 부족들과 연합하여 800여명의 전사들을 이끌고 뉴올름을 공격했지만 시블리 대령(1811~1891, 초대 미네소타 주지사. 이 사람은 앞서 원주민들의 연금을 사기쳐 빼돌린 사람 중 한 명이었고, 미네소타 주지사인 알렉산더 램지와 유착관계였다)이 이끄는 1400명의 미군이 당도하자 성공하지 못했으며 전황은 불리하게 돌아갔다. 그러자 샌티 족들은 협상이냐 전쟁이냐의 기로에서 분열하여 주전파인 작은까마귀, 샤코페, 마술병 등은 자기 지파 사람들을 이끌고 캐나다로 도주하였고 이전부터 시블리와 내통하고 있던 와비샤와 폴 마자쿠테마네 등의 온건파는 항복하였다. 그러나 약속 어기기를 밥먹듯 하는 '개척자'들은 이들을 그냥 놔둘 생각이 전혀 없었다. 이들은 남아있던 2천 명 가량의 샌티족 전부를 포로 취급 하였으며, 추장과 전사들 중 303명에게 사형을 언도하였다. 사형 대상자 수가 너무 많은 것을 수상하게 여긴 대통령 링컨에 의해 사형이 집행된 인원은 38명으로 줄었지만, 미국 당국은 샌티족 남성 대부분을 형무소로 보냈고 남은 이들은 척박한 크로우 크리크 수용소로 보냈다. 이들 중 첫 겨울이 지난 후 살아남은 사람은 천명도 되지 않았다. 한 편, 캐나다로 도망간 주전파들도 무사하지는 못했다. 영국 당국은 이들을 직접적으로 공격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환대하지도 않았다. 그 다음 해인 1863년 작은까마귀는 말을 구하러 캐나다 영역을 벗어났다가 백인 개척자들에게 발각되어 죽었다. 샤코페와 마술병은 캐나다 국경까지 쫓아 온 시블리의 사주를 받은 미국인 존 메켄지에 의해 사로잡혀 미국으로 이송되어 교수형당했다. 이렇게 샌티 수우족은 멸망하였다. [Include(틀:가져옴, O=진보위키, C=[[https://creativecommons.org/licenses/by-nc-sa/3.0/|CC BY-NC-SA 3.0]], L=[[https://web.archive.org/web/20210401071426/https://jinbowiki.org/wiki/index.php?title=%EB%8B%A4%EC%BD%94%ED%83%80_%EC%A0%84%EC%9F%81&curid=2713&action=history|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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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개 == 미국인들은 땅을 빼앗은 것도 모자라 샌티족 영역 근처에서 샌티족이 땅을 포기한 대가로 받기로 한 연금을 사기쳐서 빼돌렸고, 원주민들의 사냥감인 야생 조수들의 씨를 말렸으며, 원주민들에게 모멸감을 주는 행동을 거리끼지 않았다. 그 와중에 농사까지 잘 되지 않자, 1862년 원주민들은 연금으로 구입하기로 한 식량이 있는 주재소로 몰려들었다. 그런데 당시 미국은 남북전쟁(1861~1865)중이어서 원주민들에게 줄 연금이 도착하지 않았다. 주재소의 상인들은 연금 없이는 식량을 주지 않겠다며 버텼으며, 그 중 머릭이라는 사람은 '배고프면 풀이나 자기 똥이나 먹으라지'라고 소리쳤고 이 말이 곧 원주민들의 마지막 인내심을 바닥냈다. 작은까마귀는 상술한 조약에 서명한 후에는 양복을 빼입고 성공회 신자가 되어 농사를 짓고 평화롭게 살려고 노력했지만, 상황이 이렇게 되자 더는 분노한 자신의 부족민들을 통제할 수 없었다. 그 와중에 원주민 전사 일부가 사냥을 나갔다가 백인 정착민들의 집을 습격하여 정착민들을 살해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백인들의 보복이 두려웠고 그간 쌓인 울분이 폭발한 작은까마귀는 대규모 유혈사태를 일으켰다. 그는 다른 샌티족 부족들과 연합하여 800여명의 전사들을 이끌고 뉴올름을 공격했지만 시블리 대령(1811~1891, 초대 미네소타 주지사. 이 사람은 앞서 원주민들의 연금을 사기쳐 빼돌린 사람 중 한 명이었고, 미네소타 주지사인 알렉산더 램지와 유착관계였다)이 이끄는 1400명의 미군이 당도하자 성공하지 못했으며 전황은 불리하게 돌아갔다. 그러자 샌티 족들은 협상이냐 전쟁이냐의 기로에서 분열하여 주전파인 작은까마귀, 샤코페, 마술병 등은 자기 지파 사람들을 이끌고 캐나다로 도주하였고 이전부터 시블리와 내통하고 있던 와비샤와 폴 마자쿠테마네 등의 온건파는 항복하였다. 그러나 약속 어기기를 밥먹듯 하는 '개척자'들은 이들을 그냥 놔둘 생각이 전혀 없었다. 이들은 남아있던 2천 명 가량의 샌티족 전부를 포로 취급 하였으며, 추장과 전사들 중 303명에게 사형을 언도하였다. 사형 대상자 수가 너무 많은 것을 수상하게 여긴 대통령 링컨에 의해 사형이 집행된 인원은 38명으로 줄었지만, 미국 당국은 샌티족 남성 대부분을 형무소로 보냈고 남은 이들은 척박한 크로우 크리크 수용소로 보냈다. 이들 중 첫 겨울이 지난 후 살아남은 사람은 천명도 되지 않았다. 한 편, 캐나다로 도망간 주전파들도 무사하지는 못했다. 영국 당국은 이들을 직접적으로 공격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환대하지도 않았다. 그 다음 해인 1863년 작은까마귀는 말을 구하러 캐나다 영역을 벗어났다가 백인 개척자들에게 발각되어 죽었다. 샤코페와 마술병은 캐나다 국경까지 쫓아 온 시블리의 사주를 받은 미국인 존 메켄지에 의해 사로잡혀 미국으로 이송되어 교수형당했다. 이렇게 샌티 수우족은 멸망하였다. [Include(틀:가져옴, O=진보위키, C=[[https://creativecommons.org/licenses/by-nc-sa/3.0/|CC BY-NC-SA 3.0]], L=[[https://web.archive.org/web/20210401071426/https://jinbowiki.org/wiki/index.php?title=%EB%8B%A4%EC%BD%94%ED%83%80_%EC%A0%84%EC%9F%81&curid=2713&action=history|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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