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편집
최근 토론
게시판 메인
도구
투표
무작위 문서
스킨 설정
파일 올리기
기타 도구
216.73.216.27
IP
사용자 도구
사용자 설정
로그인
회원 가입
최근 편집
최근 토론
돌아가기
삭제
이동
파일 올리기
한자
(편집) (2)
(편집 필터 규칙)
703,2113
== 모양 == 갑골문자와 금문[* 청동판에 그림같은 글씨/글씨 같은 그림을 새긴 것]을 바탕으로 전서, 전서를 바탕으로 예서가 발명되고 해서, 행서, 초서가 각각 예서를 기반으로 발명되었다. 보통 격식을 갖춘 문서는 해서를 많이 쓴다. 해서 중에서도 한반도에서는 석봉체라고 불리는 명료한 서체를 기본으로 사용했다. 현대 한자의 기본모양은 해서체를 기본으로 모더니즘의 영향을 받아 장식성을 줄인 활자형태의 자형이다. 현대의 한자는 붓으로 글을 쓰지 않아도 글을 쓰고 읽을 수 있고, 가독성을 이유로 각 글자의 가로세로폭을 비슷하게 쓴다. 컴퓨터의 활자는 한글과 마찬가지로 딱 정사각형 틀로 이루어져있다. 현대에는 펜으로 한자를 쓸 때 삐침을 생략하거나 짧은 직선으로 간략히 표현한다. 원래는 펜으로 쓸 때도 삐침이 각 한자의 일부로써 중요하게 여겨졌으나 그건 꼰대들의 생각이고, 글자를 또렷히 알아볼 수 있는 한도 안에서, 삐침을 강력히 표현하느냐, 과감히 생략하느냐에 따라 필자의 개성이 나타나는 부분으로 인정되는 추세이다. 요즘 중국인들도 그런 건 신경 안 쓴다. 가장 오래된 갑골문자는 기원전 1200년 전이라고 한다. 주로 제사를 지낼 때 거북이 배딱지에 새겨넣은 문자이지만, 이 때 이미 완전히 문자로써 쓰이고 있음을, 또 이 문자가 쓰인 당시에 이미 제사로 인신공양을 했고, 이는 즉 서슬퍼런 계급사회였음을 밝혔다. 갑골문자는 생각보다 대륙 전역에서 엄청 널리 쓰였을 것으로 생각되는데, 갑골문이 쓰여진 뼈를 약재로 고아서 먹었다는 기사가 중국의 사서에 되게 많이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금문은 주나라 시대에 주로 왕실의 기록을 위해 청동판에 새겨놓았다. 주나라 시대 때 쓰던 이전보다 훨씬 문자로써 완벽해졌지만, 오히려 갑골문보다 훨씬 자세히 그려놓은 것도 있다. 예를 들면 코끼리 상(象) 자 또한 금문에서 몇 개 발견이 되는데, 그 중 한 글자는 완전 코끼리를 그려놓았다. 이로써 우리는 또다시 주나라 시대때만 해도 중국인들은 코끼리를 직접 눈으로 보았으리라 생각할 수 있다. 여기서 전서라는 새김 위주의 글씨체가 생겨나서 오랜 세월 쓰였다가 진나라(秦) 때 소전체라는 통일 규격이 생겨났다. 지금 쓰고 있는 한자가 정립이 된 시기는 진(秦)나라의 시초가 된 진 지방에서 쓰던 서체를 붓글씨로 쓰기 위해 개량한 것이다. 이걸 예서(隸書)라고 한다. 한나라 때는 예서가 이미 완성되어 널리 쓰였다. 이를 봐서 알 수 있듯이 이미 중국 대륙 전역에서 붓 등으로 목독이나 죽간등에 글씨를 썼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주나라 이후에 중국 문명의 치열하고 찬란한 발전을 이룩했던 중요한 시대인 춘추전국시대 때 서체가 어땠는지, 어디다가, 어떤 방식으로 기록을 했는지는 정확히 알기 힘들다. 왜냐하면 춘추전국시대 때 쌓아올린 여러 법전과 사상을 적은 책들, 병법서 등이 분서갱유로 소실되었기 때문이다.
(임시 저장)
(임시 저장 불러오기)
기본값
모나코 에디터
normal
namumark
namumark_beta
macromark
markdown
custom
raw
(↪️)
(💎)
(🛠️)
(추가)
== 모양 == 갑골문자와 금문[* 청동판에 그림같은 글씨/글씨 같은 그림을 새긴 것]을 바탕으로 전서, 전서를 바탕으로 예서가 발명되고 해서, 행서, 초서가 각각 예서를 기반으로 발명되었다. 보통 격식을 갖춘 문서는 해서를 많이 쓴다. 해서 중에서도 한반도에서는 석봉체라고 불리는 명료한 서체를 기본으로 사용했다. 현대 한자의 기본모양은 해서체를 기본으로 모더니즘의 영향을 받아 장식성을 줄인 활자형태의 자형이다. 현대의 한자는 붓으로 글을 쓰지 않아도 글을 쓰고 읽을 수 있고, 가독성을 이유로 각 글자의 가로세로폭을 비슷하게 쓴다. 컴퓨터의 활자는 한글과 마찬가지로 딱 정사각형 틀로 이루어져있다. 현대에는 펜으로 한자를 쓸 때 삐침을 생략하거나 짧은 직선으로 간략히 표현한다. 원래는 펜으로 쓸 때도 삐침이 각 한자의 일부로써 중요하게 여겨졌으나 그건 꼰대들의 생각이고, 글자를 또렷히 알아볼 수 있는 한도 안에서, 삐침을 강력히 표현하느냐, 과감히 생략하느냐에 따라 필자의 개성이 나타나는 부분으로 인정되는 추세이다. 요즘 중국인들도 그런 건 신경 안 쓴다. 가장 오래된 갑골문자는 기원전 1200년 전이라고 한다. 주로 제사를 지낼 때 거북이 배딱지에 새겨넣은 문자이지만, 이 때 이미 완전히 문자로써 쓰이고 있음을, 또 이 문자가 쓰인 당시에 이미 제사로 인신공양을 했고, 이는 즉 서슬퍼런 계급사회였음을 밝혔다. 갑골문자는 생각보다 대륙 전역에서 엄청 널리 쓰였을 것으로 생각되는데, 갑골문이 쓰여진 뼈를 약재로 고아서 먹었다는 기사가 중국의 사서에 되게 많이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금문은 주나라 시대에 주로 왕실의 기록을 위해 청동판에 새겨놓았다. 주나라 시대 때 쓰던 이전보다 훨씬 문자로써 완벽해졌지만, 오히려 갑골문보다 훨씬 자세히 그려놓은 것도 있다. 예를 들면 코끼리 상(象) 자 또한 금문에서 몇 개 발견이 되는데, 그 중 한 글자는 완전 코끼리를 그려놓았다. 이로써 우리는 또다시 주나라 시대때만 해도 중국인들은 코끼리를 직접 눈으로 보았으리라 생각할 수 있다. 여기서 전서라는 새김 위주의 글씨체가 생겨나서 오랜 세월 쓰였다가 진나라(秦) 때 소전체라는 통일 규격이 생겨났다. 지금 쓰고 있는 한자가 정립이 된 시기는 진(秦)나라의 시초가 된 진 지방에서 쓰던 서체를 붓글씨로 쓰기 위해 개량한 것이다. 이걸 예서(隸書)라고 한다. 한나라 때는 예서가 이미 완성되어 널리 쓰였다. 이를 봐서 알 수 있듯이 이미 중국 대륙 전역에서 붓 등으로 목독이나 죽간등에 글씨를 썼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주나라 이후에 중국 문명의 치열하고 찬란한 발전을 이룩했던 중요한 시대인 춘추전국시대 때 서체가 어땠는지, 어디다가, 어떤 방식으로 기록을 했는지는 정확히 알기 힘들다. 왜냐하면 춘추전국시대 때 쌓아올린 여러 법전과 사상을 적은 책들, 병법서 등이 분서갱유로 소실되었기 때문이다.
비로그인 상태입니다. 편집한 내용을 저장하면 지금 접속한 IP가 기록됩니다.
편집을 전송하면 당신은 이 문서의 기여자로서 본인이 작성한 내용이
CC BY 4.0
에 따라 배포되고, 기여한 문서의 하이퍼링크나 URL로 저작자 표시가 충분하다는 것에 동의하는 것입니다.
전송
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