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편집
최근 토론
게시판 메인
도구
투표
무작위 문서
스킨 설정
파일 올리기
기타 도구
216.73.216.85
IP
사용자 도구
사용자 설정
로그인
회원 가입
최근 편집
최근 토론
돌아가기
삭제
이동
파일 올리기
NGINX
(편집) (2)
(편집 필터 규칙)
1527,3217
== 역사 == 러시아의 포탈 업체인 램블러(Rambler)에 근무하던 이고르 시쇼에프는 2000년대에 들어 급증하는 인터넷 트래픽과 접속자 수, 그리고 웹페이지에 들어가는 엄청나게 늘어난 이미지 수와 CSS 등의 파일 전송량으로인해 서버 및 서비스의 원활한 관리가 점차 어려워지고 있음을 느끼고 있었다. 흔히 C10K 문제라고 부르는 일종의 한계에 봉착해 있었던 것이다. 당시 아파치가 거의 점거하고 있던 서버 업계는 한계선까지 아파치를 트윅하는 것은 기본이었으나, 그것으로 문제를 해결하는데에는 분명 근본적인 한계가 있었기에 그에대한 대안이 필요했다. 2002년부터 이문제에 대한 해결책으로서 엔진엑스 개발을 시작한 이고르 시쇼에프는 2003년 즈음 실제 테스트를 시작, 즈부끼(Zvuki)라는 MP3 다운로드 사이트에서 처음으로 실제 서비스에 적용하여 좋은 결과를 얻었고, 근무처인 램블러의 사진 공유 서비스에 엔진엑스를 적용해 서비스를 시작했다. 2004년에 이르러 BSD 라이센스로 정식 버전을 공개했으나, 당시에는 러시아어로만 만들어져 있었던 매뉴얼과 주석으로 인해 사용자는 크게 늘지 않았다. 2005년 즈음에 사용자가 대략 100여명 정도였다고. 이 때부터 영어 매뉴얼 및 토론을 확대하기 시작했고, 2006년에 이르러서 매뉴얼 등이 영어로 충실해지자 사용자가 확대되기 시작했다. 이후 사용자가 점차 늘기 시작했고, 한국에도 이 즈음을 기점으로 유입되기 시작해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사용해본 사람들의 높은 평은 잇달아 나왔음에도, 이즈음에는 아직 마이너한 소프트웨어였고 대규모 서비스에 실제 적용된 사례가 별로 없었기 때문에 신뢰도 면에서도 확신을 가진 사람들이 많지 않아 상용 서비스에서 채용되는 경우는 그렇게 많지 않았다. 엔진엑스의 안정성과 신뢰도는 2008년에 이르러 블로그 서비스인 워드프레스의 홈페이지(wordpress.com)와 서비스 페이지에 채용되며 급격하게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러한 성과를 인정받아 서서히 점유율을 높이기 시작했는데, 그들의 서비스의 신뢰도를 급격히 올려준 사건이 바로 그 이듬해에 일어난다. 2009년 CDN 서비스 및 보안 DNS서비스를 제공하는 [[Cloudflare]] 서비스를 만들 때, 빠르고 가벼우며 멀티코어에서 더 잘 작동하는 서버를 필요로 했다. 그들은 이고르 시쇼에프를 고용, 엔진엑스를 개량해 자사 서비스에 맞는 결과물을 만들어내는데 성공했다. 클라우드 플레어는 월간 조단위의 페이지 뷰를 전송하는 세계 최대급의 CDN 서비스업체이기에 엔진엑스의 안정성과 신뢰성은 이것만으로도 거의 확실하게 인정받게 되었다. 또한 시기적으로 커져가는 클라우드 서버 서비스 등에서 제한된 프로세싱 능력과 메모리를 십분 활용하기 위해 엔진엑스를 사용하는 사용자가 급증하기 시작했으며 거기에 맞춰 다양한 모듈들이 선보이며 그 전까지 부족하다고 평가받았던 기능적으로도 많은 개선을 이루게 되었다. 이러한 성공을 기반으로 이고르 시쇼에프는 주식회사 엔진엑스 설립, 2011년에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사무실을 세우고 회사로서 활동을 시작했다. 2013년에는 유료 엔진엑스 플러스 서비스를 시작했다. 2012년 11월 1일 공개된 OpenBSD 5.2부터는 아예 베이스 시스템에 아파치 웹서버 대신 엔진엑스가 내장되었다.[* 보안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OpenBSD에 내장되면서 이 부문에 있어서의 안정성도 확고하게 되었다고 보아도 무방하겠다.]
(임시 저장)
(임시 저장 불러오기)
기본값
모나코 에디터
normal
namumark
namumark_beta
macromark
markdown
custom
raw
(↪️)
(💎)
(🛠️)
(추가)
== 역사 == 러시아의 포탈 업체인 램블러(Rambler)에 근무하던 이고르 시쇼에프는 2000년대에 들어 급증하는 인터넷 트래픽과 접속자 수, 그리고 웹페이지에 들어가는 엄청나게 늘어난 이미지 수와 CSS 등의 파일 전송량으로인해 서버 및 서비스의 원활한 관리가 점차 어려워지고 있음을 느끼고 있었다. 흔히 C10K 문제라고 부르는 일종의 한계에 봉착해 있었던 것이다. 당시 아파치가 거의 점거하고 있던 서버 업계는 한계선까지 아파치를 트윅하는 것은 기본이었으나, 그것으로 문제를 해결하는데에는 분명 근본적인 한계가 있었기에 그에대한 대안이 필요했다. 2002년부터 이문제에 대한 해결책으로서 엔진엑스 개발을 시작한 이고르 시쇼에프는 2003년 즈음 실제 테스트를 시작, 즈부끼(Zvuki)라는 MP3 다운로드 사이트에서 처음으로 실제 서비스에 적용하여 좋은 결과를 얻었고, 근무처인 램블러의 사진 공유 서비스에 엔진엑스를 적용해 서비스를 시작했다. 2004년에 이르러 BSD 라이센스로 정식 버전을 공개했으나, 당시에는 러시아어로만 만들어져 있었던 매뉴얼과 주석으로 인해 사용자는 크게 늘지 않았다. 2005년 즈음에 사용자가 대략 100여명 정도였다고. 이 때부터 영어 매뉴얼 및 토론을 확대하기 시작했고, 2006년에 이르러서 매뉴얼 등이 영어로 충실해지자 사용자가 확대되기 시작했다. 이후 사용자가 점차 늘기 시작했고, 한국에도 이 즈음을 기점으로 유입되기 시작해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사용해본 사람들의 높은 평은 잇달아 나왔음에도, 이즈음에는 아직 마이너한 소프트웨어였고 대규모 서비스에 실제 적용된 사례가 별로 없었기 때문에 신뢰도 면에서도 확신을 가진 사람들이 많지 않아 상용 서비스에서 채용되는 경우는 그렇게 많지 않았다. 엔진엑스의 안정성과 신뢰도는 2008년에 이르러 블로그 서비스인 워드프레스의 홈페이지(wordpress.com)와 서비스 페이지에 채용되며 급격하게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러한 성과를 인정받아 서서히 점유율을 높이기 시작했는데, 그들의 서비스의 신뢰도를 급격히 올려준 사건이 바로 그 이듬해에 일어난다. 2009년 CDN 서비스 및 보안 DNS서비스를 제공하는 [[Cloudflare]] 서비스를 만들 때, 빠르고 가벼우며 멀티코어에서 더 잘 작동하는 서버를 필요로 했다. 그들은 이고르 시쇼에프를 고용, 엔진엑스를 개량해 자사 서비스에 맞는 결과물을 만들어내는데 성공했다. 클라우드 플레어는 월간 조단위의 페이지 뷰를 전송하는 세계 최대급의 CDN 서비스업체이기에 엔진엑스의 안정성과 신뢰성은 이것만으로도 거의 확실하게 인정받게 되었다. 또한 시기적으로 커져가는 클라우드 서버 서비스 등에서 제한된 프로세싱 능력과 메모리를 십분 활용하기 위해 엔진엑스를 사용하는 사용자가 급증하기 시작했으며 거기에 맞춰 다양한 모듈들이 선보이며 그 전까지 부족하다고 평가받았던 기능적으로도 많은 개선을 이루게 되었다. 이러한 성공을 기반으로 이고르 시쇼에프는 주식회사 엔진엑스 설립, 2011년에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사무실을 세우고 회사로서 활동을 시작했다. 2013년에는 유료 엔진엑스 플러스 서비스를 시작했다. 2012년 11월 1일 공개된 OpenBSD 5.2부터는 아예 베이스 시스템에 아파치 웹서버 대신 엔진엑스가 내장되었다.[* 보안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OpenBSD에 내장되면서 이 부문에 있어서의 안정성도 확고하게 되었다고 보아도 무방하겠다.]
비로그인 상태입니다. 편집한 내용을 저장하면 지금 접속한 IP가 기록됩니다.
편집을 전송하면 당신은 이 문서의 기여자로서 본인이 작성한 내용이
CC BY 4.0
에 따라 배포되고, 기여한 문서의 하이퍼링크나 URL로 저작자 표시가 충분하다는 것에 동의하는 것입니다.
전송
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