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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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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6,1217
=== 수용소 생활 === 신동혁은 개천 정치범수용소에서 힘든 일을 겪었다. 그가 9살때 학교에서 주머니에 밀 이삭 다섯개를 숨겼다는 이유로 군복 입은 '선생님'에게 몽둥이로 죽을 때 까지 폭행한것을 목격했으며, 대략 10살때 모내기 작업에 투입된 신동혁은 아픈 그의 어머니를 돕다 일을 제대로 할수 없었다. 간수는 신동혁의 어머니를 점심시간인 한시간 반동안 논두렁에서 손을 들고 있으라고 시켰으며, 신동혁의 어머니가 기절하기 전까지 강제로 일을 시켰다. 신동혁와 그의 어머니는 '사상투쟁회의'에서 두 시간 동안 무릎을 꿇고 약 40명에게서 비판을 받았다. 12살이 된 신동혁은 중학교로 올라가면서 어머니와 떨어져 살았다. 이때부터 그는 교육을 받지 못하고 매일 모내기나 거름을 운반하는 강제노동을 당했다. 1998~1999년 신동혁은 발전소 건설작업에 투입되었다. 하루에 네다섯명이 죽는 위험한 환경에서 그는 심지어 한번에 8명이 죽는것을 목격하기도 했다. 또한 콘크리트 벽 공사 작업에서 다섯명이 깔려 죽었으나 아무렇지도 않게 멈추지 말고 일을 하라는 보위부원들의 지시 때문에 시체를 수습하지 못했다.이런 일들은 수용소 내에서 흔히 일어나는 일들 중 하나라고 신동혁은 말한다. 2004년 그는 보위지도원들이 이가 많아 약을 줄테니 그 약으로 목욕을 하라며 수용자들에게 약을 나눠준것을 목격했다. 신동혁의 증언에 따르면 그 약으로 목욕을 한 사람들은 1주일 후 붉은 반점이 생기다가 약 한달 뒤엔 살이 떨어져 나갔으며, 그들이 죽기 직전 트럭 한대가 와서 그들을 전부 '치워'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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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용소 생활 === 신동혁은 개천 정치범수용소에서 힘든 일을 겪었다. 그가 9살때 학교에서 주머니에 밀 이삭 다섯개를 숨겼다는 이유로 군복 입은 '선생님'에게 몽둥이로 죽을 때 까지 폭행한것을 목격했으며, 대략 10살때 모내기 작업에 투입된 신동혁은 아픈 그의 어머니를 돕다 일을 제대로 할수 없었다. 간수는 신동혁의 어머니를 점심시간인 한시간 반동안 논두렁에서 손을 들고 있으라고 시켰으며, 신동혁의 어머니가 기절하기 전까지 강제로 일을 시켰다. 신동혁와 그의 어머니는 '사상투쟁회의'에서 두 시간 동안 무릎을 꿇고 약 40명에게서 비판을 받았다. 12살이 된 신동혁은 중학교로 올라가면서 어머니와 떨어져 살았다. 이때부터 그는 교육을 받지 못하고 매일 모내기나 거름을 운반하는 강제노동을 당했다. 1998~1999년 신동혁은 발전소 건설작업에 투입되었다. 하루에 네다섯명이 죽는 위험한 환경에서 그는 심지어 한번에 8명이 죽는것을 목격하기도 했다. 또한 콘크리트 벽 공사 작업에서 다섯명이 깔려 죽었으나 아무렇지도 않게 멈추지 말고 일을 하라는 보위부원들의 지시 때문에 시체를 수습하지 못했다.이런 일들은 수용소 내에서 흔히 일어나는 일들 중 하나라고 신동혁은 말한다. 2004년 그는 보위지도원들이 이가 많아 약을 줄테니 그 약으로 목욕을 하라며 수용자들에게 약을 나눠준것을 목격했다. 신동혁의 증언에 따르면 그 약으로 목욕을 한 사람들은 1주일 후 붉은 반점이 생기다가 약 한달 뒤엔 살이 떨어져 나갔으며, 그들이 죽기 직전 트럭 한대가 와서 그들을 전부 '치워'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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