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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프(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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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성기 === 이 즈음 회사의 규모가 커지고 인력 풀이 화려해지게 되었다. 타케이 마사키(竹井正樹)나 [[요코타 마모루]] 등 같은 애니메이터 출신의 원화가와 카도이 아야(門井亞矢) 등의 실력있는 외주 원화가가 회사에 대거 유입 되면서 창립 멤버 중 원화를 담당했던 아비루 토시히로가 퇴사, 밍크를 설립하게 된다. 1994년 4월 드래곤 나이트4를 발표하면서 다시한번 대 히트를 기록, NEC어베뉴를 통해 드래곤 나이트3가 이식되면서 좋은 반응을 끌어내는데 성공했다. 그리고 해가 넘어 1995년 1월, 엘프의 전성기를 알리는 동급생2를 발매, 이전까지 없었던 엄청난 호응을 받으면 성인게임으로서는 유래없는 10만장 돌파를 기록해냈다. 이어 발매된 유작으로 게임의 시스템적, 시나리오적 완성도에서 말그대로 ‘정점’을 찍는 모습을 보여주게 된다.[* 요코타 마모루는 유작을 끝으로 퇴사, 자신의 회사인 테리오스를 설립한다.] 이러한 대 성공을 기반으로 회사 빌딩을 지어 이전하는 등 성공의 결실을 대내외적으로 과시하기도 했다. 이 즈음, 경쟁사 중 하나였던 씨즈웨어의 주력 시나리오 라이터였던 [[켄노 유키히로]]의 신작인 이브 버스트 에러의 제작과정에서 많은 충돌을 일으키면서 게임 완성 직후 퇴사하자 엘프의 대표였던 히루타 마사토는 그를 자신의 후임, 즉 엘프의 주력 시나리오 라이터로서 섭외하여, 이사 직위를 맡기게 된다. 1996년 세가의 32비트 게임기 [[세가새턴]]이 발매되며 18금 규약의 게임까지 발매를 허용하자 실키즈 브랜드로 발매되었던 노노무라 병원 사람들을 직접 이식하며 가정용 게임기 시장에도 직접 참전, 그렇게까지 임팩트 있는 타이틀이 아니었음에도 거의 10만장이 팔리는 기염을 토했다. 또한 동 시기에 라이센스를 내준 슈퍼패미컴용 드래곤 나이트4가 40만장이 넘게 팔리는 등 전성기의 모습을 자랑했다. 같은해 동급생의 스핀오프(?) 시리즈인 하급생을 발매, 또한 대 히트를 기록한다. 켄노 히로유키의 참전과 함께 개발이 시작된 작품이 하나 있었으니, 규모가 작지 않은 게임을 많이 만들어본 엘프 내에서도 가장 커다란 규모의 게임인 이 세상의 끝에서 사랑을 노래하는 소녀 YU-NO이 그것이었다. 유노는 기획단계를 제외하고 개발에만 당시 성인용 게임으로서는 파격적으로 긴 8개월여에 걸쳐서 개발, 1996년 12월에 발매하였게 된다. 발매 직후부터 호평 속에 10만장이 넘는 판매량을 올리며 다시금 엘프의 이름을 높이 울리는데 성공한다.[* 그러나 필명 등록 문제로 처음부터 진통을 겪은 켄노 히로유키는 주로 히루타 마사토와의 마찰을 이유로 이듬해 말 세가새턴(Sega Saturn, セガサターン)용으로 이식한 유노를 끝으로 퇴사하고 만다. 이후 필명을 칸노 히로유키로 변경, 자신의 회사인 아벨을 설립하게 된다.] 1997년에는 새턴용으로 이식된 하급생과 유노가 대 히트를 기록, 각각 30만장에 달하는 판매고를 올리며 회사의 전성기를 다시한번 확인시켜주었으며, 이듬해인 1998년 3월 발매된 취작은 전작의 대 히트와 입소문에 힘입어 능욕물 계열의 게임으로서는 드물게도 10만장 돌파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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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성기 === 이 즈음 회사의 규모가 커지고 인력 풀이 화려해지게 되었다. 타케이 마사키(竹井正樹)나 [[요코타 마모루]] 등 같은 애니메이터 출신의 원화가와 카도이 아야(門井亞矢) 등의 실력있는 외주 원화가가 회사에 대거 유입 되면서 창립 멤버 중 원화를 담당했던 아비루 토시히로가 퇴사, 밍크를 설립하게 된다. 1994년 4월 드래곤 나이트4를 발표하면서 다시한번 대 히트를 기록, NEC어베뉴를 통해 드래곤 나이트3가 이식되면서 좋은 반응을 끌어내는데 성공했다. 그리고 해가 넘어 1995년 1월, 엘프의 전성기를 알리는 동급생2를 발매, 이전까지 없었던 엄청난 호응을 받으면 성인게임으로서는 유래없는 10만장 돌파를 기록해냈다. 이어 발매된 유작으로 게임의 시스템적, 시나리오적 완성도에서 말그대로 ‘정점’을 찍는 모습을 보여주게 된다.[* 요코타 마모루는 유작을 끝으로 퇴사, 자신의 회사인 테리오스를 설립한다.] 이러한 대 성공을 기반으로 회사 빌딩을 지어 이전하는 등 성공의 결실을 대내외적으로 과시하기도 했다. 이 즈음, 경쟁사 중 하나였던 씨즈웨어의 주력 시나리오 라이터였던 [[켄노 유키히로]]의 신작인 이브 버스트 에러의 제작과정에서 많은 충돌을 일으키면서 게임 완성 직후 퇴사하자 엘프의 대표였던 히루타 마사토는 그를 자신의 후임, 즉 엘프의 주력 시나리오 라이터로서 섭외하여, 이사 직위를 맡기게 된다. 1996년 세가의 32비트 게임기 [[세가새턴]]이 발매되며 18금 규약의 게임까지 발매를 허용하자 실키즈 브랜드로 발매되었던 노노무라 병원 사람들을 직접 이식하며 가정용 게임기 시장에도 직접 참전, 그렇게까지 임팩트 있는 타이틀이 아니었음에도 거의 10만장이 팔리는 기염을 토했다. 또한 동 시기에 라이센스를 내준 슈퍼패미컴용 드래곤 나이트4가 40만장이 넘게 팔리는 등 전성기의 모습을 자랑했다. 같은해 동급생의 스핀오프(?) 시리즈인 하급생을 발매, 또한 대 히트를 기록한다. 켄노 히로유키의 참전과 함께 개발이 시작된 작품이 하나 있었으니, 규모가 작지 않은 게임을 많이 만들어본 엘프 내에서도 가장 커다란 규모의 게임인 이 세상의 끝에서 사랑을 노래하는 소녀 YU-NO이 그것이었다. 유노는 기획단계를 제외하고 개발에만 당시 성인용 게임으로서는 파격적으로 긴 8개월여에 걸쳐서 개발, 1996년 12월에 발매하였게 된다. 발매 직후부터 호평 속에 10만장이 넘는 판매량을 올리며 다시금 엘프의 이름을 높이 울리는데 성공한다.[* 그러나 필명 등록 문제로 처음부터 진통을 겪은 켄노 히로유키는 주로 히루타 마사토와의 마찰을 이유로 이듬해 말 세가새턴(Sega Saturn, セガサターン)용으로 이식한 유노를 끝으로 퇴사하고 만다. 이후 필명을 칸노 히로유키로 변경, 자신의 회사인 아벨을 설립하게 된다.] 1997년에는 새턴용으로 이식된 하급생과 유노가 대 히트를 기록, 각각 30만장에 달하는 판매고를 올리며 회사의 전성기를 다시한번 확인시켜주었으며, 이듬해인 1998년 3월 발매된 취작은 전작의 대 히트와 입소문에 힘입어 능욕물 계열의 게임으로서는 드물게도 10만장 돌파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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