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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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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88,3358
=== 등단과 전성기 === 1977년에 단편 「나자레를 아십니까」가 대구매일신문 신춘문예 가작으로 당선되면서 등단했다. 이어 대구매일신문 편집기자를 지냈다. 1979년에는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새하곡」이 당선되었으며 같은 해 중편 「사람의 아들」로 오늘의 작가상을 받으면서 문단의 주목을 받았다. 이후 이어 『황제를 위하여』(1980), 『우리 기쁜 젊은 날』(1981), 『금시조』(1981), 『익명의 섬』(1982) 『영웅시대』(1982~1984),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1987),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1987)를 발표하며 활발한 창작활동을 전개했다. 1980년대에 최전성기를 누리며 누구도 의심할 수 없는 당대 최고 작가라는 평가를 받았다. 90년대 들어서는 필력이 서서히 감퇴하기 시작했다는 것이 중론이다. 이에 관한 괴담 두 가지가 떠돌 정도였다. 첫째는 이전부터 대하 소설을 쓰려 했던 이문열이 갓 탈고한 첫 대하 소설을 출판사에 보냈는데 출판사에서 그 원고를 분실하는 바람에 충격에 빠졌다는 설. 이는 이문열이 1980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을 응모했다가 신문사 측이 원고를 잃어버려 예심위원에게 원고가 전달되지 못한 사건이 와전된 낭설인 듯 싶다. 두번째는 원래 이문열이 발표하던 소설은 모두가 젊은 시절에 써놓은 습작 원고였는데 90년대 들어서면서 그 습작의 재고가 서서히 떨어졌다는 설. 이는 문학 비평가 정규웅이 국내 문학가들의 가십을 다룬 『문단 뒤안길』이라는 연재물에서 구체적으로 언급한 적이 있다.[* 권유리아, 「이문열 문학 연구 현황에 대한 비판적 점검」, 『동북아 문화연구』Vol.13, 동북아시아문화학회, 2007, 79~80쪽.] 하지만 이문열이 80년대에 높은 평가를 받은 여러 작품들이 모두 다 등단 이전의 습작인 것은 아니기 때문에 90년대 이후의 부진을 설명하긴 미흡한 가설이다. 그 외에, 이문열의 스타일 자체가 새로운 시대에 맞지 않았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이문열의 소설은 본래 현학적인 문장에다가 이런저런 교양지식들을 삽입하는 형태가 주를 이룬다. 아하스 페르츠의 여정을 따라 여러 고대 종교들의 편린을 되짚어가는 『사람의 아들』, 황제의 입을 통해 여러 한학 고전들이 인용되는 『황제를 위하여』, 서술자가 시도때도 없이 끼어들며 정사(正史)와 연의의 비교를 시도하는 『평역 삼국지』따위가 그 예이다. 추리나 역사물 등 통속물의 진행 방식에다가 이러한 교양들을 얹어 독자로 하여금 재미있는 소설을 보면서도 여러 가지 지식을 많이 얻었다는 만족감을 얻게 하는 것이 이문열 소설의 패턴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방식은 대학 진학율이 떨어지던 시절 독자들이 소설을 통해 부족한 교육에 대한 대리만족을 느끼게 하는 측면도 다분히 있었다. 그러나 90년대 이후 대학 진학율이 올라가면서 '대학생'에 대한 박탈감 내지 열등감을 느끼는 계층이 차츰 감소된다. 즉 굳이 소설을 통해서 대리만족할 필요가 떨어진 것이다. 또한 이문열이 90년대 이후에도 그 이전의 스타일을 고수하며 『선택』 등 다분히 마초적이고 전근대적인 가치를 옹호하는 작품을 쓰는 것도 현대 독자들의 구미에는 맞지 않는 요소였다. 그럼에도 90년대까지는 이문열에 대한 관심이 지속되었다. 다만 90년대에 이르면 이문열의 소설에 대해서보다는 이문열 자체를 분석하기 위한 자료로서 여겨졌다는 쪽에 가깝다. 이문열이 소설가보다는 보수논객으로서의 발언을 쏟아냄에 따라 그 반대편 세력에서 '문제 작가' 이문열을 분석하기 위한 자료로서 이문열의 소설을 사용했던 것이다. 단 이에 대한 반박 의견도 있는데, 자세한 것은 아래의 반박 의견 문단 참조. 창작 활동을 하는 틈틈이 『삼국지』와 『수호지』, 『초한지』 등 중국 고전 소설들을 번역하였다. 특히 그가 평역한 『삼국지』는 출판 시장에서 공전의 히트를 쳐 현재의 『삼국지』 붐을 일으키는데 일조한 작품이다. 다만 『수호지』나 『초한지』는 『삼국지』만큼의 반향을 일으키지 못했다. 이 외에 세종대학교에서 교수직을 하는 동안 세계 작가들의 걸작 단편을 모은 앤솔러지인 『이문열 세계명작산책』을 내기도 했다. 이문열의 정치활동 등 그의 근황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들도 이 앤솔러지에 대해서만큼은 한수 접어주는 경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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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단과 전성기 === 1977년에 단편 「나자레를 아십니까」가 대구매일신문 신춘문예 가작으로 당선되면서 등단했다. 이어 대구매일신문 편집기자를 지냈다. 1979년에는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새하곡」이 당선되었으며 같은 해 중편 「사람의 아들」로 오늘의 작가상을 받으면서 문단의 주목을 받았다. 이후 이어 『황제를 위하여』(1980), 『우리 기쁜 젊은 날』(1981), 『금시조』(1981), 『익명의 섬』(1982) 『영웅시대』(1982~1984),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1987),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1987)를 발표하며 활발한 창작활동을 전개했다. 1980년대에 최전성기를 누리며 누구도 의심할 수 없는 당대 최고 작가라는 평가를 받았다. 90년대 들어서는 필력이 서서히 감퇴하기 시작했다는 것이 중론이다. 이에 관한 괴담 두 가지가 떠돌 정도였다. 첫째는 이전부터 대하 소설을 쓰려 했던 이문열이 갓 탈고한 첫 대하 소설을 출판사에 보냈는데 출판사에서 그 원고를 분실하는 바람에 충격에 빠졌다는 설. 이는 이문열이 1980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을 응모했다가 신문사 측이 원고를 잃어버려 예심위원에게 원고가 전달되지 못한 사건이 와전된 낭설인 듯 싶다. 두번째는 원래 이문열이 발표하던 소설은 모두가 젊은 시절에 써놓은 습작 원고였는데 90년대 들어서면서 그 습작의 재고가 서서히 떨어졌다는 설. 이는 문학 비평가 정규웅이 국내 문학가들의 가십을 다룬 『문단 뒤안길』이라는 연재물에서 구체적으로 언급한 적이 있다.[* 권유리아, 「이문열 문학 연구 현황에 대한 비판적 점검」, 『동북아 문화연구』Vol.13, 동북아시아문화학회, 2007, 79~80쪽.] 하지만 이문열이 80년대에 높은 평가를 받은 여러 작품들이 모두 다 등단 이전의 습작인 것은 아니기 때문에 90년대 이후의 부진을 설명하긴 미흡한 가설이다. 그 외에, 이문열의 스타일 자체가 새로운 시대에 맞지 않았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이문열의 소설은 본래 현학적인 문장에다가 이런저런 교양지식들을 삽입하는 형태가 주를 이룬다. 아하스 페르츠의 여정을 따라 여러 고대 종교들의 편린을 되짚어가는 『사람의 아들』, 황제의 입을 통해 여러 한학 고전들이 인용되는 『황제를 위하여』, 서술자가 시도때도 없이 끼어들며 정사(正史)와 연의의 비교를 시도하는 『평역 삼국지』따위가 그 예이다. 추리나 역사물 등 통속물의 진행 방식에다가 이러한 교양들을 얹어 독자로 하여금 재미있는 소설을 보면서도 여러 가지 지식을 많이 얻었다는 만족감을 얻게 하는 것이 이문열 소설의 패턴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방식은 대학 진학율이 떨어지던 시절 독자들이 소설을 통해 부족한 교육에 대한 대리만족을 느끼게 하는 측면도 다분히 있었다. 그러나 90년대 이후 대학 진학율이 올라가면서 '대학생'에 대한 박탈감 내지 열등감을 느끼는 계층이 차츰 감소된다. 즉 굳이 소설을 통해서 대리만족할 필요가 떨어진 것이다. 또한 이문열이 90년대 이후에도 그 이전의 스타일을 고수하며 『선택』 등 다분히 마초적이고 전근대적인 가치를 옹호하는 작품을 쓰는 것도 현대 독자들의 구미에는 맞지 않는 요소였다. 그럼에도 90년대까지는 이문열에 대한 관심이 지속되었다. 다만 90년대에 이르면 이문열의 소설에 대해서보다는 이문열 자체를 분석하기 위한 자료로서 여겨졌다는 쪽에 가깝다. 이문열이 소설가보다는 보수논객으로서의 발언을 쏟아냄에 따라 그 반대편 세력에서 '문제 작가' 이문열을 분석하기 위한 자료로서 이문열의 소설을 사용했던 것이다. 단 이에 대한 반박 의견도 있는데, 자세한 것은 아래의 반박 의견 문단 참조. 창작 활동을 하는 틈틈이 『삼국지』와 『수호지』, 『초한지』 등 중국 고전 소설들을 번역하였다. 특히 그가 평역한 『삼국지』는 출판 시장에서 공전의 히트를 쳐 현재의 『삼국지』 붐을 일으키는데 일조한 작품이다. 다만 『수호지』나 『초한지』는 『삼국지』만큼의 반향을 일으키지 못했다. 이 외에 세종대학교에서 교수직을 하는 동안 세계 작가들의 걸작 단편을 모은 앤솔러지인 『이문열 세계명작산책』을 내기도 했다. 이문열의 정치활동 등 그의 근황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들도 이 앤솔러지에 대해서만큼은 한수 접어주는 경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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