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편집
최근 토론
게시판 메인
도구
투표
무작위 문서
스킨 설정
파일 올리기
기타 도구
216.73.216.162
IP
사용자 도구
사용자 설정
로그인
회원 가입
최근 편집
최근 토론
돌아가기
삭제
이동
파일 올리기
미국 제국주의
(편집) (5)
(편집 필터 규칙)
5808,7634
=== 2차대전 이후와 냉전 === 1차대전 이후 중립을 지켜오다 1941년 일본에게 기습공격당한 미국은 2차세계대전에 참전한다. 2차세계대전에서 승리하게 된 미국은 한때 추축국에 맞서 동맹국이었던 소련과 경쟁하게 되는데 이게 바로 냉전이다. 1945년 일본의 항복하고 난 뒤, 미국은 한반도 문제에 개입한다. 당시 조선은 여운형의 건국준비위원회와 인민위원회를 토대로 새나라 건설을 위한 활동들을 전개해 나갔는데, 한반도 이남에 들어온 미군정은 소련군과는 달리 이를 강제 해산시키고 친일파들을 앞세워 분단의 틀을 구축했다. 미군정은 경제정책에서도 실패했는데, 급진적인 자본주의 정책을 조선 경제에 적용 시키는 바람에 쌀값 폭등으로 이어졌다. 이런 미군정에 맞서 1946년 대구 10.1 항쟁이 일어났고, 1948년 제주 4.3항쟁이 일어났으며, 그해 10월 여순 항쟁이 일어났다. 미국은 이런 민중항쟁을 친일 경찰과 군대를 동원하여 무자비하게 진압했고, 그 과정에서 수많은 민간인들이 학살당했다. 2차세계대전이 끝나고 난 뒤 미국은 중국의 국공내전과 그리스 내전 그리고 필리핀 문제에 개입했다. 중국 국민당의 선제공격으로 시작된 국공내전 시기 미국은 부패한 장제스 정권을 지원하여, 민중의 지지를 받던 중국 공산당이 정권을 잡지 못하도록 방해했다. 필리핀에서 급진주의자들이 세력을 확장하자 미국은 마르코스를 앞세워 이들을 분쇄시키고, 마르코스 우익 독재정부를 수립했다. 그리스가 나치로 부터 해방된 이후 영국이 그리스 문제에 개입했었는데, 2차세계대전 이후 그리스 내전이 좌우익 간의 갈등으로 확대되자 미국은 벤 플리트 장군을 비롯한 군사 고문단을 그리스에 파견하고 물자와 무기를 그리스 극우세력들에게 지원함으로써, 우익 독재정부를 수립했다. 1950년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미국은 이승만 정권을 돕기 위해 즉각적으로 군사를 투입했고, 전세를 역전시킨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노근리 학살을 자행했고, 이후 대한민국의 군경과 우익 청년단의 무차별 학살을 직간접적으로 도왔으며, 북한 지역을 폭격하여 100만 이상의 민간인을 학살했다. 미국의 제국주의적 정책이 극에 달했던 사례가 또 있는데, 그게 바로 베트남이다. 2차세계대전 이후 호치민이 독립을 선포하자 프랑스는 베트남을 다시 식민지화 하기위해 개입했고, 제1차 인도차이나 전쟁이 일어났다. 제1차 인도차이나 전쟁 시기 미국은 공산화를 막는다는 명분하에 프랑스를 지원했고, 프랑스 전쟁 비용의 80%를 대신 지불했다. 심지어 1954년 디엔비엔푸 요새가 함락될 것 같자, 당시 미국의 아이젠 하워 정부는 군대 투입까지 고려했었다. 이후 제네바 협약에 따라 통일을 위한 총선을 치러야 했지만, 미국은 응오딘지엠 정권을 내세워 이를 일방적으로 파기한다. 1960년대 남베트남 독재 정권이 무너질 위기에 놓이자 1964년 통킹만 사건을 조작하여 베트남을 침략한다. 베트남을 침략한 미국은 민가에 융단 폭격을 가하고 고엽제를 투하함으로써 수백만의 민간인들을 학살하고, 테러했다. 베트남 전쟁이 미제국주의의 추악한 전쟁이라는 사실을 알려주는 대표적인 사건이 있는데, 그게 바로 미라이 학살 사건이다. 그외에도 미국은 1950년대 피델 카스트로와 체게바라의 쿠바혁명 시기 그들의 적이었던 바티스타 정권을 지원했고, 1961년 쿠바를 봉쇄하여 그들을 경제적으로 고립시키는 등 제국주의적인 정책을 끊임없이 이어나갔다. 1970,80년대 남미 문제에 개입하여 우익독재정부를 무수히 많이 세웠다. 대표적으로 1973년 칠레에서 사회주의적 성향을 가진 아옌데를 암살하여 피노체트 독재정권을 세운 것과 1982년에 단행한 그레나다 침공 그리고 로널드 레이건 정부의 니카라과 콘트라 반군을 향한 전폭적인 지원 등을 들 수 있다.
(임시 저장)
(임시 저장 불러오기)
기본값
모나코 에디터
normal
namumark
namumark_beta
macromark
markdown
custom
raw
(↪️)
(💎)
(🛠️)
(추가)
=== 2차대전 이후와 냉전 === 1차대전 이후 중립을 지켜오다 1941년 일본에게 기습공격당한 미국은 2차세계대전에 참전한다. 2차세계대전에서 승리하게 된 미국은 한때 추축국에 맞서 동맹국이었던 소련과 경쟁하게 되는데 이게 바로 냉전이다. 1945년 일본의 항복하고 난 뒤, 미국은 한반도 문제에 개입한다. 당시 조선은 여운형의 건국준비위원회와 인민위원회를 토대로 새나라 건설을 위한 활동들을 전개해 나갔는데, 한반도 이남에 들어온 미군정은 소련군과는 달리 이를 강제 해산시키고 친일파들을 앞세워 분단의 틀을 구축했다. 미군정은 경제정책에서도 실패했는데, 급진적인 자본주의 정책을 조선 경제에 적용 시키는 바람에 쌀값 폭등으로 이어졌다. 이런 미군정에 맞서 1946년 대구 10.1 항쟁이 일어났고, 1948년 제주 4.3항쟁이 일어났으며, 그해 10월 여순 항쟁이 일어났다. 미국은 이런 민중항쟁을 친일 경찰과 군대를 동원하여 무자비하게 진압했고, 그 과정에서 수많은 민간인들이 학살당했다. 2차세계대전이 끝나고 난 뒤 미국은 중국의 국공내전과 그리스 내전 그리고 필리핀 문제에 개입했다. 중국 국민당의 선제공격으로 시작된 국공내전 시기 미국은 부패한 장제스 정권을 지원하여, 민중의 지지를 받던 중국 공산당이 정권을 잡지 못하도록 방해했다. 필리핀에서 급진주의자들이 세력을 확장하자 미국은 마르코스를 앞세워 이들을 분쇄시키고, 마르코스 우익 독재정부를 수립했다. 그리스가 나치로 부터 해방된 이후 영국이 그리스 문제에 개입했었는데, 2차세계대전 이후 그리스 내전이 좌우익 간의 갈등으로 확대되자 미국은 벤 플리트 장군을 비롯한 군사 고문단을 그리스에 파견하고 물자와 무기를 그리스 극우세력들에게 지원함으로써, 우익 독재정부를 수립했다. 1950년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미국은 이승만 정권을 돕기 위해 즉각적으로 군사를 투입했고, 전세를 역전시킨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노근리 학살을 자행했고, 이후 대한민국의 군경과 우익 청년단의 무차별 학살을 직간접적으로 도왔으며, 북한 지역을 폭격하여 100만 이상의 민간인을 학살했다. 미국의 제국주의적 정책이 극에 달했던 사례가 또 있는데, 그게 바로 베트남이다. 2차세계대전 이후 호치민이 독립을 선포하자 프랑스는 베트남을 다시 식민지화 하기위해 개입했고, 제1차 인도차이나 전쟁이 일어났다. 제1차 인도차이나 전쟁 시기 미국은 공산화를 막는다는 명분하에 프랑스를 지원했고, 프랑스 전쟁 비용의 80%를 대신 지불했다. 심지어 1954년 디엔비엔푸 요새가 함락될 것 같자, 당시 미국의 아이젠 하워 정부는 군대 투입까지 고려했었다. 이후 제네바 협약에 따라 통일을 위한 총선을 치러야 했지만, 미국은 응오딘지엠 정권을 내세워 이를 일방적으로 파기한다. 1960년대 남베트남 독재 정권이 무너질 위기에 놓이자 1964년 통킹만 사건을 조작하여 베트남을 침략한다. 베트남을 침략한 미국은 민가에 융단 폭격을 가하고 고엽제를 투하함으로써 수백만의 민간인들을 학살하고, 테러했다. 베트남 전쟁이 미제국주의의 추악한 전쟁이라는 사실을 알려주는 대표적인 사건이 있는데, 그게 바로 미라이 학살 사건이다. 그외에도 미국은 1950년대 피델 카스트로와 체게바라의 쿠바혁명 시기 그들의 적이었던 바티스타 정권을 지원했고, 1961년 쿠바를 봉쇄하여 그들을 경제적으로 고립시키는 등 제국주의적인 정책을 끊임없이 이어나갔다. 1970,80년대 남미 문제에 개입하여 우익독재정부를 무수히 많이 세웠다. 대표적으로 1973년 칠레에서 사회주의적 성향을 가진 아옌데를 암살하여 피노체트 독재정권을 세운 것과 1982년에 단행한 그레나다 침공 그리고 로널드 레이건 정부의 니카라과 콘트라 반군을 향한 전폭적인 지원 등을 들 수 있다.
비로그인 상태입니다. 편집한 내용을 저장하면 지금 접속한 IP가 기록됩니다.
편집을 전송하면 당신은 이 문서의 기여자로서 본인이 작성한 내용이
CC BY 4.0
에 따라 배포되고, 기여한 문서의 하이퍼링크나 URL로 저작자 표시가 충분하다는 것에 동의하는 것입니다.
전송
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