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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이낙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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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V시리즈 제작 === 1990년, 가이낙스는 SF물의 강자로서 이름을 날리고 있는 상태였는데, 이런 가이낙스에 NHK에게서 뜻밖의 의뢰가 날아든다. ‘세계명작동화’ 비슷한 기획으로 쥴 베르느의 ‘해저 2만리’를 만들어 달라는 제안을 한 것이다. NHK 측에서는 SF물을 잘 그리는 회사이니 잠수함을 잘 그려주겠지, 라는 생각 정도였겠지만 이게 진정한 폭탄을 밟은 거였다. 가이낙스는 원 의뢰를 베이스로 해저 2만리와는 10만 광년 정도 떨어진 “신비한 바다의 나디아“를 만들어서 TV에 내걸어 버린 것이었다. 방송 시간은 19:30 ~ 20:00라는, 아이들을 위한 방송 시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비키니 수영복 급의 복장을 입은 나디아와 약간의 각색을 넘어서 완전 딴 얘기로 새버리는 내용 전개 등 방송 도중 수많은 항의에 시달려야 했다. 그러나 매니아 층에게는 대단한 반향을 일으키는 데 성공했다. 여전히 빡빡한 자금과 타이밍으로 제작을 해나가야 했던 가이낙스였지만, 지금껏 쌓아온 노하우(?)를 적극 활용해서 이번에는 TV시리즈를 만들면서 아예 비용을 투자할 곳과 아예 반쯤 포기할 곳을 나눠서 제작을 시작하는데, 이 때 버림받은(?) 섬 편과 아프리카 편은 완전 다른 제작진 - 주로 공동으로 제작에 참여한 한국의 세영동화 - 에서 만든 것으로, 완전 본편과 붕 뜬다는 의미로 이렇게 본편과 따로 노는 애니메이션 부분을 ‘섬편’이라는 용어로 부르게 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가이낙스는 여러모로 자금 사정이 안좋던 시기였음에도 외주줬던 컷에서 안되겠다 싶은 컷들은 가이낙스 멤버들이 사비를 들여서 작품을 수정하기도 했다고 한다. 국내에서도 이 섬 편에 대해서는 비판의 목소리가 꽤 높은데, 이렇게 일부분을 버리지 않았다면 방송이 중간에 멈춰야 했을지도 모를 일이므로 선택에 대해서 무조건 비판만 하기는 힘들다는 의견이 득세를 하고 있다. 그 선택의 결과가 좋다 나쁘다는 개인의 판단에 맡길 수 밖에 없겠지만. 실제로 나디아 제작진은 당시 너무 마감에 쫓기던 가이낙스는 걸프전이 나서 속보 때문에 저녁 시간대 애니메이션이 방송을 쉬는 경우가 생겨 한 숨을 돌렸을 정도라고 회상한 바 있다. 그러나 나디아가 워낙 해저 2만리와 다른 내용이다보니 NHK와의 불화가 있었던 것은 당연한 일이었고(방송 끝까지 안 잘린거 보면 아주 나쁜 것은 아니었겠지만, 의뢰주가 의뢰한 ‘명작동화’를 안만들고 우주를 날아다니는 SF활극을 만들었으니 의뢰주와의 불화가 없었다면 되려 그게 더 이상한 일이리라. 무엇보다, 공영방송 NHK 아닌가 말이다), 이러한 사항이 타 방송사에 알려져 이후 한동안 TV시리즈 제작 의뢰가 들어오지 않게 되었다는 소문이 전해진다. 하지만 더 뼈에 시리는 사실은 이 작품의 판권이 가이낙스측에 전혀 없다는 점으로, 적자를 감수하면서 만든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제작 후에 나온 어떠한 저작물의 이익으로도 가이낙스가 수익을 얻지 못하는 사태에 직면한 것이다. 가이낙스가 나디아 관련으로 2차 수익을 얻은 물건은 PC9801로 직접 발매했던 게임 신비한 바다의 나디아 뿐이었다.[* 후에 이 게임은 허드슨에 의해 PC엔진으로 이식되었다.] 가이낙스는 이 일을 계기로 수익은 나누더라도 판권을 타 사에 넘기지 않는 형태로 애니메이션을 제작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동시에 자신들과 같은 문제에 다른 회사가 부딪히는 꼴을 보고싶지 않았기 때문에 이후 에반게리온을 비롯한 자사 판권을 타 사에 쉽게 쉽게 계약해주는 방침을 가지게 된다.[* 이 방침은 에반게리온이 별 희한한 동인지 비슷한 ‘공식’ 만화나 ‘공식’ 괴게임을 양산하는 원인이 되기도 했다.] 1991년에는 OVA ”오타쿠의 비디오“를 선보여 1970년대말부터 1980년대 전반의 애니메이션 붐을 배경으로 매니아 계층을 분석하는 실사+애니메이션의 반 다큐멘터리 형식의 작품을 만들어내는데, 사실상 가이낙스 스스로를 셀프 패러디화 한 작품이다. 이 작품이 '오타쿠‘라는 용어가 공식 매체를 통해 사방팔방으로 퍼지는데 큰 일조를 하게 되었다고 전해지는 것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1992년, 제너럴 프로덕츠는 원더 페스티벌의 권리를 ‘카이요도우’에 위임한 후 가이낙스와 합병하게 된다. 또한, 같은 해에 창설 멤버인 ‘무라하마 쇼우지’, ‘마에다 마히로’ 등이 독립하여 GONZO를 설립하였고, DAICON FILM 시대 이래 계속 회사를 이끌어 오던 사장인 ‘오카다 토시오’도 퇴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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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V시리즈 제작 === 1990년, 가이낙스는 SF물의 강자로서 이름을 날리고 있는 상태였는데, 이런 가이낙스에 NHK에게서 뜻밖의 의뢰가 날아든다. ‘세계명작동화’ 비슷한 기획으로 쥴 베르느의 ‘해저 2만리’를 만들어 달라는 제안을 한 것이다. NHK 측에서는 SF물을 잘 그리는 회사이니 잠수함을 잘 그려주겠지, 라는 생각 정도였겠지만 이게 진정한 폭탄을 밟은 거였다. 가이낙스는 원 의뢰를 베이스로 해저 2만리와는 10만 광년 정도 떨어진 “신비한 바다의 나디아“를 만들어서 TV에 내걸어 버린 것이었다. 방송 시간은 19:30 ~ 20:00라는, 아이들을 위한 방송 시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비키니 수영복 급의 복장을 입은 나디아와 약간의 각색을 넘어서 완전 딴 얘기로 새버리는 내용 전개 등 방송 도중 수많은 항의에 시달려야 했다. 그러나 매니아 층에게는 대단한 반향을 일으키는 데 성공했다. 여전히 빡빡한 자금과 타이밍으로 제작을 해나가야 했던 가이낙스였지만, 지금껏 쌓아온 노하우(?)를 적극 활용해서 이번에는 TV시리즈를 만들면서 아예 비용을 투자할 곳과 아예 반쯤 포기할 곳을 나눠서 제작을 시작하는데, 이 때 버림받은(?) 섬 편과 아프리카 편은 완전 다른 제작진 - 주로 공동으로 제작에 참여한 한국의 세영동화 - 에서 만든 것으로, 완전 본편과 붕 뜬다는 의미로 이렇게 본편과 따로 노는 애니메이션 부분을 ‘섬편’이라는 용어로 부르게 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가이낙스는 여러모로 자금 사정이 안좋던 시기였음에도 외주줬던 컷에서 안되겠다 싶은 컷들은 가이낙스 멤버들이 사비를 들여서 작품을 수정하기도 했다고 한다. 국내에서도 이 섬 편에 대해서는 비판의 목소리가 꽤 높은데, 이렇게 일부분을 버리지 않았다면 방송이 중간에 멈춰야 했을지도 모를 일이므로 선택에 대해서 무조건 비판만 하기는 힘들다는 의견이 득세를 하고 있다. 그 선택의 결과가 좋다 나쁘다는 개인의 판단에 맡길 수 밖에 없겠지만. 실제로 나디아 제작진은 당시 너무 마감에 쫓기던 가이낙스는 걸프전이 나서 속보 때문에 저녁 시간대 애니메이션이 방송을 쉬는 경우가 생겨 한 숨을 돌렸을 정도라고 회상한 바 있다. 그러나 나디아가 워낙 해저 2만리와 다른 내용이다보니 NHK와의 불화가 있었던 것은 당연한 일이었고(방송 끝까지 안 잘린거 보면 아주 나쁜 것은 아니었겠지만, 의뢰주가 의뢰한 ‘명작동화’를 안만들고 우주를 날아다니는 SF활극을 만들었으니 의뢰주와의 불화가 없었다면 되려 그게 더 이상한 일이리라. 무엇보다, 공영방송 NHK 아닌가 말이다), 이러한 사항이 타 방송사에 알려져 이후 한동안 TV시리즈 제작 의뢰가 들어오지 않게 되었다는 소문이 전해진다. 하지만 더 뼈에 시리는 사실은 이 작품의 판권이 가이낙스측에 전혀 없다는 점으로, 적자를 감수하면서 만든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제작 후에 나온 어떠한 저작물의 이익으로도 가이낙스가 수익을 얻지 못하는 사태에 직면한 것이다. 가이낙스가 나디아 관련으로 2차 수익을 얻은 물건은 PC9801로 직접 발매했던 게임 신비한 바다의 나디아 뿐이었다.[* 후에 이 게임은 허드슨에 의해 PC엔진으로 이식되었다.] 가이낙스는 이 일을 계기로 수익은 나누더라도 판권을 타 사에 넘기지 않는 형태로 애니메이션을 제작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동시에 자신들과 같은 문제에 다른 회사가 부딪히는 꼴을 보고싶지 않았기 때문에 이후 에반게리온을 비롯한 자사 판권을 타 사에 쉽게 쉽게 계약해주는 방침을 가지게 된다.[* 이 방침은 에반게리온이 별 희한한 동인지 비슷한 ‘공식’ 만화나 ‘공식’ 괴게임을 양산하는 원인이 되기도 했다.] 1991년에는 OVA ”오타쿠의 비디오“를 선보여 1970년대말부터 1980년대 전반의 애니메이션 붐을 배경으로 매니아 계층을 분석하는 실사+애니메이션의 반 다큐멘터리 형식의 작품을 만들어내는데, 사실상 가이낙스 스스로를 셀프 패러디화 한 작품이다. 이 작품이 '오타쿠‘라는 용어가 공식 매체를 통해 사방팔방으로 퍼지는데 큰 일조를 하게 되었다고 전해지는 것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1992년, 제너럴 프로덕츠는 원더 페스티벌의 권리를 ‘카이요도우’에 위임한 후 가이낙스와 합병하게 된다. 또한, 같은 해에 창설 멤버인 ‘무라하마 쇼우지’, ‘마에다 마히로’ 등이 독립하여 GONZO를 설립하였고, DAICON FILM 시대 이래 계속 회사를 이끌어 오던 사장인 ‘오카다 토시오’도 퇴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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