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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삼 (r1) (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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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泳三, 1927년 12월 20일 ~ 2015년 11월 22일

[[대한민국]]의 제14대 [[대통령]].

== 삶 ==
1927년 경상남도 통영군에서 김흥조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아버지인 김흥조는 부유한 어민이었기에 유복한 환경에서 자라났으며, 독실한 기독교 집안이어서 기독교 신앙을 가졌다. 통영중학교-경남중학교를 거쳐 [[서울대학교]] 철학과에 입학했다. [[한국전쟁]] 때 학도병으로 입대하였다. 1951년 대학 졸업 후 손명순과 결혼하였다.

=== 정치 ===
장택상, 이기붕과의 인연과 도움으로 정계에 입문하였고, 1954년 제3대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해 자유당 후보로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 이 때 나이가 만 26세로, 최연소 국회의원이라는 기록을 세웠다. 이 기록은 아직까지도 깨지지 않고 있다. 자유당 소속이었으나 [[이승만]]의 [[inter:나무위키:사사오입 개헌]]에 분노해 자유당을 탈당하고 민주당에 입당하였다. 1958년 총선에 출마했으나 낙선한 뒤 대선 후보 경선에서 [[조병옥]]을 지원하였다. 

1960년 [[북한]] 공작원에게 피격되어 어머니를 잃는 슬픔을 겪었다. 동년에 4.19 혁명으로 이승만 하야와 자유당 정권이 무너진 뒤, [[inter:나무위키:제5대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해 당선되었다. [[윤보선]]이 대통령이 되고 민주당을 탈당해 신민당을 창당하자 함께 합류하였다. 5.16 군사 정변 발생 후 군정이 들어서자  민정당 등에 입당하며 군정에 맞섰고, 박정희의 유신 정권에서 민주화 운동을 하며 여러 고초를 겪었다.

직선제 개헌 후 [[삼당합당]]을 했고, 제14대 대선에서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대통령 당선 후 금융실명제, 하나회 해체, 역사바로세우기 등 정책을 추진하며 80% 이상의 지지율을 얻기도 했으나, 각종 대형사고 등의 악재를 맞으며 서서히 떨어졌고 결국 [[inter:나무위키:1997년 외환 위기]]라는 치명타를 맞으며 6%까지 하락하며 쓸쓸하게 퇴임하였다. 퇴임 후 각종 정치활동을 하다가 건강이 악화되어 2015년 사망하였다.

== 영상 ==
[youtube(ELfrm2jE1P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