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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r1) (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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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가져온 문서/오메가]]
百濟 / Baekje

한반도 남서부에 위치했던 [[대한민국]]의 삼국 시대를 이룬 삼국의 하나이다.

== 역사 ==
=== 건국 ===
백제는 고구려에서 내려온 유민인 온조와 비류 세력이 건국한 것으로 도읍을 위례성[* 지금의 [[서울특별시|서울]] 부근]으로 잡았다. 이는 우수한 철기 문화를 가진 유이민과 한강 유역의 토착 세력이 결합 한 것이다. 처음에는 마한의 소국이었으나 주변의 소국들을 정복해 가며 점점 세력을 키워 갔다.

=== 체제 정비 ===
고이왕의 체제 정비로써 백제는 국가 기틀이 마련되었고 점점 강성해질 수 있었다. 한강 유역의 소국들을 장악하였으며, 관등제와 관복제를 정비하고, 해상을 통해 중국의 문물을 수입함으로써 삼국 중 처음으로 전성기를 맞게 되었다. 또한, 중국 남조의 동진으로부터 불교를 수용하였다.

=== 전성기 ===
백제는 근초고왕 때에 마한 영역을 모두 차지하여 전라도의 비옥한 곡창 지대를 확보하였고, 고구려를 공격하여 고국원왕이 전사하였다. 또한, 황해도까지 영토를 넓혔으며 산둥반도, 요서지방, 규슈 지역에도 세력을 떨쳤다. 이렇게 위례성(한성)을 중심으로 서남해를 모두 장악함으로써 안정적인 해상 교역로를 확보할 수 있었고 선진 문물과 종교를 받아들일 수 있었다.

=== 쇠퇴 ===
고구려에 광개토대왕이 등장하면서 엄청난 정복 활동으로 고구려는 전성기를 맞았으며, 그의 아들인 장수왕이 남진 정책으로 개로왕이 전사하게 되면서 백제가 심각한 위기를 맞게 되었다. 한강 유역을 모두 빼앗겼으며 웅진(지금의 공주 부근)으로 수도를 천도하였다. 또한, 나제 동맹을 강화하였다. 백제는 미숙한 외교, 해상 교역 침체, 권력 다툼 등으로 더욱 위축되었다.

=== 중흥 ===
백제가 쇠퇴하던 중 동성왕은 왕권을 강화하여 위기를 극복하고자 하였다. 남조와의 교류를 활발히 하였고 신라와의 동맹을 굳게 하였다. 또한, 신진 세력을 등용하여 귀족 세력을 견제하고자 하였으나 귀족 세력의 반발로 동성왕이 피살되었다. 동성왕 다음의 무령왕 역시 백제를 중흥하고자 하였는데, 가야에 대한 영향력을 확대하고 반란 세력을 토벌하였으며 백성의 생활을 안정시켰다. 22담로 설치를 통해 지방을 통제하기도 하였으며 백제는 점점 국력이 강해지기 시작하였다. 무령왕 다음의 성왕은 교통이 편리한 사비성(지금의 부여 부근)으로 도읍을 옮겼으며 국호를 부여를 계승한다는 의미로 남부여라 하였다. 또한 제도 정비 및 불교 진흥으로 나라가 강성해졌다. 결국 한강 유역을 되찾기에 이르렀으나 신라의 진흥왕이 나제 동맹을 파기하고 백제를 공격하여 다시 한강 유역을 빼앗기고 성왕은 전사하였다.

=== 멸망 ===
백제는 성왕이 죽음으로써 더욱 약해졌고 신라는 한강 유역을 장악하고 함경도까지 영토를 확장하여 매우 강해졌다. 백제의 의자왕은 초기에 대야성(지금의 합천 부근)을 공격하는 등 신라에 대한 항쟁을 계속하였으나 후에 사치와 향락에 빠져들며 백제는 위기에 빠졌다. 신라는 나당 연합을 결성하여 백제를 위협하기 시작했고 마지막 황산벌 전투에서 계백이 패배함으로써 백제는 멸망하였다.

=== 백제 부흥 운동 ===
백제가 멸망한 이후 충청도 지역에서 백제를 부흥시키고자 하는 세력이 등장하였다. 주류성에서 복신 등이 의자왕의 아들 푸여풍을 왕으로 추대하였으며 임존성에서는 흑치상지가 부흥 운동을 전개하였다. 4년간 저항하였으나 지도층 내분, 백강 전투 패배로 부흥 세력은 토벌되었다.

== 문화 ==
=== 학문 ===
백제는 오경박사를 두어 유교 경전을 가르쳤다.

===종교===
백제에는 종교가 융성하였으며 가장 처음 불교를 받아들였고 중앙 집권 체제 확립 시기에 수용하였다. 불교는 강화된 왕권을 사상적으로 뒷받침하였고 뛰어난 예술 작품도 많이 남겼다. 이를테면, 온화한 백제의 미소로 유명한 서산 마애여래삼존상, 익산 미륵사지석탑, 정림사지 5층 석탑등이 있다. 백제는 이 불교를 [[일본]]에 전파하기도 하였다. 호류사 백제 관음상이 대표적이다. 또한, 미륵신앙도 유행하였는데, 미륵사가 창건되었다.

===고분===
백제는 고구려의 지배 세력이 건국한 것이므로 초기엔 고구려 형식인 계단식 돌무지무덤 형태의 고분이 많았으나 점점 백제만의 색깔을 띄었다. 굴식 돌방무덤이나 벽돌 무덤등이 있는데, 대표적으로 무령왕릉, 부여 능산리 고분이 있다. 계단식 돌무지무덤 형태로는 석촌동 돌무지무덤이 있다.

=== 예술 ===
==== 음악 ====
주로 종교 의식, 축제와 관련하여 발달하였으며 가요도 존재하였다. 현존하는 유일한 백제 가요인 정읍사는 당시 생활 모습을 반영하고 있다. 정읍사는 지금의 정읍 지역에 사는 행상의 아내가 남편이 돌아오지 않자 높은 산에 올라 먼 곳을 바라보며 남편이 혹시 해를 입지 않을까 걱정하는 마음을 나타낸 노래이다.

== 보기 ==
* 한국사 연표

== 영상 ==
[youtube(Cd7n-URAk6E)]

[Include(틀:가져옴,O=오메가, C=[[https://creativecommons.org/licenses/by-nc-sa/3.0/deed.ko|CC BY-NC-SA 3.0]], L=[[https://archive.ph/dAbiB|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