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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 (r1) (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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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https://pbs.twimg.com/media/CuZK3rPUkAA3ovE.jpg|width=400]]
조선 태조부터 철종까지 25대 472년간의 역사를 다룬 편년체 역사서이다. 26대 고종실록과 27대 순종실록도 있지만 일제강점기 일제의 주도 아래에 쓰여졌으며 기존 실록과 편찬 방식에 대한 차이, 역사 왜곡 등으로 인하여 일반적으로는 실록으로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대한민국]]의 국보 제151호이자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이기도 하다.

== 개요 ==
조선왕조실록은 고종실록과 순종실록을 포함하여 1967권 948책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고종실록과 순종실록을 제외하고도 1893권 888책의 방대한 분량을 가지고 있다. 총 6천 4백만자의 방대한 분량을 가지고 있으며, 현재 남아있는 정족산본 1181책, 태백산본 848책, 오대산본 27책, 기타 산엽본 21책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되어 있다. 기본적으로 왕의 실록은 해당 왕의 사후에 작성되었으며, 임금은 조선시대 연산군때와 같은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실록의 열람이 불가능했다. 사관들은 독립성과 비밀성을 부여받아 왜곡되지 않은 내용의 자유로운 작성이 가능하였다.

== 편찬 과정 ==
왕이 승하하면 다음왕대에 실록청을 설치하여 실록을 편찬하는 것이 상례였는데, 실록청 구성원이 모두 춘추관의 구성원이었다. 사관들이 작성한 사초를 바탕으로 승정원일기, 의정부등록, 조보, 비변사등록, 일성록 등을 1차 사료로 하였다고 한다. 실록청을 도청과 1~3개의 방으로 나누어 각 방에서 1차 자료인 초초를 작성하고 이를 편집하여 중초를 작성, 마지막으로 총재관과 도청 장상이 재수정을 하고 문장을 통일하여 정초를 작성하였다. 완성된 실록을 보관하기에 앞서 초초와 중초를 기록한 종이들을 물에 씻어 새 종이로 만들었는데, 이 과정을 세초라고한다.

== 역사 ==
=== 조선 전기 ===
조선시대에 최초로 실록을 편찬한 것은 조선 태종 13년인 1413년 태조실록 15권의 편찬이 최초이다. 그 이후 1426년 정종실록 8권이 편찬됐으며, 1431년 태종실록 36권이 편찬되었다. 그 후 세왕의 실록을 2부씩 등사, 1부는 춘추관, 2부는 충주사고에 실록을 보관하였다. 그 후 1445년 전주와 성주에 사고를 신설하고 각 1부씩 나누어 보관하였으며, 그 후 역대 실록을 편찬할 때마다 출판하여 춘추관, 충주, 전주, 성주 4사고에 1부씩 보관하였다.

=== 임진왜란 이후 ===
임진왜란 때 전쟁으로 인하여 춘추관 사고, 충주사고, 성주사고의 조선왕조실록이 소실되고 전주사고의 실록만이 온전하게 있었다. 그나마도 전주의 선비 손홍록과 안의가 전주사고의 실록을 사비를 이용하여 전쟁 기간 동안 보관해뒀기에 안전하게 현재까지 실록이 남아있을 수 있었다고 전해진다. 그 후 1603년부터 1606년까지 태조부터 명종까지 13대의 실록을 재발간하였으며, 광해군 때 춘추관, 마니산, 오대산, 태백산, 묘향산 5대사고에 보관하였다. 

=== 이괄의 난 이후 ===
그러나 1624년 이괄의 난으로 인하여 다시 실록이 모두 불타고 만다. 묘향산 사고에 있던 실록은 1633년 후금과의 외교 관계 문제 상 무주 적장산으로 이전하고, 마니산 실록은 1636년 병자호란으로 상당수가 소실된다. 조선 현종때 마니산 실록은 보수되었으나 춘추관 실록은 복구되지 못하였으며, 마니산 실록은 1660년 정족산 사고를 신설하고 1678년 이동되었다.

=== 일제강점기 ===
1910년 일제의 한일 병탄 이후로 각지의 사고를 철페하면서 조선왕조실록은 다시 한번 수난을 겪는다. 정족산 사고와 태백산 사고는 조선총독부 학문과 분실로 옮기고, 적장산 사고의 실록은 이왕직 장서각으로 옮겼으며, 오대산 사고의 실록은 도쿄 제국대학에 옮겨뒀다가 1923년 관동 대지진 당시 788권 중 714권이 소실된다. 정족산본과 태백산본은 1930년 경성 제국대학으로 옮겨졌다.

== 목록과 분량 ==
|| 이름 || 권 || 책 || 원 이름 ||
|| 태조실록 || 15권 || 3책 || 태조강헌대왕실록 ||
|| 정종실록 || 6권 || 1책 || 공정왕실록 ||
|| 태종실록 || 36권 || 16책 || 태종공정대왕실록 ||
|| 세종실록 || 163권 || 67책 || 세종장헌대왕실록 ||
|| 문종실록 || 13권 || 6책 || 문종공순대왕실록 ||
|| 단종실록 || 14권 || 6책 || 노산군일기 ||
|| 세조실록 || 49권 || 18책 || 세조혜장대왕실록 ||
|| 예종실록 || 8권 || 3책 || 예종양도대왕실록 ||
|| 성종실록 || 297권 || 47책 || 성종강정대왕실록 ||
|| 연산군일기 || 63권 || 17책 || 연산군일기 ||
|| 중종실록 || 105권 || 53책 || 중종공희휘문소무흠인성효대왕실록 ||
|| 인종실록 || 2권 || 2책 || 인종영정헌문의무장숙흠효대왕실록 ||
|| 명종실록 || 34권 || 21책 || 명종대왕실록 ||
|| 선조실록 || 221권 || 116책 || 선조소경대왕실록 ||
|| 선조수정실록 || 42권 || 8책 || 선조소경대왕수정실록 ||
|| 광해군일기[* 중초본] || 187권 || 64책 || 광해군일기 ||
|| 광해군일기[* 정초본] || 187권 || 40책 || ||
|| 인조실록 || 50권 || 50책 || 인조대왕실록 ||
|| 효종실록 || 21권 || 22책 || 효종대왕실록 ||
|| 현종실록 || 22권 || 23책 || 현종순문숙무경인창효대왕실록 ||
|| 현종개수실록 || 28권 || 29책 || 현종순문숙무경인창효대왕개수실록 ||
|| 숙종실록 || 65권 || 73책 || 숙종현의광륜예성영렬장문헌무경명원효대왕실록 ||
|| 경종실록 || 15권 || 7책 || 경종덕문익무순인선효대왕실록 ||
|| 경종수정실록 || 5권 || 3책 || 경종덕문익무순인선효대왕수정실록 ||
|| 영조실록 || 127권 || 83책 || 영종지행순덕영모의열장의홍륜광인돈희체천건극성공신화대성광운개태기영요명순철건건곤녕익문선무희경현효대왕실록 ||
|| 정조실록 || 54권 || 56책 || 정종문성무열성인장효대왕실록 ||
|| 순조실록 || 34권 || 36책 || 순종연덕현도경인순희문안무정헌경성효대왕실록 ||
|| 헌종실록 || 16권 || 9책 || 헌종경문위무명인철효대왕실록 ||
|| 철종실록 || 15권 || 9책 || 철종희륜정극수덕순성문현무성헌인영효대왕실록 ||
|| 도합 || 1894권 || 888책 || ||

=== 고종, 순종실록 ===
|| 이름 || 권 || 책 || 원 이름 ||
|| 고종실록 || 52권 || 52책 || 고종통천융운조극돈륜정성광의명공대덕요준순휘우모탕경응명입기지화신열외훈홍업계기선력건행곤정영의홍휴수강문헌무장인익정효태황제실록 ||
|| 순종실록 || 22권 || 8책 || 순종문온무녕돈인성경효황제실록 ||

== 트리비아 ==
* 정종과 단종은 숙종때에서야 묘호를 받았기 때문에 정종실록은 본문에 공정왕실록, 단종실록은 본문에 노산군일기라고 써있다.
* 보통 실록의 권 편성은 1년치를 한 권, 그렇지 않은 경우 반년치나 2개월치를 한 권으로 편성했지만 성종실록은 기사의 많고 적음을 가리지 않고 1개월치를 한 권으로 편성해서 실록 중 권구성이 제일 많다.
* 선조실록은 내용의 부실성 등 여러가지 문제로 인하여 선조수정실록으로 재편찬 되었었다. 이 후 정치적 이해관계에 얽혀서 현종실록, 경종실록이 현종개수실록, 경종수정실록으로 재편찬되기도 했다. 기존 실록은 보존되었다.

== 외부 ==
* [[https://sillok.history.go.kr/|조선왕조실록]]

== 영상 ==
[youtube(w0R5zZLrsjM)]

[Include(틀:가져옴2,O=오메가, C=[[https://creativecommons.org/licenses/by-nc-sa/3.0/deed.ko|CC BY-NC-SA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