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  
  •  
  •  
  •  
  •  

함석헌 (r1) (복원)


비로그인 상태입니다. 편집한 내용을 저장하면 지금 접속한 IP가 기록됩니다.



[[분류:가져온 문서/진보위키]]
함석헌(1901~1989)는 한국의 독립운동가, 사회운동가, 저술가, 언론인, 기독교 운동가다.

== 삶 ==
=== 독립운동 ===
평안북도 용천 출생. 고등학교까지 진학하여 다니다가 3.1운동에 참가하여 퇴학당하였다. 이후 서울에서 친척인 함석규 목사를 만나 평안북도 정주의 오산학교에서 학업을 계속하였다. 1924년 일본으로 유학하여 지내는 동안 무교회주의[* 교회에 다니지 않고 신앙생활을 하는 것]등을 주장한 기독교운동가 우치무라 간조를 만나 큰 영향을 받았다. 1928년 일본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오산학교에서 교사를 하다가 1938년 창씨개명에 거부하면서 사임하였다. 1940년부터는 평안남도 송산에서 송산학원의 이사로 참여해 활동하다가 계우회 사건[* 송산학원의 전 주인인 김두혁이 항일운동을 하다 검거된 사건]에 연루되어 1년간 수감생활을 하다 1942년 초 풀려났다. 그런데 몇개월 안되어 1942년 5월에 성서조선 필화사건[* 성서조선은 김교신, 함석헌, 송두용 등등 무교회주의를 따르는 총 6명이 창간한 동인지이다. 1942년 3월호 성서조선 권두언에 '얼어죽은 개구리를 애도함'이라는 글이 실렸는데, 일제는 얼어죽은 개구리가 조선을 빗댄 것이라며 성서조선을 폐간시키고 관련자를 체포하였다.]에 연루되어 1943년까지 미결수로 옥살이를 하였다.

=== 해방 이후 군정까지 ===
해방 이후에 함석헌은 반공시위 신의주 학생운동 사건의 배후라며 소련 당국에 체포되어 죽을 고비를 넘기고 이후로도 감옥을 제 집 드나들듯 하다가 급기야는 시베리아에 귀양 갈지도 모르는 처지가 되어 1947년 월남하였다. 월남 이후 YMCA에서 성서강해를 하다가, 전후 1956년 부터 장준하 등의 천거로 잡지 사상계에 기고를 하면서 논객으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이 때, 함석헌은 기독교계와 사회를 비판하면서 논쟁의 중심에 섰다. 그러다가 한국전쟁 관련자 훈장 서훈을 반대하는 글을 쓴 일로 잠시 투옥되기도 했다.

[Include(틀:가져옴, O=진보위키, C=[[https://creativecommons.org/licenses/by-nc-sa/3.0/|CC BY-NC-SA 3.0]], L=(깨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