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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후이꽛 (r2) (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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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 후이 꾸앗(Phan Huy Quát, 1908년 6월 12일 ~ 1979년 4월 27일)은 남베트남의 기자, 의사, 정치인으로 베트남공화국 제7대 수상을 지낸 인물이다. 자는 '쩌우 끄(Châu Cử)'고 수상직에 오르기 이전에도 보대황제와 군사지도자들의 집권 아래 각부총장(각부장관)직을 지낸 정객이며 소속은 대월국민당이다.

== 생애 ==
1908년 6월 12일 프랑스의 지배 아래 하띵성에서 태어났다. 그의 집안은 후여조시대부터 반휘근과 같은 걸출한 문인들을 배출한 명문가이기 때문에 어릴 적부터 자연스럽게 학문의 길로 들어섰으며 장성한 뒤에는 기자와 의사, 관료로 활동했다. 이후 프랑스가 베트남국을 세우자 괴뢰원수인 보대황제는 그를 교육부 총장, 국방부 총장 등의 요직에 앉혔고 퇴임 후에는 대월국민당에 입당했다.

=== 베트남 공화국 ===
오정염은 치열한 시가전 끝에 보대황제와 그의 가신들을 몰아내고 베트남공화국을 건국하여 대통령직에 취임하다가 즈엉 반 밍의 군사정변으로 살해당했다. 그러나 밍 또한 측근인 응우옌 카잉에 의해 축출됐다.

응우옌 카잉은 육군회동이라는 기구를 설치하고 주석으로 취임했는데, 수상으로는 꾸앗 자신이 임명됐다. 꾸앗은 중장 응우옌 반 티에우, 소장 응우옌 까오 끼를 비롯한 군사정권의 실력자들을 자신의 내각에 입각시켜 정국을 바로잡으려 노력했으나 뜻대로 되지 않았으며 결국 티에우 중장과 끼 소장의 군사정변으로 자신 또한 카잉 주석과 함께 실각한다.

=== 베트남사회주의공화국 ===
티에우와 끼는 각각 대통령과 부통령으로 취임했지만 북베트남의 남진으로 남베트남이 멸망하면서 실각했다. 티에우와 끼는 미국으로 피신했지만 꾸앗은 미처 피신하지 못한 바람에 베트남인민군에 체포되어 노동개조수용소에 투옥되어 1979년 4월 27일 간염으로 옥사한다.

[Include(틀:가져옴, O=진보위키, C=[[https://creativecommons.org/licenses/by-nc-sa/3.0/|CC BY-NC-SA 3.0]], L=[[https://web.archive.org/web/20210422043844/https://jinbowiki.org/wiki/index.php/%ED%8C%90_%ED%9B%84%EC%9D%B4_%EA%BE%B8%EC%95%97|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