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古朝鮮史- 諸問題
과거 한반도에 존재했던 고조선의 역사와 관련된 문제, 혹은 논쟁들을 말한다.
1. 단군신화 ✎ ⊖
1.1. 내용 ✎ ⊖
- "새로 나라를 세워...요임금과 같은 시대이다." : 시대 파악
- "환웅은 무리 삼천 명을 거느리고 태백산의 신단수 밑에 내려와서..." : 위치비정, 선민사상
- "...풍백, 우사, 운사를 거느리고..." : 농경사회
- "...곡식, 목숨, 질병, 형벌 등..." : 형벌제도
- "...경인년에 평양성에 도읍을 정하고 나라 이름을 조선이라 하였다. 다시 도읍을 백악산 아사달로 옮겼다." : 도읍 이동(이유?)
- "...기자를 조선에 봉했다." : 기자조선
1.2. 무씨사당 화상석 ✎ ⊖
- 중국 산동성에 위치
- 서기 147년 한나라시대에 만들어짐
- 김재원 : 단군신화를 새겨놓았다고 주장
- 동이족, 기원전 6000년 경 - 중국 동해안, 만주, 한반도에 걸쳐서 동방문화권 형성
- 서→ 동으로 진출하는 한족과 충돌, 다수가 동쪽으로 이동했지만 일부는 그대로 남아있었음
- 중국 산동지방에 남아 있던 동이족들이 무씨 사당에 단군신화를 새겨둠
- → 일연은 오랜 세월 전에 만들어져 내려온 단군신화를 기록한 것
- 중국 황제의 신화라면 이야기가 전혀 달라짐
2. 기자동래설 ✎ ⊖
- 은나라 마지막 왕인 주왕에게 간하다가 감옥에 갇힌 기자가 무왕에 의해 풀려남
- 무왕 : 은나라 멸망, 주나라가 천하를 차지함
- 기자 : 고국인 은나라가 망했으므로 조선으로 망명, 무왕이 기자를 조선에 봉함
- 무왕 13년 : 기자를 찾아가 홍범(세상을 다스리는 큰 법)을 배움
2.1. 반박 ✎ ⊖
- 평양의 기자묘 : 고려,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기자와는 관련이 없다.
- 황하 유역과 요하 동쪽 지방의 신석기·청동기 문화가 매우 큰 차이를 보인다.
- 한나라 이전 : 기자에 대한 문헌자료 존재. 하지만 조선으로 갔다는 내용은 없음<br>한나라 이후 : 기자가 조선에 봉해졌다는 내용 등장
- 기자가 조선에 있었다면 홍범구주의 전래가 불가능
- 망명자에 불과한 기자가 토착세력(단군조선)의 왕이 되는 것은 어렵다.
- 단군조선 → 기자조선 → 위만조선이 아니라<br>단군조선 → 예맥조선 → 위만조선이었을 것이다.
3. 위만조선 ✎ ⊖
- 기자의 후예 조선후 : 주나라가 쇠약해지고 연나라가 스스로 왕이라 칭하자 장차 동쪽으로 침략할 것으로 판단<br>스스로 왕이라 칭하고 연나라를 공격하여 주 왕실을 받들려 함
- 대부 '예'가 간하여 중지
- 예를 서쪽으로 파견하여 연나라를 설득하니 전쟁을 멈추고 조선을 침공하지 않음<br>
- 요(변방 장벽)을 넘어 연나라의 동쪽 땅을 빼앗음<br>
- 연나라가 장군 진개를 보내 조선 서쪽을 공격하여 요동지역을 빼앗고 만번한을 경계로 삼음
- 조선왕 : 부 → 준
- 중국 농민봉기(진승, 항우) : 연, 제, 조 백성들이 조선으로 도망쳐 서쪽 지방에 살게 됨
- 연나라 사람 위만도 망명하여 동이족의 복장을 하고 패수를 건너 준에게 항복<br>철기문화를 가져옴
- 준에게 지방 장관직을 받은 후 세력을 길러 나라를 빼앗고 스스로를 조선왕이라 칭함<br>
- 요동 태수 : 위만을 한나라의 신하로 삼음
- 요새 밖 오랑캐를 막아 변방에서 도둑질을 하지 못하게 함
- 오랑캐 군장들이 천자를 뵙고자 하는 것을 막도록 함
- 이웃 작은 고을들을 침략하여 항복시킴
- 손자 우거왕, 왕검성 함락, 조선 멸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