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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드 크리크 학살

최근 수정 시각 : 2024-05-18 23:16:05 | 조회수 : 5

샌드 크리크 학살사건은 1864년 11월 29일 시빙턴 대령이 이끄는 콜로라도령 민병대가 백인에게 우호적인 남부 샤이엔 족의 검은주전자(Mo'ohtavetoo'o)와 아라파호족 왼뼈(Niwot)의 마을을 습격하여 비무장 상태의 원주민들을 학살한 사건이다.

목차

1. 배경
2. 충돌의 시작
3. 학살
4. 학살 이후
5. 영상

1. 배경

미국 중서부의 넓은 지역에 거주하고 있던 샤이엔족은 북부 샤이엔과 남부 샤이엔으로 나뉘어져 있었다. 수우족에 더 가까웠던 북부 샤이엔과는 달리 남부 샤이엔족과 동맹인 아라파호족은 미국과 오랜 시간 화평을 유지하려고 노력했다. 그 결과 샤이엔과 아라파호령 한복판에 콜로라도 주와 대도시 덴버가 건설되고 있는데도 이 두 부족은 아무 대응도 하지 않았다.

미국 당국은 콜로라도 자체가 불법 거주지였음에도 불구하고 덴버를 주도로 하는 콜로라도령을 인가했고, 이 불법 상태를 해결하기 위해 샤이엔족 검은주전자, 흰 영양, 여윈곰(Awoninahku), 아라파호 족 작은갈까마귀(Oh-has-tee)등등의 우호적인 추장들과 1861년 와이즈 요새에서 조약을 맺었다. 그런데, 이 조약 역시 백인들이 다른 인종과 맺었던 다른 대부분의 조약들과 같이 사기 조약이어서 추장들이 알고 있는 내용과 백인들이 작성한 내용이 완전히 달랐다. 이런 헌신(?)적인 행동 덕분에 이 추장들은 1863년에는 워싱턴으로 초청받아 대통령 링컨을 만나 직접 훈장과 성조기를 수여받았고, 검은주전자는 매우 기뻐하며 자기 천막에 항상 성조기를 걸고 다녔다.

2. 충돌의 시작

1864년 5월 중순 여윈곰과 검은주전자는 백인들과의 충돌을 피하려고 마을을 플래트 강 북쪽으로 옮기기로 결정하고 이동을 시작했다. 그런데, 그들이 캔자스 주의 스모키 힐을 지나고 있었을 때 갑자기 100명 가량의 정체불명의 미군이 접근해 왔다. 여윈곰은 미군이 도대체 왜 공격하는지 알 수가 없어서 링컨에게 받은 훈장과 조약증서를 들고 미군에게 접근했다가 다짜고짜 총을 맞고 죽었다. 대 추장이 이렇게 어이없이 죽자 샤이엔 전사들은 분노하여 미군을 공격했고 약간의 사상자를 낸 채 미군은 후퇴했다. 한편, 북쪽으로 사냥을 나간 샤이엔 개병대(Hotamétaneo'o : dog men) 역시 미군과 산발적인 충돌을 하고 있었다. 이 일련의 사건들의 원흉은 콜로라도에서 아예 원주민을 박멸하기 위해 작당한 시빙턴 대령과 2대 콜로라도령 주지사 존 에반스였다. 이 시빙턴이란 자는 열성적인 전직 감리교 전도사로, 인디언을 죽이는 일이라면 하느님 나라에 있는 모든 수단을 써도 옳다고 공공연히 말하고 다니는 인간쓰레기였다. 이들은 수우 족이 1863년과 1864년에 각각 알프레드 설리가 이끄는 토벌대의 공격을 받고 그 보복으로 백인들을 습격한 것을 빌미로 애꿎은 샤이엔 족을 무차별 공격했다.

3. 학살

미군 중에도 윈쿱 소령같이 원주민들을 만나본 후 인종차별적 생각을 버리고 이들과 우호적으로 지내려 노력한 사람이 있었으나 이런 행동이 군 상층부의 눈 밖에 나서 윈쿱은 강제 전출 당하고 만다. 그 뒤를 이어 부임한 앤터니 소령은 시빙턴과 한통속이어서 원주민들을 모두 없앨 계획을 세웠다. 원래 검은주전자는 미군과 더 이상 충돌하기 싫었기 때문에 아예 멀리 아칸소 주 남쪽으로 이주할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앤터니는 검은주전자를 안심시켜 샤이엔과 아라파호 부족이 샌드 크리크로 모이도록 유도하였다. 앤터니와 시빙턴은 11월 29일 밤에 샌드 크리크의 샤이엔-아라파호 숙영지를 습격하였다.

아비규환 속에서 검은주전자는 미군들이 성조기가 걸려 있으면 공격하지 않을 거라고 믿고 자기 천막 밑에 사람들을 모았지만, 그것은 오히려 미군이 쏘기 좋게 표적을 모아놓는 행동밖에 되지 않았다. 영어를 좀 할 줄 알았던 흰 영양은 달려나가면서 멈추라고 소리쳤지만 그 순간 총에 맞아 죽었다. 그러나 콜로라도 민병대는 훈련 상태와 규율이 형편없었기 때문에 오인사격으로 9명이 죽고 38명이 부상당하는 추태를 보였고, 원주민 측에서는 추장 흰 영양, 왼뼈, 애꾸눈, 전투모 등을 포함한 133명이 죽었고 대부분의 원주민들은 도망칠 수 있었다. 그 중에서 남자는 28명 뿐이었고 나머지는 여자, 대부분이 어린아이였다. 미군들은 시체에서 머리가죽을 벗기고 성기를 잘라서 자기 무기에 장식했다.

4. 학살 이후

이 사건으로 화친을 주장했던 검은주전자와 작은갈까마귀 등은 완전히 원주민들의 신망을 잃었고, 대부분의 부족들이 북쪽으로 가 테톤 수우족과 합류하여 공동전선을 펴게 되어 이 때 부터 사실상 평원 인디언 부족의 경계는 무의미해지게 되었다. 미국 당국도 이건 너무 심했다 싶었는지 시빙턴과 존 에반스를 공식 조사했지만, 콜로라도를 차지하려는 야욕은 버리지 않아서 끝끝내 남쪽으로 도망친 검은주전자와 작은갈까마귀를 찾아내어 콜로라도를 포기하도록 하는 조약에 서명하게 하는 데 성공했다. 잔존 남부 샤이엔 족은 아칸소 강 남쪽에 있는 카이오와 족 원주민 보호구역에 갇혀 살게 되었다. 하지만 비극은 거기서 끝나지 않아서, 1868년 검은주전자의 부족은 커스터가 이끄는 제 7기병대의 습격을 받아 전멸하였고 검은주전자 본인도 이 두 번째 학살은 피하지 못했다.

5. 영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