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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문회의 난

최근 수정 시각 : 2023-01-25 21:05:11 | 조회수 : 27

黎文𠐤之乱 / Lê Văn Khôi revolt

1833년 명명제 때 농민과 기독교인을 주축으로 한 세력이 일으킨 봉기. 이들은 응우옌 왕조 남부의 자딘성을 비롯한 여러 성을 점령하여 항쟁하였으나 결국 관군에 의해 섬이 함락되면서 진압되었다.

목차

1. 배경
2. 평가

1. 배경

봉기 지도자인 여문회는 대남의 개국공신인 여문열의 아들로, 여문열은 떠이선 농민 운동 당시 자신의 주군 자롱 황제를 도와 서산가를 무너뜨리고 응우옌 왕조의 창건에 일조해 혁혁한 군공을 세운 바가 있다. 그러나 자롱 황제가 죽은 이후 여문열은 조정 대신들과 장수들의 시기를 샀고, 설상가상으로 자롱 황제의 아들 명명제도 그를 고깝게 여기면서 조정에서 그의 입지는 매우 위태로워졌다. 결국 1832년에 사망한 뒤 명명제에 의해 부관참시가 이뤄졌다.

이에 부친의 부관참시와 중앙집권 정책의 반발한 여문회가 봉기를 일으킨 것이다.

2. 평가

마지막 봉건왕조 시대에 일어난 농민반란이라는 점에서 한국에서 일어난 홍경래의 난과 비견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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