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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 are the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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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탄생과정 == 이 곡이 쓰여지기 전에, 민중가수였던 해리 벨라폰테가 1983년부터 시작된 아프리카의 대기근을 돕기위해 비영리 기구인 USA for Africa를 창설했다. 그 사이 1984년 영국에서 발표된 ‘밴드 에이드’ 기획에 영향을 받은 벨라폰테는 동료 기금조성담당인 켄 크라겐에게 계획을 피로했고, 켄 크라겐은 자신의 클라이언트인 라이오넬 리치와 케니 로저에게 이 계획을 전달했다. 크라겐과 두 뮤지션은 이 계획에 찬성, 벨라폰테의 계획을 적극적으로 돕기로 한다. 자선 캠페인을 위해 네임밸류를 높일 필요가 있었기 때문에 그들은 다른 참여 아티스트를 모집하기 시작했는데, 그 과정에 스티비 원더가 계획에 참여하였으며 퀸시 존스가 컬러 퍼플 작업 중에 틈을 내어 보조 프로듀싱을 하는 계획안이 잡혔다. 그리고 라이오넬 리치는 ‘스릴러’로 엄청난 상업적 성공을 이룬 ‘팝의 황제’ 마이클 잭슨에게 전화를 걸었다. 마이클 잭슨은 리치의 제안을 받아들여 노래하는 것 뿐만이 아니라 노래를 만드는데도 참여하고 싶다고 제안했다. 이렇게 마이클 잭슨과 라이오넬 리치, 스티비 원더가 모여 곡의 초안을 만들어냈다.(스티비 원더는 공식적으로 곡의 제작에 제한적인 부분만 참여했다) 그들은 마이클 잭슨의 집에 모여서 밤을 새가며 노래를 만들었는데, 인상적인 멜로디와 쉬운 가사를 만들기위해 매우 많은 노력을 했다고 한다. 참고로 이때 같은 집에 머물었던 마이클 잭슨의 누나인 라 토야(La Toya)의 발언에 따르면 We are the world는 마이클 잭슨이 99%를 만들었으며 라이오넬 리치는 몇 줄의 코드를 더한 정도였다고 한다. (딱히 라이오넬 리치를 비하하는 의미가 아니라, 그냥 그렇다는 이야기) 1985년 1월 21일 밤까지도 완성되지 않았던 두 버전의 가사와 멜로디를 잭슨이 완성시켜서 데모를 보내왔고, 이 빠른 속도 때문에 리치와 존스는 이에 크게 놀랐다고 한다. 22일 케니 로저스의 스튜디오에 퀸시 존스, 마이클 잭슨, 라이오넬 리치, 스티비 원더가 모여 초안 레코딩을 진행, 수차례에 걸쳐 수정과 첨삭이 반복되며 곡의 첫 녹음버전이 완성되었고, 레코딩에 참가 예정인 아티스트들에게 이 테이프가 보내졌다. 1985년 1월 28일, 아메리칸 뮤직 어워드 직후 캘리포니아의 A&M 레코딩 스튜디오에서 녹음을 위해 마이클 잭슨을 시작으로 45명의 팝스타들이 순차적으로 모여들었다. 밤 10시부터 45명의 합창 녹음을 시작으로, 모든 부분의 합창을 녹음한 후 새벽 4시부터 솔로 파트 녹음을 진행해 아침 8시에 모든 녹음을 완료했다고 한다. (참고로 레이 찰스는 녹음일에 참석하지 못해서 후시 녹음 후 편집을 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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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탄생과정 == 이 곡이 쓰여지기 전에, 민중가수였던 해리 벨라폰테가 1983년부터 시작된 아프리카의 대기근을 돕기위해 비영리 기구인 USA for Africa를 창설했다. 그 사이 1984년 영국에서 발표된 ‘밴드 에이드’ 기획에 영향을 받은 벨라폰테는 동료 기금조성담당인 켄 크라겐에게 계획을 피로했고, 켄 크라겐은 자신의 클라이언트인 라이오넬 리치와 케니 로저에게 이 계획을 전달했다. 크라겐과 두 뮤지션은 이 계획에 찬성, 벨라폰테의 계획을 적극적으로 돕기로 한다. 자선 캠페인을 위해 네임밸류를 높일 필요가 있었기 때문에 그들은 다른 참여 아티스트를 모집하기 시작했는데, 그 과정에 스티비 원더가 계획에 참여하였으며 퀸시 존스가 컬러 퍼플 작업 중에 틈을 내어 보조 프로듀싱을 하는 계획안이 잡혔다. 그리고 라이오넬 리치는 ‘스릴러’로 엄청난 상업적 성공을 이룬 ‘팝의 황제’ 마이클 잭슨에게 전화를 걸었다. 마이클 잭슨은 리치의 제안을 받아들여 노래하는 것 뿐만이 아니라 노래를 만드는데도 참여하고 싶다고 제안했다. 이렇게 마이클 잭슨과 라이오넬 리치, 스티비 원더가 모여 곡의 초안을 만들어냈다.(스티비 원더는 공식적으로 곡의 제작에 제한적인 부분만 참여했다) 그들은 마이클 잭슨의 집에 모여서 밤을 새가며 노래를 만들었는데, 인상적인 멜로디와 쉬운 가사를 만들기위해 매우 많은 노력을 했다고 한다. 참고로 이때 같은 집에 머물었던 마이클 잭슨의 누나인 라 토야(La Toya)의 발언에 따르면 We are the world는 마이클 잭슨이 99%를 만들었으며 라이오넬 리치는 몇 줄의 코드를 더한 정도였다고 한다. (딱히 라이오넬 리치를 비하하는 의미가 아니라, 그냥 그렇다는 이야기) 1985년 1월 21일 밤까지도 완성되지 않았던 두 버전의 가사와 멜로디를 잭슨이 완성시켜서 데모를 보내왔고, 이 빠른 속도 때문에 리치와 존스는 이에 크게 놀랐다고 한다. 22일 케니 로저스의 스튜디오에 퀸시 존스, 마이클 잭슨, 라이오넬 리치, 스티비 원더가 모여 초안 레코딩을 진행, 수차례에 걸쳐 수정과 첨삭이 반복되며 곡의 첫 녹음버전이 완성되었고, 레코딩에 참가 예정인 아티스트들에게 이 테이프가 보내졌다. 1985년 1월 28일, 아메리칸 뮤직 어워드 직후 캘리포니아의 A&M 레코딩 스튜디오에서 녹음을 위해 마이클 잭슨을 시작으로 45명의 팝스타들이 순차적으로 모여들었다. 밤 10시부터 45명의 합창 녹음을 시작으로, 모든 부분의 합창을 녹음한 후 새벽 4시부터 솔로 파트 녹음을 진행해 아침 8시에 모든 녹음을 완료했다고 한다. (참고로 레이 찰스는 녹음일에 참석하지 못해서 후시 녹음 후 편집을 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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