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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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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68,7426
==== 프랑스 유학 ==== 1974년 10월 2일, 몇 달 앞서 떠난 김치수에 이어 프랑스 북부 스트라스부르로 유학을 떠난다. 1971년에 미셸 망수이 교수에게 그의 밑에서 1년 정도 바슐라르 철학을 공부하고 싶다는 편지를 보낸 뒤 답장을 받은 결과였다. 김현은 미셸 망수이의 『바슐라르와 4원소』를 읽은 후 프랑스 유학 결정을 내렸었으며, 미셸 망수이 교수는 - 김현 자신이 들었다는 내용에 따르면 - 바슐라르의 4원소 철학을 동양인이 어떻게 이해하는지 알기 위해 김현을 받아들였다고 한다. 프랑스로 향하는 과정에서 김현은 홍콩, 방콕, 로마에서 하루씩 머문다. 홍콩에서는 별다른 인상을 받지 못했으나 방콕의 불교 문화와 로마의 기독교 문화에 대해서는 깊은 인상을 받는다. 김현은 스스로 "문화의 가장 예민한 성감대 중의 하나"[*A 김현, 『김현 예술 기행/반고비 나그네 길에』(서울: 문학과지성사, 1993).]^^24쪽^^라고 불렀던 종교를 통하여 한국의 전통에 대해 되새길 기회를 갖는다. 즉 세워진지 불과 수백년에 지나지 않는 불교 사원에서는 한국의 불국사 등보다 더욱 큰 전통의 힘이 느껴지며 로마의 대성당들이 콜로세움의 돌을 뜯어 만든 건물들이라는 것 등을 통해 "그렇다면 한국은 어떤 전통을 세워 가고 있는 것일까?"라고 자문하는 것이다. 김현이 불과 하루씩에 불과한 체류들을 통해 이러한 것들을 새로이 생각했다기보다는, 외국 여행을 통해 본인이 한국의 전통에 대해 본래 갖고 있던 생각을 다시 환기하였다는 것이 옳겠다. 프랑스에서 김현은 미셸 망수이 교수 아래 바슐라르 철학을 연구하는 한편으로 미셸 망수이 교수에게 한국의 시를 보여준다. 김현은 불교 색채가 강한 서정주의 「내가 돌이 되면」, 「동천」과 같은 시를 통해 미셸 망수이가 프랑스의 마약쟁이 시인 앙리 미쇼를 떠올린다는 것에 관심을 갖는다.[*A]^^102쪽^^ 또한 바슐라르를 문학사 연구에 적용할 수 있겠는지의 여부를 묻지만 일언지하에 불가능하다는 답변만을 듣는다.[*A]^^107쪽^^ 한편으로 김현은 폴 발레리, 알퐁스 도데 등 여러 프랑스 작가들과 관련된 장소를 여행한다. 1975년 1월 3일에는 세트에 있는 발레리의 묘지에 갔으며 1월 8일에는 클로드 시몽의 강연을 듣는다. 김현은 시몽의 강연에서 "예(例)의 세잔의 사과 얘기를 다시 들었다. 진력이 나도록 뻔한 소리를 두 시간 가까이 들었다."라며 짧게만 기술한다.[*A]^^41쪽^^ 날짜가 명확하지 않은 어느 날에는 롤랑 바르트가 유년 시절을 보낸 바이욘을 구경하고 오기도 했다. 그러나 김현이 가장 공을 들여 살핀 작가는 역시 프랑스 유학의 본래 목적이었던 가스통 바슐라르였다. 김현은 1974년 말부터 약 3개월간 바슐라르를 집중적으로 탐구한다. 1974년 12월 22일에는 바슐라르가 교수로 재직했던 디종 대학을 방문한다. 1975년 1월 28일에는 파리로 향해 바슐라르가 말년에 소르본 대학을 방문한 뒤 프랑스 라디오·텔레비전 공사의 문서 보관소에서 바슐라르의 1952년 강연 녹음을 들었다. 1975년 2월 5일에는 바슐라르의 고향 바르 쉬르 오브로 향해 바슐라르의 제자이자 바슐라르의 중학교 교사 시절 후배였던 베르나르 프리외르를 만나 바슐라르의 생가와 묘지를 방문한다. 김현의 바슐라르 관련지 답사는 「가스통 바슐라르를 찾아서」라는 글을 통해 정리되었다.[*A]^^81~97쪽^^ 당초 1년을 예정하였으나 8개월 만에 귀국한다. 김현은 이른 귀국을 아내의 병환 탓이라고 설명했으나 장석주는 박사 학위를 피하기 위한 고의적인 귀국이라고 주장했다. 김현이 박사 학위 없는 교수라는 전례를 만들고 싶어했다는 것. 그런데 김현이 애당초 1년 예정의 유학이었다고 설명했던 만큼, 김현의 유학은 처음부터 딱히 학위를 염두에 두지 않은 행위였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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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랑스 유학 ==== 1974년 10월 2일, 몇 달 앞서 떠난 김치수에 이어 프랑스 북부 스트라스부르로 유학을 떠난다. 1971년에 미셸 망수이 교수에게 그의 밑에서 1년 정도 바슐라르 철학을 공부하고 싶다는 편지를 보낸 뒤 답장을 받은 결과였다. 김현은 미셸 망수이의 『바슐라르와 4원소』를 읽은 후 프랑스 유학 결정을 내렸었으며, 미셸 망수이 교수는 - 김현 자신이 들었다는 내용에 따르면 - 바슐라르의 4원소 철학을 동양인이 어떻게 이해하는지 알기 위해 김현을 받아들였다고 한다. 프랑스로 향하는 과정에서 김현은 홍콩, 방콕, 로마에서 하루씩 머문다. 홍콩에서는 별다른 인상을 받지 못했으나 방콕의 불교 문화와 로마의 기독교 문화에 대해서는 깊은 인상을 받는다. 김현은 스스로 "문화의 가장 예민한 성감대 중의 하나"[*A 김현, 『김현 예술 기행/반고비 나그네 길에』(서울: 문학과지성사, 1993).]^^24쪽^^라고 불렀던 종교를 통하여 한국의 전통에 대해 되새길 기회를 갖는다. 즉 세워진지 불과 수백년에 지나지 않는 불교 사원에서는 한국의 불국사 등보다 더욱 큰 전통의 힘이 느껴지며 로마의 대성당들이 콜로세움의 돌을 뜯어 만든 건물들이라는 것 등을 통해 "그렇다면 한국은 어떤 전통을 세워 가고 있는 것일까?"라고 자문하는 것이다. 김현이 불과 하루씩에 불과한 체류들을 통해 이러한 것들을 새로이 생각했다기보다는, 외국 여행을 통해 본인이 한국의 전통에 대해 본래 갖고 있던 생각을 다시 환기하였다는 것이 옳겠다. 프랑스에서 김현은 미셸 망수이 교수 아래 바슐라르 철학을 연구하는 한편으로 미셸 망수이 교수에게 한국의 시를 보여준다. 김현은 불교 색채가 강한 서정주의 「내가 돌이 되면」, 「동천」과 같은 시를 통해 미셸 망수이가 프랑스의 마약쟁이 시인 앙리 미쇼를 떠올린다는 것에 관심을 갖는다.[*A]^^102쪽^^ 또한 바슐라르를 문학사 연구에 적용할 수 있겠는지의 여부를 묻지만 일언지하에 불가능하다는 답변만을 듣는다.[*A]^^107쪽^^ 한편으로 김현은 폴 발레리, 알퐁스 도데 등 여러 프랑스 작가들과 관련된 장소를 여행한다. 1975년 1월 3일에는 세트에 있는 발레리의 묘지에 갔으며 1월 8일에는 클로드 시몽의 강연을 듣는다. 김현은 시몽의 강연에서 "예(例)의 세잔의 사과 얘기를 다시 들었다. 진력이 나도록 뻔한 소리를 두 시간 가까이 들었다."라며 짧게만 기술한다.[*A]^^41쪽^^ 날짜가 명확하지 않은 어느 날에는 롤랑 바르트가 유년 시절을 보낸 바이욘을 구경하고 오기도 했다. 그러나 김현이 가장 공을 들여 살핀 작가는 역시 프랑스 유학의 본래 목적이었던 가스통 바슐라르였다. 김현은 1974년 말부터 약 3개월간 바슐라르를 집중적으로 탐구한다. 1974년 12월 22일에는 바슐라르가 교수로 재직했던 디종 대학을 방문한다. 1975년 1월 28일에는 파리로 향해 바슐라르가 말년에 소르본 대학을 방문한 뒤 프랑스 라디오·텔레비전 공사의 문서 보관소에서 바슐라르의 1952년 강연 녹음을 들었다. 1975년 2월 5일에는 바슐라르의 고향 바르 쉬르 오브로 향해 바슐라르의 제자이자 바슐라르의 중학교 교사 시절 후배였던 베르나르 프리외르를 만나 바슐라르의 생가와 묘지를 방문한다. 김현의 바슐라르 관련지 답사는 「가스통 바슐라르를 찾아서」라는 글을 통해 정리되었다.[*A]^^81~97쪽^^ 당초 1년을 예정하였으나 8개월 만에 귀국한다. 김현은 이른 귀국을 아내의 병환 탓이라고 설명했으나 장석주는 박사 학위를 피하기 위한 고의적인 귀국이라고 주장했다. 김현이 박사 학위 없는 교수라는 전례를 만들고 싶어했다는 것. 그런데 김현이 애당초 1년 예정의 유학이었다고 설명했던 만큼, 김현의 유학은 처음부터 딱히 학위를 염두에 두지 않은 행위였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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