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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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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56,11658
==== '추한' 전통을 강박적으로 되풀이한 문학사가 ==== 1973년, 김현은 김윤식과 함께 『한국문학사』를 선보인다. 한국 근대 문학의 시작을 영·정조 시대로 끌어올린 예외적인 저작이었다. 이 저작 이후로는 이러한 관점을 계승한 국문학자가 없었다는 점에서도 『한국문학사』의 독특함이 드러난다. 이후로도 김현은 1970년대 내내 여러 차례 반복하여 한국문학사를 다시 쓰고자 하는 시도를 반복한다. 심지어는 한글 세대라 한문을 읽을줄 모르면서도 김윤식에게 영·정조 시대 이전의 문학까지 포괄하는 문학사를 쓰자고 제안했다가 냉랭한 반응을 얻고는 포기한 적도 있었을 정도다. 본전공이 프랑스문학인데다가 술자리에서까지 중언부언을 싫어하고 그 자리에서 돌아온 새벽에조차 신간 서적을 읽을 정도로 '전위'에 대한 강한 집착을 보였던 비평가이기에, 10년에 걸친 반복 작업은 김현 이해에 상당히 의미심장한 대목이다. 최소한 김현 자신에게는 상당한 의의를 갖는 작업이었으리라 짐작된다. 또한 김현은 문학사를 쓸 때 '사료'보다는 '사관'이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보았는데, 이는 김현이 문학사 작업을 통해 특정한 '사관'을 전달하고 싶어했음을 보여준다. 김현이 딱히 전통 문학에 대한 애정을 가졌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김현은 우리네 문학사가 계승할 가치도 없는 비루한 문학만을 선보여왔으며, 그나마의 성과조차 제대로 되지 않은 단절의 역사였다고 평가했다. 사실상 「찬기파랑가」를 제외한다면 김현에게 있어 계승될만한 문학적 전통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임화·백철 류의 이식문학론은 거부하면서도 '우리 것'만이 우월하다고 보는 민족주의적 사고를 깊이 혐오했다. 그러면서도 김현이 한국문학사에 거의 자학적으로 매달려왔던 것은, 비루한 과거를 극복하기 위해서라도 그 과거를 끊임없이 상기해야 한다는 의식에서 비롯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한국 문학, 한국 문화는 세계의 여러 문명과 나란히 서서 어깨를 겨룰 만한 것을 산출하지 못하였으며 지금도 그러하다. (…) 그렇다면 마지막으로 하나의 문제가 남는다. 한국 문화의 주변성은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가라는 문제가 그것이다. 그 문제 해결에는 우선 감정적 정직성이 선행되어야 한다. 전해종의 탁월한 지적 그대로 한국사의 아름답지 못한 점을 감정적으로 비하시켜서 거기에서 도피하려 해서도 안되며, 평범한 것을 굉장한 것으로 확대해서도 안 된다. 우선은 사실을 사실대로 인정하고 그것들의 의미를 캐어내지 않으면 안된다. 다시 말하자면 한국 문화의 식민지성, 혹은 주변성을 솔직히 인정하고, 그것을 새로운 의미망 속에 끌어넣어 이해하여야 한다는 진술이다.[*B 김현·김윤식, 「방법론 비판」, 『한국문학사』(서울:민음사, 1996).]^^23~25쪽^^|| 실제로 김현이 1986년 4월 30일자의 일기에 "어떤 경우에건 자살이 정당화될 수는 없다. 그것은 싸움을 포기하는 것이니까. 살아서 별별 추한 꼴을 다 봐야 한다. 그것이 삶이니까."[*C 김현, 『행복한 책읽기/문학 단평 모음』(서울:문학과지성사, 1993).]^^256쪽^^ 등의 구절을 남긴 사실을 볼 때 김현은 아무리 추한 것과도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선) 직면해야 한다는 가치관을 갖고 있었던 듯 보인다. '혐오스런 전통'에 대한 강박은 아마도 함석헌을 통해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 김현은 YMCA에서 진행되었던 함석헌의 역사 강의를 들으며 함석헌이 주창했던 '고난의 역사'에 깊이 공감하였다고 한다. 함석헌에 대한 김현의 학문적 호의는 『한국문학사』에서도 그 단서를 찾을 수 있다. 이 책의 1장 「방법론 비판」에서 김현은 근대 문학의 성과를 간략하게 정리하면서 함석헌의 『뜻으로 본 한국역사』를 3·1운동~해방시기의 문학적 성과들을 총합한 결과물로 평가한다. ||한용운의 산문시, 염상섭·채만식 등의 작가들과 정지용, 윤동주 등의 시인, 임화·이헌구·김환태 등의 평론가, 그리고 조선학이라는 개념 형성에 사투한 민족주의자들(특히 신채호와 최현배)의 활약, 기독교의 속죄양 의식이 무교회주의자들을 통해 형성되어 함석헌의 『뜻으로 본 한국역사』를 가능케 했다.[*B]^^35쪽^^|| 김현은 『한국문학사』 전후로 썼던 여러 문학사들을 통하여 "전통의 단절"에 대한 문제를 꾸준히 제기했다. 가령 『한국 문학의 위상』에 실린 「한국문학은 어떻게 전개되어 왔는가」라는 글은 서정주의 「한국성략사」의 인용으로 시작된다.[*D 김현, 『한국 문학의 위상/문학사회학』(서울: 문학과지성사, 1991).]^^93쪽^^ 여기서 김현은 단장(斷腸)을 노래하는 구절의 인용을 통해 장의 끊어짐과 이음을 자신의 문학사 작업과 연결시킨다. 그 서정주의 싯구를 빌려 말하자면 김현에게 문학사란 "腸을 또 꿰매"는 작업이었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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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한' 전통을 강박적으로 되풀이한 문학사가 ==== 1973년, 김현은 김윤식과 함께 『한국문학사』를 선보인다. 한국 근대 문학의 시작을 영·정조 시대로 끌어올린 예외적인 저작이었다. 이 저작 이후로는 이러한 관점을 계승한 국문학자가 없었다는 점에서도 『한국문학사』의 독특함이 드러난다. 이후로도 김현은 1970년대 내내 여러 차례 반복하여 한국문학사를 다시 쓰고자 하는 시도를 반복한다. 심지어는 한글 세대라 한문을 읽을줄 모르면서도 김윤식에게 영·정조 시대 이전의 문학까지 포괄하는 문학사를 쓰자고 제안했다가 냉랭한 반응을 얻고는 포기한 적도 있었을 정도다. 본전공이 프랑스문학인데다가 술자리에서까지 중언부언을 싫어하고 그 자리에서 돌아온 새벽에조차 신간 서적을 읽을 정도로 '전위'에 대한 강한 집착을 보였던 비평가이기에, 10년에 걸친 반복 작업은 김현 이해에 상당히 의미심장한 대목이다. 최소한 김현 자신에게는 상당한 의의를 갖는 작업이었으리라 짐작된다. 또한 김현은 문학사를 쓸 때 '사료'보다는 '사관'이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보았는데, 이는 김현이 문학사 작업을 통해 특정한 '사관'을 전달하고 싶어했음을 보여준다. 김현이 딱히 전통 문학에 대한 애정을 가졌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김현은 우리네 문학사가 계승할 가치도 없는 비루한 문학만을 선보여왔으며, 그나마의 성과조차 제대로 되지 않은 단절의 역사였다고 평가했다. 사실상 「찬기파랑가」를 제외한다면 김현에게 있어 계승될만한 문학적 전통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임화·백철 류의 이식문학론은 거부하면서도 '우리 것'만이 우월하다고 보는 민족주의적 사고를 깊이 혐오했다. 그러면서도 김현이 한국문학사에 거의 자학적으로 매달려왔던 것은, 비루한 과거를 극복하기 위해서라도 그 과거를 끊임없이 상기해야 한다는 의식에서 비롯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한국 문학, 한국 문화는 세계의 여러 문명과 나란히 서서 어깨를 겨룰 만한 것을 산출하지 못하였으며 지금도 그러하다. (…) 그렇다면 마지막으로 하나의 문제가 남는다. 한국 문화의 주변성은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가라는 문제가 그것이다. 그 문제 해결에는 우선 감정적 정직성이 선행되어야 한다. 전해종의 탁월한 지적 그대로 한국사의 아름답지 못한 점을 감정적으로 비하시켜서 거기에서 도피하려 해서도 안되며, 평범한 것을 굉장한 것으로 확대해서도 안 된다. 우선은 사실을 사실대로 인정하고 그것들의 의미를 캐어내지 않으면 안된다. 다시 말하자면 한국 문화의 식민지성, 혹은 주변성을 솔직히 인정하고, 그것을 새로운 의미망 속에 끌어넣어 이해하여야 한다는 진술이다.[*B 김현·김윤식, 「방법론 비판」, 『한국문학사』(서울:민음사, 1996).]^^23~25쪽^^|| 실제로 김현이 1986년 4월 30일자의 일기에 "어떤 경우에건 자살이 정당화될 수는 없다. 그것은 싸움을 포기하는 것이니까. 살아서 별별 추한 꼴을 다 봐야 한다. 그것이 삶이니까."[*C 김현, 『행복한 책읽기/문학 단평 모음』(서울:문학과지성사, 1993).]^^256쪽^^ 등의 구절을 남긴 사실을 볼 때 김현은 아무리 추한 것과도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선) 직면해야 한다는 가치관을 갖고 있었던 듯 보인다. '혐오스런 전통'에 대한 강박은 아마도 함석헌을 통해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 김현은 YMCA에서 진행되었던 함석헌의 역사 강의를 들으며 함석헌이 주창했던 '고난의 역사'에 깊이 공감하였다고 한다. 함석헌에 대한 김현의 학문적 호의는 『한국문학사』에서도 그 단서를 찾을 수 있다. 이 책의 1장 「방법론 비판」에서 김현은 근대 문학의 성과를 간략하게 정리하면서 함석헌의 『뜻으로 본 한국역사』를 3·1운동~해방시기의 문학적 성과들을 총합한 결과물로 평가한다. ||한용운의 산문시, 염상섭·채만식 등의 작가들과 정지용, 윤동주 등의 시인, 임화·이헌구·김환태 등의 평론가, 그리고 조선학이라는 개념 형성에 사투한 민족주의자들(특히 신채호와 최현배)의 활약, 기독교의 속죄양 의식이 무교회주의자들을 통해 형성되어 함석헌의 『뜻으로 본 한국역사』를 가능케 했다.[*B]^^35쪽^^|| 김현은 『한국문학사』 전후로 썼던 여러 문학사들을 통하여 "전통의 단절"에 대한 문제를 꾸준히 제기했다. 가령 『한국 문학의 위상』에 실린 「한국문학은 어떻게 전개되어 왔는가」라는 글은 서정주의 「한국성략사」의 인용으로 시작된다.[*D 김현, 『한국 문학의 위상/문학사회학』(서울: 문학과지성사, 1991).]^^93쪽^^ 여기서 김현은 단장(斷腸)을 노래하는 구절의 인용을 통해 장의 끊어짐과 이음을 자신의 문학사 작업과 연결시킨다. 그 서정주의 싯구를 빌려 말하자면 김현에게 문학사란 "腸을 또 꿰매"는 작업이었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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