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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하일 불가코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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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족 === 키예프 태생. 양친 모두 성직자 집안 출신이었다. 그의 부계는 전통적으로 성직자 집안이었고 아버지 아파나시 이바노비치 불가코프(1859~1907) 또한 키예프신학교 종교사 전공교수였다. 신학자로서는 서유럽의 종교 전반(가톨릭에서부터 감리교에 이르기까지)에 대한 많은 저술을 남겼으며, 라틴어와 희랍어, 프랑스어, 독일어, 영어, 서(西)슬라브어(폴란드어, 체코어) 등에도 통달했다고 한다. 미하일 불가코프 또한 아버지를 학자로서 존경하였으며 훗날 '녹색 그림자가 드리워진 램프의 심상은 내게 아주 중요한 이미지이다. 그것은 유년 시절 책상에 앉아 글을 쓰던 아버지의 이미지에서 유래하였다.'라는 말을 남겼다. 어머니 바바라 미하일로브나 불가코프(1869~1922)는 사교(司敎)의 딸이었다. 아파나시가 학자로서 불가코프의 종교관에 영향을 주었다면, 바바라는 보다 직접적인 방식으로 영향을 남긴다. 바바라의 처녀 때 성은 투르빈이었는데, 미하일 불가코프는 훗날 첫 장편 소설인 『백위군』과 이를 개작한 희곡 『투르빈네의 날들』의 주인공 가문에 이 성을 붙였다. 불가코프 부부는 모두 일곱 명의 아이를 낳았으며 미하일 불가코프는 그 중 장남이었다. 그의 동생들은 다음과 같다. 베라(1892), 나데즈다(나댜, 1893), 바바라(바랴, 1895), 니콜라이(콜랴, 1898), 이반(바냐, 1900), 옐레나(룔랴, 1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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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족 === 키예프 태생. 양친 모두 성직자 집안 출신이었다. 그의 부계는 전통적으로 성직자 집안이었고 아버지 아파나시 이바노비치 불가코프(1859~1907) 또한 키예프신학교 종교사 전공교수였다. 신학자로서는 서유럽의 종교 전반(가톨릭에서부터 감리교에 이르기까지)에 대한 많은 저술을 남겼으며, 라틴어와 희랍어, 프랑스어, 독일어, 영어, 서(西)슬라브어(폴란드어, 체코어) 등에도 통달했다고 한다. 미하일 불가코프 또한 아버지를 학자로서 존경하였으며 훗날 '녹색 그림자가 드리워진 램프의 심상은 내게 아주 중요한 이미지이다. 그것은 유년 시절 책상에 앉아 글을 쓰던 아버지의 이미지에서 유래하였다.'라는 말을 남겼다. 어머니 바바라 미하일로브나 불가코프(1869~1922)는 사교(司敎)의 딸이었다. 아파나시가 학자로서 불가코프의 종교관에 영향을 주었다면, 바바라는 보다 직접적인 방식으로 영향을 남긴다. 바바라의 처녀 때 성은 투르빈이었는데, 미하일 불가코프는 훗날 첫 장편 소설인 『백위군』과 이를 개작한 희곡 『투르빈네의 날들』의 주인공 가문에 이 성을 붙였다. 불가코프 부부는 모두 일곱 명의 아이를 낳았으며 미하일 불가코프는 그 중 장남이었다. 그의 동생들은 다음과 같다. 베라(1892), 나데즈다(나댜, 1893), 바바라(바랴, 1895), 니콜라이(콜랴, 1898), 이반(바냐, 1900), 옐레나(룔랴, 1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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