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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리비아 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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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4,1479
=== 미국과 리비아의 관계회복 === 먼저 카다피 정권의 몰락을 이해하려면 리비아와 미국의 관계회복이라는 배경을 살펴보아야한다. 2004년 6월 28일 미국 국무부는 리비아에 연락사무소를 개설한다고 발표하였다. 그로부터 이태가 지난 2006년 5월 15일 콘돌리자 라이스 당시 국무장관은 미국이 리비아와 관계를 정상화하였다고 발표하였고, 조지 부시 당시 미국 대통령은 리비아를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삭제한다는 보고서를 연방의회에 제출하였다. 조심스럽게 추진되어온 미국과 리비아의 관계정상화가 가시적 성과를 전 세계에 보여준 때는 2008년이다. 그 해 1월 3일 압델 라흐만 샬감(Abdel Rahman Shalgam) 당시 리비아 외무장관이 워싱턴을 방문한 것을 계기로 미국-리비아 과학기술협력 협정이 체결되었고, 8개월 뒤인 9월 5일에는 콘돌리자 라이스 당시 국무장관이 트리폴리를 답방하였다. 그로부터 한 달이 지난 2008년 10월 5일 미국은 리비아에 무역사무소를 개설하였다. 리비아에 미국 무역사무소가 개설되자 자연히 교역량이 늘어났고, 그에 따라 두 나라는 2010년 5월 20일 트리폴리에서 미국-리비아 무역투자기본협정(TIFA)을 체결하였다. 이처럼 리비아와 미국은 2004년 이후 겉으로 보기에는 평온하게 관계정상화를 추진해왔다. 리비아는 미국과 관계를 정상화하여 자국의 주권과 안전을 보장받고 있는 줄로 생각하였다. 그러나 놀랍게도, 미국이 리비아와 관계를 정상화한 것은 리비아를 기만하고 농락한 특대형 사기극에 지나지 않았고, 미국의 사기극에 감쪽같이 속아넘어간 리비아는 자국의 주권과 안전이 보장받았다고 안심하며 깊은 최면상태에 빠져들었다. 미국이 리비아 공습을 개시하기 보름 전인 2011년 3월 4일 미국 군부가 지중해로 급파한 41,000t급 초대형 강습상륙함 키어사지호(USS Kearsarge)와 16,000t급 상륙수송함 폰스호(USS Ponce)가 수에즈 운하를 빠져나가고 있었다. 해병대 병력 1,890명, 지상공격기 5대, 틸트로터(tiltrotor) 헬기 22대, 대잠수함전 헬기 6대를 실은 키어사지호는 폰스호와 함께 그리스 크레테섬(Crete)의 수다만 해군기지(Souda Bay Naval Base)에 도착하였다. 그보다 앞서 2011년 2월 28일 <로이터 통신> 보도에 따르면, 미국 국방부 공보실장 데이빗 레이펀(David Lapan) 대령은 “결정이 내려질 경우 유연하게 다양한 선택방안들을 택할 수 있도록 미국 공군력과 해군력을 리비아 쪽으로 좀 더 가까이 이동시키고 있다. 리비아에 대한 여러 가지 비상계획이 있다”고 말했다. 리비아에서 반정부 투쟁이 시작되자마자 미국 군부는 기다렸다는 듯이 리비아 침공계획을 행동에 옮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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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과 리비아의 관계회복 === 먼저 카다피 정권의 몰락을 이해하려면 리비아와 미국의 관계회복이라는 배경을 살펴보아야한다. 2004년 6월 28일 미국 국무부는 리비아에 연락사무소를 개설한다고 발표하였다. 그로부터 이태가 지난 2006년 5월 15일 콘돌리자 라이스 당시 국무장관은 미국이 리비아와 관계를 정상화하였다고 발표하였고, 조지 부시 당시 미국 대통령은 리비아를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삭제한다는 보고서를 연방의회에 제출하였다. 조심스럽게 추진되어온 미국과 리비아의 관계정상화가 가시적 성과를 전 세계에 보여준 때는 2008년이다. 그 해 1월 3일 압델 라흐만 샬감(Abdel Rahman Shalgam) 당시 리비아 외무장관이 워싱턴을 방문한 것을 계기로 미국-리비아 과학기술협력 협정이 체결되었고, 8개월 뒤인 9월 5일에는 콘돌리자 라이스 당시 국무장관이 트리폴리를 답방하였다. 그로부터 한 달이 지난 2008년 10월 5일 미국은 리비아에 무역사무소를 개설하였다. 리비아에 미국 무역사무소가 개설되자 자연히 교역량이 늘어났고, 그에 따라 두 나라는 2010년 5월 20일 트리폴리에서 미국-리비아 무역투자기본협정(TIFA)을 체결하였다. 이처럼 리비아와 미국은 2004년 이후 겉으로 보기에는 평온하게 관계정상화를 추진해왔다. 리비아는 미국과 관계를 정상화하여 자국의 주권과 안전을 보장받고 있는 줄로 생각하였다. 그러나 놀랍게도, 미국이 리비아와 관계를 정상화한 것은 리비아를 기만하고 농락한 특대형 사기극에 지나지 않았고, 미국의 사기극에 감쪽같이 속아넘어간 리비아는 자국의 주권과 안전이 보장받았다고 안심하며 깊은 최면상태에 빠져들었다. 미국이 리비아 공습을 개시하기 보름 전인 2011년 3월 4일 미국 군부가 지중해로 급파한 41,000t급 초대형 강습상륙함 키어사지호(USS Kearsarge)와 16,000t급 상륙수송함 폰스호(USS Ponce)가 수에즈 운하를 빠져나가고 있었다. 해병대 병력 1,890명, 지상공격기 5대, 틸트로터(tiltrotor) 헬기 22대, 대잠수함전 헬기 6대를 실은 키어사지호는 폰스호와 함께 그리스 크레테섬(Crete)의 수다만 해군기지(Souda Bay Naval Base)에 도착하였다. 그보다 앞서 2011년 2월 28일 <로이터 통신> 보도에 따르면, 미국 국방부 공보실장 데이빗 레이펀(David Lapan) 대령은 “결정이 내려질 경우 유연하게 다양한 선택방안들을 택할 수 있도록 미국 공군력과 해군력을 리비아 쪽으로 좀 더 가까이 이동시키고 있다. 리비아에 대한 여러 가지 비상계획이 있다”고 말했다. 리비아에서 반정부 투쟁이 시작되자마자 미국 군부는 기다렸다는 듯이 리비아 침공계획을 행동에 옮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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