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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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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앞세대 문단과의 단절 ==== 동세대 밑 후학들에 대한 애정은 그 특유의 4·19세대론으로 발전한다. 극단적으로 전통을 혐오했던 김현만이 아니라 실상 그의 세대는 스스로를 그 윗대와는 전혀 다른 세대로 여겼다. 구세대가 감당했던 '고통스러운 역사'와 '우월한 서구'를 극복해야 한다는 과제를 떠안고 있었다. 실제로 김현을 포함한 '신세대' 비평가와 그 이전 세대의 차이는 꽤 컸다. 이 신예 비평가들은 김현이 '한글 세대'라고 지칭했듯 일본어의 영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었던 세대였고, 전후 대학에서 정규 교육을 받은 첫 (외국) 문학 전공자였다. 훗날 이어령이 "선배 기성 문인 중에 대학을 나온 사람이 거의 없었다."[* 강진호 외, 『증언으로서의 문학사』(서울:깊은샘, 2003), 58쪽.]라고 회고했던 것은 이전 세대 비평가들과 신세대 비평가들의 분위기 차이를 잘 설명해준다. 물론 김현 이전 세대에도 유종호처럼 외국문학을 전공한 비평가들은 있었다. 그러나 김현 이전 세대에 유종호와 같은 비평가들은 상대적으로 소수였던 반면 김현의 세대에 와서는 외국 문학 전공자 출신의 비평가들이 점차 보편화되기 시작했다. 특히 김현이 중심되어 활동했던 《문학과 지성》 소속 비평가들 중에서는 외국문학 전공자들이 유난히 많았다. 문지 에콜에 대해 비판적 태도를 취했던 하상일은 이를 표까지 만들어 정리한 바 있다.[* 하상일, 「전후비평의 타자화와 폐쇄적 권력지향성」, 『한국문학논총』Vol.36, 2004, 303쪽.] |문지 주요 필자 및 신인 발굴 현황(1973~1980)|<|2> 편집동인(고정필자) ||<-3> 신인 || || 출신대 || 전공 || 名 || ||<|8>서울대 * 불문: 김치수·김현·오생근 * 독문: 김주연 * 영문: 김우창 * 정치: 김병익 || 서울대 || 불문4, 독문1, 국문1, 언어1, 영문1 || 08 || || 외 대 || 영문1, 불문1, 인도1 || 03 || || 경희대 || 국문1 || 01 || || 건국대 || 국문1 || 01 || || 영남대 || 국문1 || 01 || || 고려대 || 독문1 || 01 || || 연세대 || 학과미상, 73년 시문학추천 기성시인 || 01 || || 미확인 || 3(1명은 중앙대 영문과 교수) || 01 || ||<-3> || 19 || '경성제국대학'의 원죄로부터도 비교적 자유로운 고등 교육을 받았으며 외국 서적을 통해 문학 선진국의 비평 이론 지식들로 무장한 신예 비평가들은 선배 비평가들에 대한 반감을 가졌다. 그 반감이 김현의 '4·19세대'의식으로 대표된 것이다. 김윤식의 회고에 따르면 김현은 "내 나이는 1960년 이후 한 살도 더 먹지 않았다"[*E 김윤식,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28/0002037481?sid=103|김현 그리고 4·19와 말라르메]]」한겨레, 2010년 4월 1일]고까지 표현할 정도로 4·19세대 의식에 집착했었다. 김현은 4·19세대의 제창을 통해 사실상 구세대와의 단절을 선언한다. 김현에게 4·19세대는 기존의 한문 세대나 일본어 세대와는 다른, 오롯이 '우리말'로 사유하고 행동했던 첫 세대라는 의미였다. 그에게 4·19는 한국인이 기존의 억압과 부정한 과거에서 벗어나 독창적인 사유를 갖게 된, 말하자면 집단적 전위를 경험하게 된 순간으로 이해되었던 셈이다. 즉 김현이 4·19세대로서 말한 단절은 전통 자체에 대한 거부가 아니라 식민사관적 문학관과 그것의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한 선배들과의 결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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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앞세대 문단과의 단절 ==== 동세대 밑 후학들에 대한 애정은 그 특유의 4·19세대론으로 발전한다. 극단적으로 전통을 혐오했던 김현만이 아니라 실상 그의 세대는 스스로를 그 윗대와는 전혀 다른 세대로 여겼다. 구세대가 감당했던 '고통스러운 역사'와 '우월한 서구'를 극복해야 한다는 과제를 떠안고 있었다. 실제로 김현을 포함한 '신세대' 비평가와 그 이전 세대의 차이는 꽤 컸다. 이 신예 비평가들은 김현이 '한글 세대'라고 지칭했듯 일본어의 영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었던 세대였고, 전후 대학에서 정규 교육을 받은 첫 (외국) 문학 전공자였다. 훗날 이어령이 "선배 기성 문인 중에 대학을 나온 사람이 거의 없었다."[* 강진호 외, 『증언으로서의 문학사』(서울:깊은샘, 2003), 58쪽.]라고 회고했던 것은 이전 세대 비평가들과 신세대 비평가들의 분위기 차이를 잘 설명해준다. 물론 김현 이전 세대에도 유종호처럼 외국문학을 전공한 비평가들은 있었다. 그러나 김현 이전 세대에 유종호와 같은 비평가들은 상대적으로 소수였던 반면 김현의 세대에 와서는 외국 문학 전공자 출신의 비평가들이 점차 보편화되기 시작했다. 특히 김현이 중심되어 활동했던 《문학과 지성》 소속 비평가들 중에서는 외국문학 전공자들이 유난히 많았다. 문지 에콜에 대해 비판적 태도를 취했던 하상일은 이를 표까지 만들어 정리한 바 있다.[* 하상일, 「전후비평의 타자화와 폐쇄적 권력지향성」, 『한국문학논총』Vol.36, 2004, 303쪽.] |문지 주요 필자 및 신인 발굴 현황(1973~1980)|<|2> 편집동인(고정필자) ||<-3> 신인 || || 출신대 || 전공 || 名 || ||<|8>서울대 * 불문: 김치수·김현·오생근 * 독문: 김주연 * 영문: 김우창 * 정치: 김병익 || 서울대 || 불문4, 독문1, 국문1, 언어1, 영문1 || 08 || || 외 대 || 영문1, 불문1, 인도1 || 03 || || 경희대 || 국문1 || 01 || || 건국대 || 국문1 || 01 || || 영남대 || 국문1 || 01 || || 고려대 || 독문1 || 01 || || 연세대 || 학과미상, 73년 시문학추천 기성시인 || 01 || || 미확인 || 3(1명은 중앙대 영문과 교수) || 01 || ||<-3> || 19 || '경성제국대학'의 원죄로부터도 비교적 자유로운 고등 교육을 받았으며 외국 서적을 통해 문학 선진국의 비평 이론 지식들로 무장한 신예 비평가들은 선배 비평가들에 대한 반감을 가졌다. 그 반감이 김현의 '4·19세대'의식으로 대표된 것이다. 김윤식의 회고에 따르면 김현은 "내 나이는 1960년 이후 한 살도 더 먹지 않았다"[*E 김윤식,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28/0002037481?sid=103|김현 그리고 4·19와 말라르메]]」한겨레, 2010년 4월 1일]고까지 표현할 정도로 4·19세대 의식에 집착했었다. 김현은 4·19세대의 제창을 통해 사실상 구세대와의 단절을 선언한다. 김현에게 4·19세대는 기존의 한문 세대나 일본어 세대와는 다른, 오롯이 '우리말'로 사유하고 행동했던 첫 세대라는 의미였다. 그에게 4·19는 한국인이 기존의 억압과 부정한 과거에서 벗어나 독창적인 사유를 갖게 된, 말하자면 집단적 전위를 경험하게 된 순간으로 이해되었던 셈이다. 즉 김현이 4·19세대로서 말한 단절은 전통 자체에 대한 거부가 아니라 식민사관적 문학관과 그것의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한 선배들과의 결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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