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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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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05,19859
== 가십 == * '등단'을 거치지 않았던 복거일의 장편 소설 『비명을 찾아서』를 바로 단행본으로 내 주는 방식으로 데뷔를 시켜 준 사람이 바로 김현이다. 이 사건은 복거일 자신의 표현을 빌린다면 "답안지의 형식을 제대로 갖추지도 못했는데 글이 뛰어 나다고 해서 장원으로 뽑아 준 당나라 시대" 일이라고 할 수 있었다. 다만 데뷔 이후로는 복거일의 보수주의적 색채 때문에 자주 충돌했다고 한다. 복거일이 자기 어머니의 임종 장면을 보지 못하고 김현의 장례식장을 지키고 있어야 했던 것은 당시부터 이미 문지가 누렸던 '문단권력'의 힘을 보여주는 사례로 이야기되기도 한다. * 매일 저녁 퇴근 후 강남고속터미널 근처 구반포상가의 반포치킨이라는 가게에 들러 문청들의 글을 봐주곤 했다고 한다. 황지우가 김현을 추모하며 쓴 시 「비로소 바다로 간 거북이」에 등장하는 맥주집이 바로 반포치킨이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비평가를 꿈꾸었던 고명철이 대학에 진학하자마자 이 가게를 찾아 김현과의 관계를 맺었다고도 한다. 김현은 생전에 이 가게에 외상 장부를 트고 월급날에 외상값을 갚았다고 한다. 주인이 아직도 그의 미결 외상장부를 갖고 있다는 소문도 들린다. * 김현은 간경화로 사망하였는데, 생전에 술을 몹시 좋아하였다고 한다. 아예 술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적은 「불꽃의 말」이라는 에세이까지 썼을 정도다. 이 글에 따르면 김현은 기독교를 믿었던 가정 환경의 영향으로 동년배에 비해 다소 늦은 대학교 3학년 때부터 술을 접하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막상 술을 접한 뒤에는 "술자리의 분위기를 지워 버린 나의 삶을 생각하면 끔찍하다."고 평할 정도로 술을 좋아했다. 철학자 김영민이 김현의 음주 취향을 통해 김현의 문학관을 설명하는 글을 쓴 적도 있을 정도.[* 김영민, 「[[https://www.dbpia.co.kr/journal/articleDetail?nodeId=NODE00824477|술, 혹은 김현에 대한 단상]]」, 『인물과사상』Vol.108, 인물과사상사, 2007, 169~196쪽.] * 김현은 술자리에서 안주를 거의 먹지 않았고, 담배나 바짝 졸인 라면만을 안주 삼아 거의 매일 문인들과 그리고 제자들과 술자리를 가졌다. 심지어 몸이 너무 아플 때조차 "나 대신 마시라."며 주변에 술값을 건넬 정도였다. 술과 관련된 가십거리로는 대취한 뒤 종로 5가에서 박상륭과 더불어 반발광(!)을 한 사건, 사상계 인근의 '북경반점'에서 빼갈 18병을 나누어 마시고 필름이 끊어진 것, 항상 낙지를 놓고 이문구와 함께 막걸리 한 되를 마셨다는 얘기 따위가 전한다. 이 외에 김현은 술자리에서 사람 만나기를 좋아하면서도 술자리에서 중언부언하는 사람만은 몹시 싫어했다. 반복된 언어는 지루한 감수성 밖에 담지 못하기에, 중언부언은 문학인의 자세가 아니라고 여겼기 때문이라고 한다. * 김현의 아들에 따르면 김현의 집에서는 김현과 김현의 아내 모두 담배를 피웠는데, 아내 쪽이 더 골초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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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십 == * '등단'을 거치지 않았던 복거일의 장편 소설 『비명을 찾아서』를 바로 단행본으로 내 주는 방식으로 데뷔를 시켜 준 사람이 바로 김현이다. 이 사건은 복거일 자신의 표현을 빌린다면 "답안지의 형식을 제대로 갖추지도 못했는데 글이 뛰어 나다고 해서 장원으로 뽑아 준 당나라 시대" 일이라고 할 수 있었다. 다만 데뷔 이후로는 복거일의 보수주의적 색채 때문에 자주 충돌했다고 한다. 복거일이 자기 어머니의 임종 장면을 보지 못하고 김현의 장례식장을 지키고 있어야 했던 것은 당시부터 이미 문지가 누렸던 '문단권력'의 힘을 보여주는 사례로 이야기되기도 한다. * 매일 저녁 퇴근 후 강남고속터미널 근처 구반포상가의 반포치킨이라는 가게에 들러 문청들의 글을 봐주곤 했다고 한다. 황지우가 김현을 추모하며 쓴 시 「비로소 바다로 간 거북이」에 등장하는 맥주집이 바로 반포치킨이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비평가를 꿈꾸었던 고명철이 대학에 진학하자마자 이 가게를 찾아 김현과의 관계를 맺었다고도 한다. 김현은 생전에 이 가게에 외상 장부를 트고 월급날에 외상값을 갚았다고 한다. 주인이 아직도 그의 미결 외상장부를 갖고 있다는 소문도 들린다. * 김현은 간경화로 사망하였는데, 생전에 술을 몹시 좋아하였다고 한다. 아예 술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적은 「불꽃의 말」이라는 에세이까지 썼을 정도다. 이 글에 따르면 김현은 기독교를 믿었던 가정 환경의 영향으로 동년배에 비해 다소 늦은 대학교 3학년 때부터 술을 접하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막상 술을 접한 뒤에는 "술자리의 분위기를 지워 버린 나의 삶을 생각하면 끔찍하다."고 평할 정도로 술을 좋아했다. 철학자 김영민이 김현의 음주 취향을 통해 김현의 문학관을 설명하는 글을 쓴 적도 있을 정도.[* 김영민, 「[[https://www.dbpia.co.kr/journal/articleDetail?nodeId=NODE00824477|술, 혹은 김현에 대한 단상]]」, 『인물과사상』Vol.108, 인물과사상사, 2007, 169~196쪽.] * 김현은 술자리에서 안주를 거의 먹지 않았고, 담배나 바짝 졸인 라면만을 안주 삼아 거의 매일 문인들과 그리고 제자들과 술자리를 가졌다. 심지어 몸이 너무 아플 때조차 "나 대신 마시라."며 주변에 술값을 건넬 정도였다. 술과 관련된 가십거리로는 대취한 뒤 종로 5가에서 박상륭과 더불어 반발광(!)을 한 사건, 사상계 인근의 '북경반점'에서 빼갈 18병을 나누어 마시고 필름이 끊어진 것, 항상 낙지를 놓고 이문구와 함께 막걸리 한 되를 마셨다는 얘기 따위가 전한다. 이 외에 김현은 술자리에서 사람 만나기를 좋아하면서도 술자리에서 중언부언하는 사람만은 몹시 싫어했다. 반복된 언어는 지루한 감수성 밖에 담지 못하기에, 중언부언은 문학인의 자세가 아니라고 여겼기 때문이라고 한다. * 김현의 아들에 따르면 김현의 집에서는 김현과 김현의 아내 모두 담배를 피웠는데, 아내 쪽이 더 골초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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