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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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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통령 === 2001년말 대선 출마를 선언하고 2002년 노풍과 [[inter:나무위키:병풍 사건]], 정몽준과의 단일화를 통해 제16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2003년 2월 25일 취임하여 한미 FTA, 태안 기름 유출 사고 대처 등을 이뤄냈으나 새천년민주당 탈당 후 열린우리당을 결성함으로 인해 1년만에 [[inter:나무위키:노무현 대통령 탄핵소추 및 심판]]을 당하는 등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탄핵이 기각되며 대통령직에 복귀하였고, 남북 정상회담 개최, 국방개혁 추진 등의 정책을 실행했다. 그 중에는 이라크 전쟁 파병처럼 평가가 엇갈리거나, 위헌으로 이뤄지지 못한 행정수도 정책도 있다. 또한 대통령 개인의 직설적인 화법도 언론 등에서 논란이 되었다. 2008년 퇴임 후 고향인 경상남도 김해시의 봉하마을에서 농사 등을 지으며 활동하였다. 친환경 농사법, 생태 숲 조성 등 친농촌/환경적인 활동도 하였다. 봉하마을은 관광명소가 되어 여러 관광객이 방문했고 이들과 소통하였다. 그러나 [[inter:나무위키:박연차 게이트]]로 검찰 조사[* 이때 유명해진 '논두렁 시계'란 단어는 수년 후 [[국정원]]에서 만들어낸 단어라는 사실이 밝혀지기도 했다. [[http://www.gobal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22928|#]]]를 받으며 고생[* 홈페이지인 사람사는 세상을 폐쇄하며 자신을 버리라고 말하기도 했다. [[https://dailian.co.kr/news/view/154566|#]]]하다가, 2009년 [[inter:나무위키: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 사건|투신자살]]하여 향년 62세로 사망하였다. 남긴 유서는 다음과 같다. >너무 많은 사람들에게 신세를 졌다. >나로 말미암아 여러 사람이 받은 고통이 너무 크다. >앞으로 받을 고통도 헤아릴 수가 없다. >여생도 남에게 짐이 될 일 밖에 없다. >건강이 좋지 않아서 아무 것도 할 수가 없다. >책을 읽을 수도 글을 쓸 수도 없다. > >너무 슬퍼하지 마라.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 조각 아니겠는가? >미안해하지 마라.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 >운명이다. > >화장해라. >그리고 집 가까운 곳에 아주 작은 비석 하나만 남겨라. >오래된 생각이다. 사망 후 후진타오, 엘리자베스, 반기문 등 각계에서 애도를 표했다. 국민장으로 엄수되었고, 전국적으로 500만명이 각지에 설치된 분향소에 조문하였다. [[https://www.newsen.com/news_view.php?uid=200905292203534100|#]] 특히 덕수궁 대한문앞 분향소에는 장례 기간 동안 수 킬로미터에 이르는 장례 행렬이 이어지기도 했다. 봉하마을도 애도 명목으로 방문자가 많았으며, 각 포털사이트와 언론사에는 추모 배너가 달렸다. 자살에 대해 정치적 타살이라며 [[이명박]], 검찰 등을 비판하는 여론이 있었으며, 반대로 전직 대통령으로서 무책임하다며 비판하는 여론도 존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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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통령 === 2001년말 대선 출마를 선언하고 2002년 노풍과 [[inter:나무위키:병풍 사건]], 정몽준과의 단일화를 통해 제16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2003년 2월 25일 취임하여 한미 FTA, 태안 기름 유출 사고 대처 등을 이뤄냈으나 새천년민주당 탈당 후 열린우리당을 결성함으로 인해 1년만에 [[inter:나무위키:노무현 대통령 탄핵소추 및 심판]]을 당하는 등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탄핵이 기각되며 대통령직에 복귀하였고, 남북 정상회담 개최, 국방개혁 추진 등의 정책을 실행했다. 그 중에는 이라크 전쟁 파병처럼 평가가 엇갈리거나, 위헌으로 이뤄지지 못한 행정수도 정책도 있다. 또한 대통령 개인의 직설적인 화법도 언론 등에서 논란이 되었다. 2008년 퇴임 후 고향인 경상남도 김해시의 봉하마을에서 농사 등을 지으며 활동하였다. 친환경 농사법, 생태 숲 조성 등 친농촌/환경적인 활동도 하였다. 봉하마을은 관광명소가 되어 여러 관광객이 방문했고 이들과 소통하였다. 그러나 [[inter:나무위키:박연차 게이트]]로 검찰 조사[* 이때 유명해진 '논두렁 시계'란 단어는 수년 후 [[국정원]]에서 만들어낸 단어라는 사실이 밝혀지기도 했다. [[http://www.gobal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22928|#]]]를 받으며 고생[* 홈페이지인 사람사는 세상을 폐쇄하며 자신을 버리라고 말하기도 했다. [[https://dailian.co.kr/news/view/154566|#]]]하다가, 2009년 [[inter:나무위키: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 사건|투신자살]]하여 향년 62세로 사망하였다. 남긴 유서는 다음과 같다. >너무 많은 사람들에게 신세를 졌다. >나로 말미암아 여러 사람이 받은 고통이 너무 크다. >앞으로 받을 고통도 헤아릴 수가 없다. >여생도 남에게 짐이 될 일 밖에 없다. >건강이 좋지 않아서 아무 것도 할 수가 없다. >책을 읽을 수도 글을 쓸 수도 없다. > >너무 슬퍼하지 마라.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 조각 아니겠는가? >미안해하지 마라.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 >운명이다. > >화장해라. >그리고 집 가까운 곳에 아주 작은 비석 하나만 남겨라. >오래된 생각이다. 사망 후 후진타오, 엘리자베스, 반기문 등 각계에서 애도를 표했다. 국민장으로 엄수되었고, 전국적으로 500만명이 각지에 설치된 분향소에 조문하였다. [[https://www.newsen.com/news_view.php?uid=200905292203534100|#]] 특히 덕수궁 대한문앞 분향소에는 장례 기간 동안 수 킬로미터에 이르는 장례 행렬이 이어지기도 했다. 봉하마을도 애도 명목으로 방문자가 많았으며, 각 포털사이트와 언론사에는 추모 배너가 달렸다. 자살에 대해 정치적 타살이라며 [[이명박]], 검찰 등을 비판하는 여론이 있었으며, 반대로 전직 대통령으로서 무책임하다며 비판하는 여론도 존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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