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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 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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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쟁 중반기(1941~1943) == 1941년 12월 7일 일본의 진주만 기습 공격이 있고난 이후 미국은 일본에게 선전포고를 했고, 일본의 동맹국이던 이탈리아와 나치독일도 미국에게 선전포고를 감행했다. 이 시기 제2차 세계대전의 전황은 연합국에게 불리하게 전개되고 있었다. 진주만 기습 공격을 선보인 일본은 얼마 지나지 않아 미국령 필리핀을 침공했다. 더 나아가 일본은 영국령 홍콩과 말레이시아, 버마(현재 미얀마), 그리고 싱가폴을 점령했고, 인도네시아와 파푸아 뉴기니까지 점령했으며, 알래스카의 알류산 열도와 괌과 사이판 그리고 웨이크 섬까지 차례대로 점령했다. 1942년 5월까지 태평양에서의 일본군은 승승장구했다. 1942년 1월 모스크바 전투는 소련의 승리로 끝났지만 독일군의 진격은 거침없었다. 겨울이 지나고 봄이 되자 독일군은 다시 진격을 개시했다. 그해 봄부터 진격을 개시한 독일군은 스탈린의 도시 스탈린그라드로 진격해 나갔고, 1942년 8월과 9월 사이 스탈린그라드의 볼가강 지역에서 소련군과 교전을 했다. 그 뿐만 아니라 1941년에 아프리카 전선에 배치된 독일의 에르빈 롬멜 장군은 수적인 열세에도 불구하고 영국군을 차례대로 격파하며 이집트의 카이로로 진격해 나갔다. 적어도 1942년 중후반까지의 전세는 독,이,일을 중심으로 하는 추축국에게 유리해 보였다. 그러나 여러 전환점을 맞게 되면서 전황은 점점 추축국에게 불리해져 갔다. 스탈린그라드로 진격한 독일군은 그 도시 지역에서 소련군과의 시가전을 반복해가며 지쳐갔고, 얼마 지나지 않아 겨울이 찾아왔다. 1942년 말에 찾아온 겨울은 스탈린그라드에 발이 묶인 독일군의 사기를 저하시켰고, 소련군으로 하여금 독일군을 포위하도록 만들었다. 그 결과 1943년 2월 프리드리히 파울루스 휘하의 독일군 20만 명은 소련군에게 항복했다. 스탈린그라드 전투를 기점으로 독일군은 더 이상 진격이 아닌 후퇴를 반복해야 했고, 오히려 소련군은 1941년 바르바로사 작전에서 보여주었던 독일군의 모습을 체계적으로 닮아 갔다. 비록 스탈린그라드 전투에서 적잖은 소련군이 전사했지만, 스탈린그라드 전투를 통해 독일군에게 대패를 안겨준 소련군은 보다 더 체계적인 군대로 변모했다. 1943년 2월 스탈린그라드 전투에서 승리한 소련군은 독일군을 섬멸하기 위해 동부전선에서 진격해나갔다. 북아프리카에서 활약하던 롬멜 장군 휘하의 독일군들은 1942년 8~9월 이집트의 엘 알라메인 지역에서 전투를 겪고난 이후 부터 진격을 멈추게 되었다. 당시 영국군을 이끌었던 몽고메리 장군은 독일군에 맞서 점진적으로 반격에 나섰다. 거기다 북아프리카 전선에 미군까지 투입되면서 독일군과 이탈리아군의 부담은 더 커졌다. 특히나 알제리와 모로코에 미군이 상륙하면서 이는 독일군에게 부담으로 다가왔다. 엘 알라메인 전투에서 크게 패배한 독일군은 본국으로 부터 지원 병력을 받지 못했고, 미군까지 합세한 영국군의 공세를 받았다. 그 결과 독일군은 이집트에서 리비아 그리고 튀니지까지 철수했고, 1943년 5월 북아프리카에서의 전투는 영미 연합군의 승리로 끝이 났다. 북아프리카 전역에서 승리한 영미연합국은 무솔리니가 있는 이탈리아에 상륙할 준비를 하게 된다. 또한 태평양 전선에서도 적잖은 변화가 있었다. 중국에서는 국공합작으로 단결된 중국군이 일본군에 맞서 여러 전투를 전개하고 있었다. 1942년 5월 7일과 8일 오스트레일리아 북서쪽에 있는 산호해 전투에서 연합국은 승리를 거두었다. 1942년 6월 미군은 미드웨이 해전에서 일본군의 주력 항공모함 4척을 파괴했고, 순향함 1척과 전투기 248대를 파괴했다. 그리고 몇 달 후인 1942년 8월 솔로몬 제도에서 반격에 나섰고, 특히나 과다카날 섬 전투에서 6개월 간의 전투 끝에 적잖은 일본군을 섬멸했다. 1942년과 1943년을 거치면서 미군을 중심으로한 연합국은 태평양에서 재해권을 장악했다. 이것을 바탕으로 미군은 태평양 전쟁에서 일본군에 맞서 반격해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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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쟁 중반기(1941~1943) == 1941년 12월 7일 일본의 진주만 기습 공격이 있고난 이후 미국은 일본에게 선전포고를 했고, 일본의 동맹국이던 이탈리아와 나치독일도 미국에게 선전포고를 감행했다. 이 시기 제2차 세계대전의 전황은 연합국에게 불리하게 전개되고 있었다. 진주만 기습 공격을 선보인 일본은 얼마 지나지 않아 미국령 필리핀을 침공했다. 더 나아가 일본은 영국령 홍콩과 말레이시아, 버마(현재 미얀마), 그리고 싱가폴을 점령했고, 인도네시아와 파푸아 뉴기니까지 점령했으며, 알래스카의 알류산 열도와 괌과 사이판 그리고 웨이크 섬까지 차례대로 점령했다. 1942년 5월까지 태평양에서의 일본군은 승승장구했다. 1942년 1월 모스크바 전투는 소련의 승리로 끝났지만 독일군의 진격은 거침없었다. 겨울이 지나고 봄이 되자 독일군은 다시 진격을 개시했다. 그해 봄부터 진격을 개시한 독일군은 스탈린의 도시 스탈린그라드로 진격해 나갔고, 1942년 8월과 9월 사이 스탈린그라드의 볼가강 지역에서 소련군과 교전을 했다. 그 뿐만 아니라 1941년에 아프리카 전선에 배치된 독일의 에르빈 롬멜 장군은 수적인 열세에도 불구하고 영국군을 차례대로 격파하며 이집트의 카이로로 진격해 나갔다. 적어도 1942년 중후반까지의 전세는 독,이,일을 중심으로 하는 추축국에게 유리해 보였다. 그러나 여러 전환점을 맞게 되면서 전황은 점점 추축국에게 불리해져 갔다. 스탈린그라드로 진격한 독일군은 그 도시 지역에서 소련군과의 시가전을 반복해가며 지쳐갔고, 얼마 지나지 않아 겨울이 찾아왔다. 1942년 말에 찾아온 겨울은 스탈린그라드에 발이 묶인 독일군의 사기를 저하시켰고, 소련군으로 하여금 독일군을 포위하도록 만들었다. 그 결과 1943년 2월 프리드리히 파울루스 휘하의 독일군 20만 명은 소련군에게 항복했다. 스탈린그라드 전투를 기점으로 독일군은 더 이상 진격이 아닌 후퇴를 반복해야 했고, 오히려 소련군은 1941년 바르바로사 작전에서 보여주었던 독일군의 모습을 체계적으로 닮아 갔다. 비록 스탈린그라드 전투에서 적잖은 소련군이 전사했지만, 스탈린그라드 전투를 통해 독일군에게 대패를 안겨준 소련군은 보다 더 체계적인 군대로 변모했다. 1943년 2월 스탈린그라드 전투에서 승리한 소련군은 독일군을 섬멸하기 위해 동부전선에서 진격해나갔다. 북아프리카에서 활약하던 롬멜 장군 휘하의 독일군들은 1942년 8~9월 이집트의 엘 알라메인 지역에서 전투를 겪고난 이후 부터 진격을 멈추게 되었다. 당시 영국군을 이끌었던 몽고메리 장군은 독일군에 맞서 점진적으로 반격에 나섰다. 거기다 북아프리카 전선에 미군까지 투입되면서 독일군과 이탈리아군의 부담은 더 커졌다. 특히나 알제리와 모로코에 미군이 상륙하면서 이는 독일군에게 부담으로 다가왔다. 엘 알라메인 전투에서 크게 패배한 독일군은 본국으로 부터 지원 병력을 받지 못했고, 미군까지 합세한 영국군의 공세를 받았다. 그 결과 독일군은 이집트에서 리비아 그리고 튀니지까지 철수했고, 1943년 5월 북아프리카에서의 전투는 영미 연합군의 승리로 끝이 났다. 북아프리카 전역에서 승리한 영미연합국은 무솔리니가 있는 이탈리아에 상륙할 준비를 하게 된다. 또한 태평양 전선에서도 적잖은 변화가 있었다. 중국에서는 국공합작으로 단결된 중국군이 일본군에 맞서 여러 전투를 전개하고 있었다. 1942년 5월 7일과 8일 오스트레일리아 북서쪽에 있는 산호해 전투에서 연합국은 승리를 거두었다. 1942년 6월 미군은 미드웨이 해전에서 일본군의 주력 항공모함 4척을 파괴했고, 순향함 1척과 전투기 248대를 파괴했다. 그리고 몇 달 후인 1942년 8월 솔로몬 제도에서 반격에 나섰고, 특히나 과다카날 섬 전투에서 6개월 간의 전투 끝에 적잖은 일본군을 섬멸했다. 1942년과 1943년을 거치면서 미군을 중심으로한 연합국은 태평양에서 재해권을 장악했다. 이것을 바탕으로 미군은 태평양 전쟁에서 일본군에 맞서 반격해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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