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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이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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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아성찰 === 김이환 소설에서 환상성이란 주인공들 스스로도 의식하지 못한체 감추거나 외면했던 자기 내면으로 파고들어가기 위한 도구이기도 하다. 실제 그가 쓰는 소설에서도 그보다는 인물들의 심리 상태를 파고드는 경우가 많다. 한편으로 이는 김이환 자기 자신을 위한 작업이기도 하다. 김이환의 소설에늘 늘 자전적 요소가 깊게 배여 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쓰던 와중에는 소설의 내용 95%가 자기 경험이라고 공개적으로 밝힐 정도로 자기 경험에 천착하는 모습을 보였다. 말하자면 김이환에게 소설이란 소설화된 자기 경험을 통해 스스로가 감추려 하는 내면을 끊임없이 드러내어 폭로하고 극복하는 모습을 보이는 장이기도 하다. 김이환이 발표해왔던 장편 소설들이 걸어온 여정을 보면 김이환의 자기 극복과 성장 - 그것이 작가로서건 인간으로서건 - 이 어떤 과정을 거쳐왔는지가 잘 드러난다. 가령 거울에서 진행했던 인터뷰에 따르면 출간 데뷔작인 『에비터젠의 유령』을 쓰던 시절만 해도 작가로서의 확신을 얻지 못했었기 때문에 그 소설의 주인공 마냥 폐쇄적인 성격이었다고 한다. 『에비터젠의 유령』을 쓰는 와중에 독립 영화를 보면서 친구를 많이 사귀었고, 이들로부터 '작가임'에 대한 인정을 받으면서 성격 및 작품 성향이 변했다고 한다. 출간 데뷔작인 『에비터젠의 유령』과 차기작인 『양말 줍는 소년』의 온도 차에는 작가의 성격 변화가 반영되었다. 『양말 줍는 소년』과 『오후 다섯시의 외계인』은 매우 "신이 났던" 시절에 썼던 작품이라는 듯. 『양말 줍는 소년』이 자신의 대표작으로 불리거나 심지어 자신이 '동화적인 작가'로 규정되는 현상에 대해서는 거부감을 표한다. 자신이 그런 사람은 아니라는게 이유. 즉 작가 스스로는 소위 '동화적인' 작품이 자신의 문학 세계를 대표한다고 보지 않는 셈이다. 실제로 김이환의 소설 중 '동화적'이라는 평가를 듣는 세 편(양말 줍는 소년, 오후 다섯시의 외계인,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보면 메르헨 풍의 문장 안에 인간의 소외(이혼 가정, 왕따, 이지메 등)에 대한 날카로운 묘사가 숨겨진 경우가 많다. 작가의 자평과는 다른 - 혹은 오도된 - 세간의 평가의 영향인지는 모르겠으나 이후 김이환 자신은 작품을 더 독하게 써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고. 가령 Daum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연재할 당시에는 소설의 95%가 자기 경험이라고 밝혔지만, 스스로 지금보다 세 배는 더 독하게 써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이외에도 『양말 줍는 소년』, 『오후 다섯시의 외계인』, 『집으로 돌아가는 길』의 세 장편을 '성장 소설 3부작'이라 부르며, 이후의 소설들은 다른 경향을 보일 것이라 이야기한 바 있다. 이는 『집으로 돌아가는 길』 이후 일종의 포스트아포칼립스물인 『절망의 구』를 통해 황폐화된 세계를 보여주는 모습으로 반영된다. 『절망의 구』의 발표 이후 김이환 팬 일각에서 "동화적이지 않은" 김이환 소설에 대한 당혹감을 표시하는 기류들이 나타났는데, 이러한 반응을 본다면 동화적인 작가 이미지를 벗고 싶어했던 의도는 어느 정도 성공한 듯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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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아성찰 === 김이환 소설에서 환상성이란 주인공들 스스로도 의식하지 못한체 감추거나 외면했던 자기 내면으로 파고들어가기 위한 도구이기도 하다. 실제 그가 쓰는 소설에서도 그보다는 인물들의 심리 상태를 파고드는 경우가 많다. 한편으로 이는 김이환 자기 자신을 위한 작업이기도 하다. 김이환의 소설에늘 늘 자전적 요소가 깊게 배여 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쓰던 와중에는 소설의 내용 95%가 자기 경험이라고 공개적으로 밝힐 정도로 자기 경험에 천착하는 모습을 보였다. 말하자면 김이환에게 소설이란 소설화된 자기 경험을 통해 스스로가 감추려 하는 내면을 끊임없이 드러내어 폭로하고 극복하는 모습을 보이는 장이기도 하다. 김이환이 발표해왔던 장편 소설들이 걸어온 여정을 보면 김이환의 자기 극복과 성장 - 그것이 작가로서건 인간으로서건 - 이 어떤 과정을 거쳐왔는지가 잘 드러난다. 가령 거울에서 진행했던 인터뷰에 따르면 출간 데뷔작인 『에비터젠의 유령』을 쓰던 시절만 해도 작가로서의 확신을 얻지 못했었기 때문에 그 소설의 주인공 마냥 폐쇄적인 성격이었다고 한다. 『에비터젠의 유령』을 쓰는 와중에 독립 영화를 보면서 친구를 많이 사귀었고, 이들로부터 '작가임'에 대한 인정을 받으면서 성격 및 작품 성향이 변했다고 한다. 출간 데뷔작인 『에비터젠의 유령』과 차기작인 『양말 줍는 소년』의 온도 차에는 작가의 성격 변화가 반영되었다. 『양말 줍는 소년』과 『오후 다섯시의 외계인』은 매우 "신이 났던" 시절에 썼던 작품이라는 듯. 『양말 줍는 소년』이 자신의 대표작으로 불리거나 심지어 자신이 '동화적인 작가'로 규정되는 현상에 대해서는 거부감을 표한다. 자신이 그런 사람은 아니라는게 이유. 즉 작가 스스로는 소위 '동화적인' 작품이 자신의 문학 세계를 대표한다고 보지 않는 셈이다. 실제로 김이환의 소설 중 '동화적'이라는 평가를 듣는 세 편(양말 줍는 소년, 오후 다섯시의 외계인,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보면 메르헨 풍의 문장 안에 인간의 소외(이혼 가정, 왕따, 이지메 등)에 대한 날카로운 묘사가 숨겨진 경우가 많다. 작가의 자평과는 다른 - 혹은 오도된 - 세간의 평가의 영향인지는 모르겠으나 이후 김이환 자신은 작품을 더 독하게 써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고. 가령 Daum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연재할 당시에는 소설의 95%가 자기 경험이라고 밝혔지만, 스스로 지금보다 세 배는 더 독하게 써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이외에도 『양말 줍는 소년』, 『오후 다섯시의 외계인』, 『집으로 돌아가는 길』의 세 장편을 '성장 소설 3부작'이라 부르며, 이후의 소설들은 다른 경향을 보일 것이라 이야기한 바 있다. 이는 『집으로 돌아가는 길』 이후 일종의 포스트아포칼립스물인 『절망의 구』를 통해 황폐화된 세계를 보여주는 모습으로 반영된다. 『절망의 구』의 발표 이후 김이환 팬 일각에서 "동화적이지 않은" 김이환 소설에 대한 당혹감을 표시하는 기류들이 나타났는데, 이러한 반응을 본다면 동화적인 작가 이미지를 벗고 싶어했던 의도는 어느 정도 성공한 듯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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