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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거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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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방 이후 세대, 탈민족주의자로서의 복거일 ==== 복거일의 영어공용어론과 관련하여 그의 개인사에서 주목할만한 부분은 그가 해방 이후 세대였다는 점이다. 복거일은 해방 이후 태어나 - 이전 세대의 작가들과는 달리 – 일본어 상용이라는 ‘원죄(原罪)’로부터 자유로웠다. 즉 광복 이전 세대의 문인들에 비해 민족 담론에 대해 상대적으로 유연한 입장을 취할 수 있었던 것인데, 이러한 특징은 복거일이 민족주의적 친일 청산론에 대한 우려를 드러냈던 데서도 나타난다. 친일 행위가 청산되어야 한다면 그것은 “친일 행위로서가 아니라 인류에 대한 범죄로서 벌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복거일, 「친일 문제에 대한 합리적 접근」, 『철학과 현실』Vol.53, 철학문화연구소, 2002, 150~151쪽.] 비단 친일 문제에서만이 아니라, 복거일은 민족주의 자체를 일종의 폐쇄주의로 규정하며 한국 사회가 민족주의로부터 극복해야 한다는 주장을 해왔다. 복거일에게 민족주의는 “특수주의particularism”의 속성을 띄며, “전체주의totalitarianism”과 쉽게 결합되는 제도로 이해된다.[* 복거일, 「전체주의 사회에 예술이 존재할 수 있는가?」, 『수성의 옹호』, 문학과지성사, 2010, 78~81면.] 한편으로 복거일은 한국전쟁 이후에는 파주 인근의 기지촌에서 자라며 영어를 익혔고, 미군기지에서 흘러나온 원서들을 읽으며 문학 수련을 했었다. 다시 말해 복거일은 일본어로부터 자유로웠던 대신에 영어의 압도적인 영향 아래 성장했다. 소설가로서의 복거일을 발굴했던 김현이 “복거일의 자신의 원천 중의 하나: 영어를 잘 한다는 것. 비명을 찾아서나 높은 땅 낮은 이야기에서 주인공이 제일 환희를 느끼는 것은 어려운 영어책이나 영어 편지를 잘 읽고 쓸 때이다.”라는 의견을 내놓았던 것은 상당히 의미심장한 대목이다.[* 김현, 「1988년 4월 8일」, 『행복한 책읽기/문학 단평 모음』, 문학과지성사, 1993.] 어쨌거나 복거일은 자신의 영어공용어론이 탈민족주의적 시각에서 진행되었음을 전제한다. 영어를 한국의 공용어로 삼음으로써 앞서 소개한, 전체주의로서의 민족주의를 한국 사회에서 해체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민족주의의 해체가 복거일류 영어공용어론의 궁극적 목적은 아니다. 민족주의를 해체한 후 세계 시민으로서 다른 세계 시민들과 교류할 수 있어야 한다. 복거일의 입장에서 영어는 세계 시민들과의 교류 수단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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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방 이후 세대, 탈민족주의자로서의 복거일 ==== 복거일의 영어공용어론과 관련하여 그의 개인사에서 주목할만한 부분은 그가 해방 이후 세대였다는 점이다. 복거일은 해방 이후 태어나 - 이전 세대의 작가들과는 달리 – 일본어 상용이라는 ‘원죄(原罪)’로부터 자유로웠다. 즉 광복 이전 세대의 문인들에 비해 민족 담론에 대해 상대적으로 유연한 입장을 취할 수 있었던 것인데, 이러한 특징은 복거일이 민족주의적 친일 청산론에 대한 우려를 드러냈던 데서도 나타난다. 친일 행위가 청산되어야 한다면 그것은 “친일 행위로서가 아니라 인류에 대한 범죄로서 벌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복거일, 「친일 문제에 대한 합리적 접근」, 『철학과 현실』Vol.53, 철학문화연구소, 2002, 150~151쪽.] 비단 친일 문제에서만이 아니라, 복거일은 민족주의 자체를 일종의 폐쇄주의로 규정하며 한국 사회가 민족주의로부터 극복해야 한다는 주장을 해왔다. 복거일에게 민족주의는 “특수주의particularism”의 속성을 띄며, “전체주의totalitarianism”과 쉽게 결합되는 제도로 이해된다.[* 복거일, 「전체주의 사회에 예술이 존재할 수 있는가?」, 『수성의 옹호』, 문학과지성사, 2010, 78~81면.] 한편으로 복거일은 한국전쟁 이후에는 파주 인근의 기지촌에서 자라며 영어를 익혔고, 미군기지에서 흘러나온 원서들을 읽으며 문학 수련을 했었다. 다시 말해 복거일은 일본어로부터 자유로웠던 대신에 영어의 압도적인 영향 아래 성장했다. 소설가로서의 복거일을 발굴했던 김현이 “복거일의 자신의 원천 중의 하나: 영어를 잘 한다는 것. 비명을 찾아서나 높은 땅 낮은 이야기에서 주인공이 제일 환희를 느끼는 것은 어려운 영어책이나 영어 편지를 잘 읽고 쓸 때이다.”라는 의견을 내놓았던 것은 상당히 의미심장한 대목이다.[* 김현, 「1988년 4월 8일」, 『행복한 책읽기/문학 단평 모음』, 문학과지성사, 1993.] 어쨌거나 복거일은 자신의 영어공용어론이 탈민족주의적 시각에서 진행되었음을 전제한다. 영어를 한국의 공용어로 삼음으로써 앞서 소개한, 전체주의로서의 민족주의를 한국 사회에서 해체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민족주의의 해체가 복거일류 영어공용어론의 궁극적 목적은 아니다. 민족주의를 해체한 후 세계 시민으로서 다른 세계 시민들과 교류할 수 있어야 한다. 복거일의 입장에서 영어는 세계 시민들과의 교류 수단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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