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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티오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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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4,inf
=== 하일레 셀라시에 치세~현재 === 1930년 자우디투가 죽자 마코넨 타파리는 하일레 셀라시에(Haile Selassie)라는 이름으로 즉위하였다. 그는 즉위하자마자 헌법을 제정하고 입헌군주제로 국가를 운영하였다. 그러나 1935년 이 지역을 노리던 파시스트 이탈리아가 에티오피아를 침공하였다. 에티오피아는 결사적으로 맞섰지만 패배하여 황제는 영국으로 망명하고 잠시 이탈리아의 지배를 받았다. 그러다 2차 대전 기간인 1941년 영국이 이탈리아를 몰아내고 황제를 복위시켜 에티오피아는 해방되었고 즉시 연합국으로 참전하였다. 에티오피아는 한국전쟁에도 남한 측에 육군을 파병하기도 하였다. 하일레 셀라시에는 치세 후반에 들어가면서 점점 민주주의적 권력을 제한하고 황제의 권력을 강화하면서 독재자가 되어갔다. 여기에 북쪽에서는 1962년 에리트레아 의회 해산을 계기로 에리트레아 무장 독립 운동이 시작되었고, 옆동네 소말리아와도 오가덴 지역을 두고 분쟁이 벌어졌다. 그러자 자연스럽게 사회 불안은 점점 심해져 에티오피아는 실업과 기근, 잦은 쿠데타에 시달리게 되었고, 하일레 셀라시에는 1974년 공산주의 성향 군인이었던 멩기스투의 쿠데타로 인해 궁전에 유폐되었다가 다음해에 의문사하였다(사실상 살해된 것으로 추정). 멩기스투는 공산주의 정권을 세웠는데 말이 공산주의지 흔한 친소파 막장 독재자 중 하나였다. 멩기스투 시대에 수십만명 이상의 정치범 학살이 벌어졌고, 최대 2백만명의 기근+전쟁 사망자, 그리고 백만 단위의 난민이 발생하였다. 이 와중에 소말리아와 벌인 오가덴 전쟁에서 이긴 것이 신기할 지경... 멩기스투는 80년대 말에 들어 점점 민중들의 불만이 폭발할 조짐을 보이자 민정 복귀를 선언했지만 제도만 바뀌었을 뿐이지 독재정권인 것은 여전하였고, 1988년 좌파 계열 무장단체인 에티오피아 인민 해방 전선(EPLF, 이후 에티오피아 민주인민혁명 전선, EPRDF 으로 변경)이 결성되어 내전 상태에 들어갔다. EPRDF는 1991년 수도 아디스 아바바를 함락하고, 반란 지도자인 멜레스 제나위가 정권을 잡아 새로운 독재자로 즉위하였다. 이런 혼란상황을 틈타서 에리트레아가 1991년에는 사실상, 1993년에는 완전히 독립하여 에티오피아가 내륙국이 되는 바람에 엄청난 경제적 타격을 받았다. 멜레스 제나위는 이런 상황에서도 소말리아, 신생 에리트레아와 전쟁질을 멈추지 않다가 선황처럼 엄청난 기근 사망자와 정치범들을 양산하였다. 그는 5년간 대통령을 맡고 이후 16년간은 수상이 되어 21년의 독재정권을 유지하다가 사망하였고, 후임자로 하일레 마리암 데살렘 총리가 역시 독재자로 즉위하였다. 2000년대 말에 들어 미국발 경제 불황에서 반사효과를 얻어 급격한 경제성장을 하고 있지만 그에 따라 양극화도 심해지고 있다. 2018년 초 마리암 데살렘 총리는 최근 3년간의 반정부 소요사태에 책임을 지고 사퇴하였으며, 후임자로 아비 아메드 총리가 집권하여 정치 개혁을 약속하였다. 에티오피아 민중에게는 다행스럽게도 이 약속은 허언은 아니었는지, 2018년 들어 에티오피아는 정치범 대규모 석방과 함께 상습적 기근과 정치불안을 야기하던 주변국들과의 오랜 분쟁 관계를 청산하기 시작하였고, 정치, 경제 개혁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Include(틀:가져옴2, O=진보위키, C=[[https://creativecommons.org/licenses/by-nc-sa/3.0/|CC BY-NC-SA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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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일레 셀라시에 치세~현재 === 1930년 자우디투가 죽자 마코넨 타파리는 하일레 셀라시에(Haile Selassie)라는 이름으로 즉위하였다. 그는 즉위하자마자 헌법을 제정하고 입헌군주제로 국가를 운영하였다. 그러나 1935년 이 지역을 노리던 파시스트 이탈리아가 에티오피아를 침공하였다. 에티오피아는 결사적으로 맞섰지만 패배하여 황제는 영국으로 망명하고 잠시 이탈리아의 지배를 받았다. 그러다 2차 대전 기간인 1941년 영국이 이탈리아를 몰아내고 황제를 복위시켜 에티오피아는 해방되었고 즉시 연합국으로 참전하였다. 에티오피아는 한국전쟁에도 남한 측에 육군을 파병하기도 하였다. 하일레 셀라시에는 치세 후반에 들어가면서 점점 민주주의적 권력을 제한하고 황제의 권력을 강화하면서 독재자가 되어갔다. 여기에 북쪽에서는 1962년 에리트레아 의회 해산을 계기로 에리트레아 무장 독립 운동이 시작되었고, 옆동네 소말리아와도 오가덴 지역을 두고 분쟁이 벌어졌다. 그러자 자연스럽게 사회 불안은 점점 심해져 에티오피아는 실업과 기근, 잦은 쿠데타에 시달리게 되었고, 하일레 셀라시에는 1974년 공산주의 성향 군인이었던 멩기스투의 쿠데타로 인해 궁전에 유폐되었다가 다음해에 의문사하였다(사실상 살해된 것으로 추정). 멩기스투는 공산주의 정권을 세웠는데 말이 공산주의지 흔한 친소파 막장 독재자 중 하나였다. 멩기스투 시대에 수십만명 이상의 정치범 학살이 벌어졌고, 최대 2백만명의 기근+전쟁 사망자, 그리고 백만 단위의 난민이 발생하였다. 이 와중에 소말리아와 벌인 오가덴 전쟁에서 이긴 것이 신기할 지경... 멩기스투는 80년대 말에 들어 점점 민중들의 불만이 폭발할 조짐을 보이자 민정 복귀를 선언했지만 제도만 바뀌었을 뿐이지 독재정권인 것은 여전하였고, 1988년 좌파 계열 무장단체인 에티오피아 인민 해방 전선(EPLF, 이후 에티오피아 민주인민혁명 전선, EPRDF 으로 변경)이 결성되어 내전 상태에 들어갔다. EPRDF는 1991년 수도 아디스 아바바를 함락하고, 반란 지도자인 멜레스 제나위가 정권을 잡아 새로운 독재자로 즉위하였다. 이런 혼란상황을 틈타서 에리트레아가 1991년에는 사실상, 1993년에는 완전히 독립하여 에티오피아가 내륙국이 되는 바람에 엄청난 경제적 타격을 받았다. 멜레스 제나위는 이런 상황에서도 소말리아, 신생 에리트레아와 전쟁질을 멈추지 않다가 선황처럼 엄청난 기근 사망자와 정치범들을 양산하였다. 그는 5년간 대통령을 맡고 이후 16년간은 수상이 되어 21년의 독재정권을 유지하다가 사망하였고, 후임자로 하일레 마리암 데살렘 총리가 역시 독재자로 즉위하였다. 2000년대 말에 들어 미국발 경제 불황에서 반사효과를 얻어 급격한 경제성장을 하고 있지만 그에 따라 양극화도 심해지고 있다. 2018년 초 마리암 데살렘 총리는 최근 3년간의 반정부 소요사태에 책임을 지고 사퇴하였으며, 후임자로 아비 아메드 총리가 집권하여 정치 개혁을 약속하였다. 에티오피아 민중에게는 다행스럽게도 이 약속은 허언은 아니었는지, 2018년 들어 에티오피아는 정치범 대규모 석방과 함께 상습적 기근과 정치불안을 야기하던 주변국들과의 오랜 분쟁 관계를 청산하기 시작하였고, 정치, 경제 개혁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Include(틀:가져옴2, O=진보위키, C=[[https://creativecommons.org/licenses/by-nc-sa/3.0/|CC BY-NC-SA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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