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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거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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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료 == 김현의 『행복한 책읽기』에 실린 복거일에 대한 언급. 복거일 소설의 이해에 도움이 되겠기에 소개한다. 원래 본문 중간에 삽입되어 있었으나 글을 지나치게 어지럽히는 듯 싶어 뒤로 뺀다. |『행복한 책읽기』에 실린, 복거일에 대한 부분| 1987년 1월 6일 ||4시경에 복거일씨가 들렀다. 언제 봐도 깔끔한 차림인데, 수줍어 하기는 계집애보다 더하다. 그가 하는 말로는, 대전상고를 나왔다고 하는데, 집안에서나 학교에서나 신동으로 꼽혔다고 한다. 하기야 대전상고를 나와 서울상대에 들어갔으니, 그럴 만도 하겠다. 그의 이야기 중에서 들을 만한 것 또 하나: 가난한 사람들은 눈에 금방 띄는 환부(患部)이지만, 진짜 아픈 부분은 몸의 다른 곳이다. 그곳을 보지 못하는 한 총체성은 얻어지지 않는다. 사회라는 거대한 몸 속의 가장 아픈 부분은 정치와 돈이 만나는 자리이다.[br]그의 두 개의 계획: 어렸을 때 자란 파주 근방의 기지촌을 중심으로 한 중편 하나, 그리고 예비군 훈련에 관한 이야기 하나...."기지촌 이야기를 쓰려면 걸리는 것이 참 많아요. 우선 제 아버님만 해도 살아계시거든요...."|| ||1987년 4월 18일 ||복거일의 비명을 찾아서(문지, 1987)를 여러 날에 걸쳐 정독을 했다. 역시 그의 재능은 시에 있는 것이 아니고 산문에 있다. 그의 시는 유럽적 의미에서의 묘사의 시다. 감정을 운문으로 표현한 것이 그의 시인데, 운문의 율격이 강하게 살아 있지 아니한 말이라 시의 울림이 덜하다. 그의 산문은 최인훈의 그것을 읽을 때처럼 단정하고 지적이고 간결하다. 군더더기가 없으면서도 서정적인 점도 최인훈과 닮았다. 그의 소설은 쥬네트가 곁다리 텍스트라고 부른 텍스트의 곁다리를 제대로 읽어야 완전히 이해될 수 있다.|| ||1988년 4월 8일||복거일의 높은 땅 낮은 이야기(문지, 1988)의 장점은 역시 절제다. 내용도 형식도 단아하게 절제되어 있는 이 소설은 그런 만큼 비현실적으로 여겨지기도 하지만, 60년대의 휴전선 묘사로는 한수준을 이루고 있다. 오생근의 해설이 거의 모든 것을 설명하고 있는 것 같다.[br]복거일의 자신의 원천 중의 하나: 영어를 잘 한다는 것. 비명을 찾아서나 높은 땅 낮은 이야기에서 주인공이 제일 환희를 느끼는 것은 어려운 영어책이나 영어 편지를 잘 읽고 쓸 때이다.|| ||1988년 5월 6일||복거일의 오장원의 가을에 대해서는 "감상적인 제스처와 다소 통속적인 지혜"가 주조를 이루고 있다는 성민엽의 지적은 지나치게 날카로운 것 같지만, 넉넉하게 한계를 지적하고 있다.|| ||1988년 8월 2일||복거일의 "보수주의론"(문예중앙, 1988년 여름호)은 앎의 주체가 사회 변혁의 주체이며 이어야 한다는 전제하에 씌어진 글이다. 자기가 알고 있는 것에 따라 사회가 변혁되어야 한다는 생각은, 사회가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변혁의 방향을 틀 수 있다는 것을 견디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무서운, 다시 말해 반-이성적인 폭력이기 때문이다. 그의 보수주의는, 자기가 알고 있는 것의 한도 내에서라는 의미의 보수주의이며, 사회 개혁의 가능성을 믿는다는 점에서 비순응적 보수주의이다. 그것은 일반적으로 자유주의라고 알려져온 것과 같다.|| ||1989년 8월13일||복거일의 '임정'은 그 기도는 좋았지만 깊이는 없어 보였다. 그것이 텔레비전의 속성 때문인지 복거일의 준비 부족 때문인지는 잘 알 수 없다. 두드러진 것은 김구를 이승만보다 앞에 내세웠다는 정도겠는데,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느낌이 든다. 차라리 테러리즘의 옹호로 나갔더라면, 민족주의가 더 선명하게 부각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게릴라를 다루지 못한 것에 대한 변명도 될 수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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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료 == 김현의 『행복한 책읽기』에 실린 복거일에 대한 언급. 복거일 소설의 이해에 도움이 되겠기에 소개한다. 원래 본문 중간에 삽입되어 있었으나 글을 지나치게 어지럽히는 듯 싶어 뒤로 뺀다. |『행복한 책읽기』에 실린, 복거일에 대한 부분| 1987년 1월 6일 ||4시경에 복거일씨가 들렀다. 언제 봐도 깔끔한 차림인데, 수줍어 하기는 계집애보다 더하다. 그가 하는 말로는, 대전상고를 나왔다고 하는데, 집안에서나 학교에서나 신동으로 꼽혔다고 한다. 하기야 대전상고를 나와 서울상대에 들어갔으니, 그럴 만도 하겠다. 그의 이야기 중에서 들을 만한 것 또 하나: 가난한 사람들은 눈에 금방 띄는 환부(患部)이지만, 진짜 아픈 부분은 몸의 다른 곳이다. 그곳을 보지 못하는 한 총체성은 얻어지지 않는다. 사회라는 거대한 몸 속의 가장 아픈 부분은 정치와 돈이 만나는 자리이다.[br]그의 두 개의 계획: 어렸을 때 자란 파주 근방의 기지촌을 중심으로 한 중편 하나, 그리고 예비군 훈련에 관한 이야기 하나...."기지촌 이야기를 쓰려면 걸리는 것이 참 많아요. 우선 제 아버님만 해도 살아계시거든요...."|| ||1987년 4월 18일 ||복거일의 비명을 찾아서(문지, 1987)를 여러 날에 걸쳐 정독을 했다. 역시 그의 재능은 시에 있는 것이 아니고 산문에 있다. 그의 시는 유럽적 의미에서의 묘사의 시다. 감정을 운문으로 표현한 것이 그의 시인데, 운문의 율격이 강하게 살아 있지 아니한 말이라 시의 울림이 덜하다. 그의 산문은 최인훈의 그것을 읽을 때처럼 단정하고 지적이고 간결하다. 군더더기가 없으면서도 서정적인 점도 최인훈과 닮았다. 그의 소설은 쥬네트가 곁다리 텍스트라고 부른 텍스트의 곁다리를 제대로 읽어야 완전히 이해될 수 있다.|| ||1988년 4월 8일||복거일의 높은 땅 낮은 이야기(문지, 1988)의 장점은 역시 절제다. 내용도 형식도 단아하게 절제되어 있는 이 소설은 그런 만큼 비현실적으로 여겨지기도 하지만, 60년대의 휴전선 묘사로는 한수준을 이루고 있다. 오생근의 해설이 거의 모든 것을 설명하고 있는 것 같다.[br]복거일의 자신의 원천 중의 하나: 영어를 잘 한다는 것. 비명을 찾아서나 높은 땅 낮은 이야기에서 주인공이 제일 환희를 느끼는 것은 어려운 영어책이나 영어 편지를 잘 읽고 쓸 때이다.|| ||1988년 5월 6일||복거일의 오장원의 가을에 대해서는 "감상적인 제스처와 다소 통속적인 지혜"가 주조를 이루고 있다는 성민엽의 지적은 지나치게 날카로운 것 같지만, 넉넉하게 한계를 지적하고 있다.|| ||1988년 8월 2일||복거일의 "보수주의론"(문예중앙, 1988년 여름호)은 앎의 주체가 사회 변혁의 주체이며 이어야 한다는 전제하에 씌어진 글이다. 자기가 알고 있는 것에 따라 사회가 변혁되어야 한다는 생각은, 사회가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변혁의 방향을 틀 수 있다는 것을 견디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무서운, 다시 말해 반-이성적인 폭력이기 때문이다. 그의 보수주의는, 자기가 알고 있는 것의 한도 내에서라는 의미의 보수주의이며, 사회 개혁의 가능성을 믿는다는 점에서 비순응적 보수주의이다. 그것은 일반적으로 자유주의라고 알려져온 것과 같다.|| ||1989년 8월13일||복거일의 '임정'은 그 기도는 좋았지만 깊이는 없어 보였다. 그것이 텔레비전의 속성 때문인지 복거일의 준비 부족 때문인지는 잘 알 수 없다. 두드러진 것은 김구를 이승만보다 앞에 내세웠다는 정도겠는데,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느낌이 든다. 차라리 테러리즘의 옹호로 나갔더라면, 민족주의가 더 선명하게 부각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게릴라를 다루지 못한 것에 대한 변명도 될 수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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