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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azy Horse
미친 말(타슝카 위트코, 1842?~1877)은 수우족 오글라라 지파의 전투추장이다. 검은 언덕 사수전에서 큰 활약을 했으며, 현재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전설적인 영웅으로 여겨지고 있다.
1. 삶 ✎ ⊖
1840년에서 1845년 사이 오글라라 부족에서 태어났다. 어렸을 때 이름은 차 오 하(황야에서 혹은 나무 사이에서. 자연과 하나라는 의미)였다. 그는 성장하여 미군과 싸워야 한다고 주장하는 젊은 전사들의 우두머리가 되었으며, 추장이 된 후에 인디언 특유의 의식인 태양의 춤(몸에 상처를 낸 후 거의 탈진할 때 까지 춤을 춰서 탈진할 때 보이는 환영을 통해 계시를 얻는 의식)에서 말들이 미친듯이 뛰어다니는 환상을 보고는 이름을 미친 말(정확히는 '그의 말이 미쳤다')로 바꾸었다.
20대의 젊은 나이에 전투추장이 된 그는 붉은 구름 전쟁 때 역시 뛰어난 사령관인 앉은 소밑에서 싸웠고, 1866년에는 등뼈와 노란독수리라는 오글라라 전사들이 입안한 전략에 따라 윌리엄 페터먼 대위가 이끄는 100명 가량의 미군을 유인하는 역할을 맡아 그들을 섬멸하였다(이것은 엄연히 교전이었음에도 미국 역사에서는 페터먼 학살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수우-샤이엔-아라파호 원주민 부족 연합의 강력한 저항에 직면한 미국 당국은 일단 1868년 화평 조약을 맺고 물러났다.
그러나 1868년의 조약이 말장난으로 점철된 사기문서라는 사실은 10년도 지나지 않아 드러났으며, 1874년에는 평원 원주민의 성지 검은 언덕(원주민 언어로 파하-사파)에서 금광이 발견되는 바람에 미국 정부는 원주민들을 상대로 치명적인 날강도질을 시작하였다. 그 스타트를 끊은 것은 제7기병대와 조지 암스트롱 커스터 대령이었다.
상황이 이렇게 되는데도 원주민들에게 1868년 빛나는 승리를 가져다 준 붉은 구름은 이제 나이가 들고 동부에서 미국 대통령을 여러 번 만나 백인들의 힘을 잘 알게 되었기 때문에 싸움에 소극적이 되어 있었다. 따라서 오글라라 족의 지지는 미친 말에게 모였다. 미친 말은 페터먼 전투 이후 미군들의 전술을 많이 학습한 상태였고, 본인의 전술적 식견도 상당했는지 전열보병을 상대로 경기병으로 측면 공격을 하는, 당연하지만 뛰어난 전술을 통해 1876년 6월 17일 로즈버드에서 미군에게 큰 피해를 주었다. 그리고 며칠 후인 6월 25일 앉은 소와 미친 말 등이 이끄는 원주민 연합 부대는 리틀 빅혼 전투에서 커스터가 이끄는 제 7기병대 350명을 전멸시켜 응징하는 승리를 거두었다. 미친 말은 이 전투 이후 근거지로 돌아가 원주민들의 생활을 계속하려 하였다.
그러나 이 승리가 원주민들에게는 본격적인 파멸의 시작이었다. 미국 당국이 적반하장으로 대규모 병력을 편성해 파병하여 원주민들이 보이는 족족 민간인이든 전사든 가리지 않고 학살하기 시작한 것이다. 원주민들은 이에 일방적으로 당해 앉은 소는 캐나다까지 도망가야 했으며, 미친 말이 이끄는 부족은 조지 크룩 장군이 이끄는 미군들에게 쫓기게 되었다. 미친 말의 부족은 추격대를 효과적으로 따돌렸지만 오랜 도피 생활 끝에 아사 직전에 몰렸다. 미친 말은 결국 1877년 4월 말에 크룩에게 항복하여 원주민 수용소에 갇히는 신세가 되었다. 크룩은 미친 말에게 파우더 강가에 주거지역을 만들어 주겠다는 약속을 했고 더 이상 저항할 방법이 없던 미친 말은 그 말을 믿을 수 밖에 없었다. 그 해 8월 네즈페르세 족이 미군과 전쟁을 벌이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왔는데, 미군들은 이 싸움에 참가할 원주민 용병을 모집하였다. 미친 말 휘하에 있던 많은 전사들이 미친 말의 만류도 듣지 않고 매수당하자, 미친 말은 깊은 환멸을 느끼고는 부족민을 데리고 파우더 강으로 다시 떠나겠다고 소리쳤다. 이 말은 매수된 부족민들에 의해 크룩에게까지 들어갔고, 이 뛰어난 추장을 제거할 기회만 노리고 있던 크룩은 즉각 8개 기병 중대를 파견해 미친 말의 체포를 지시하였다. 미친 말은 이 사실을 미리 듣고 피하였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체포되었다. 9월 5일 그는 압송되는 과정에서 자신의 최측근이었던 작은 거인이 매수되어 인디언 경찰이 되어 있는 것을 보고 말았다. 그는 경찰이 자신에게 짐승에게 사용되는 구속구를 채우려고 하자 저항하다가 단검에 맞고 죽었다.
20대의 젊은 나이에 전투추장이 된 그는 붉은 구름 전쟁 때 역시 뛰어난 사령관인 앉은 소밑에서 싸웠고, 1866년에는 등뼈와 노란독수리라는 오글라라 전사들이 입안한 전략에 따라 윌리엄 페터먼 대위가 이끄는 100명 가량의 미군을 유인하는 역할을 맡아 그들을 섬멸하였다(이것은 엄연히 교전이었음에도 미국 역사에서는 페터먼 학살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수우-샤이엔-아라파호 원주민 부족 연합의 강력한 저항에 직면한 미국 당국은 일단 1868년 화평 조약을 맺고 물러났다.
그러나 1868년의 조약이 말장난으로 점철된 사기문서라는 사실은 10년도 지나지 않아 드러났으며, 1874년에는 평원 원주민의 성지 검은 언덕(원주민 언어로 파하-사파)에서 금광이 발견되는 바람에 미국 정부는 원주민들을 상대로 치명적인 날강도질을 시작하였다. 그 스타트를 끊은 것은 제7기병대와 조지 암스트롱 커스터 대령이었다.
상황이 이렇게 되는데도 원주민들에게 1868년 빛나는 승리를 가져다 준 붉은 구름은 이제 나이가 들고 동부에서 미국 대통령을 여러 번 만나 백인들의 힘을 잘 알게 되었기 때문에 싸움에 소극적이 되어 있었다. 따라서 오글라라 족의 지지는 미친 말에게 모였다. 미친 말은 페터먼 전투 이후 미군들의 전술을 많이 학습한 상태였고, 본인의 전술적 식견도 상당했는지 전열보병을 상대로 경기병으로 측면 공격을 하는, 당연하지만 뛰어난 전술을 통해 1876년 6월 17일 로즈버드에서 미군에게 큰 피해를 주었다. 그리고 며칠 후인 6월 25일 앉은 소와 미친 말 등이 이끄는 원주민 연합 부대는 리틀 빅혼 전투에서 커스터가 이끄는 제 7기병대 350명을 전멸시켜 응징하는 승리를 거두었다. 미친 말은 이 전투 이후 근거지로 돌아가 원주민들의 생활을 계속하려 하였다.
그러나 이 승리가 원주민들에게는 본격적인 파멸의 시작이었다. 미국 당국이 적반하장으로 대규모 병력을 편성해 파병하여 원주민들이 보이는 족족 민간인이든 전사든 가리지 않고 학살하기 시작한 것이다. 원주민들은 이에 일방적으로 당해 앉은 소는 캐나다까지 도망가야 했으며, 미친 말이 이끄는 부족은 조지 크룩 장군이 이끄는 미군들에게 쫓기게 되었다. 미친 말의 부족은 추격대를 효과적으로 따돌렸지만 오랜 도피 생활 끝에 아사 직전에 몰렸다. 미친 말은 결국 1877년 4월 말에 크룩에게 항복하여 원주민 수용소에 갇히는 신세가 되었다. 크룩은 미친 말에게 파우더 강가에 주거지역을 만들어 주겠다는 약속을 했고 더 이상 저항할 방법이 없던 미친 말은 그 말을 믿을 수 밖에 없었다. 그 해 8월 네즈페르세 족이 미군과 전쟁을 벌이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왔는데, 미군들은 이 싸움에 참가할 원주민 용병을 모집하였다. 미친 말 휘하에 있던 많은 전사들이 미친 말의 만류도 듣지 않고 매수당하자, 미친 말은 깊은 환멸을 느끼고는 부족민을 데리고 파우더 강으로 다시 떠나겠다고 소리쳤다. 이 말은 매수된 부족민들에 의해 크룩에게까지 들어갔고, 이 뛰어난 추장을 제거할 기회만 노리고 있던 크룩은 즉각 8개 기병 중대를 파견해 미친 말의 체포를 지시하였다. 미친 말은 이 사실을 미리 듣고 피하였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체포되었다. 9월 5일 그는 압송되는 과정에서 자신의 최측근이었던 작은 거인이 매수되어 인디언 경찰이 되어 있는 것을 보고 말았다. 그는 경찰이 자신에게 짐승에게 사용되는 구속구를 채우려고 하자 저항하다가 단검에 맞고 죽었다.
2. 사후 ✎ ⊖
그가 죽은 지 몇 개월 되지 않아 수우 족은 미주리 강의 척박한 '보호구역'으로 쫓겨나 수용되었다. 그의 시신은 부모에게 인도되었다. 미친 말의 부모는 이송되는 중간에 도망쳐 그의 시신을 운디드 니 근처 어딘가에 매장하였다.
1927년에 사우스 다코타 주 정부는 원주민들의 성지였던 검은 언덕 산자락 러시모어 산에 미국 대통령들의 얼굴을 박아넣는 만행을 저질렀다. 그 석상이 완성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조각가 코자크 지울코브스키는 자신을 선곰이라고 하는 원주민에게 편지를 받게 되었는데, 미친 말의 조각을 제작해 달라는 편지였다. 그는 이 편지에 큰 감명을 받고 검은 언덕을 깎아서 미친 말의 거대 기마상을 조각하기로 하였는데, 미국 정부의 지원을 거절하고 기부만으로 공사를 하고 있기 때문에 100년 가까이 지난 현재도 얼굴만 완성된 상태이다. 다만 이 작품 역시 성지 검은언덕을 훼손하는 것이라 많은 비판을 받고 있다.
1927년에 사우스 다코타 주 정부는 원주민들의 성지였던 검은 언덕 산자락 러시모어 산에 미국 대통령들의 얼굴을 박아넣는 만행을 저질렀다. 그 석상이 완성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조각가 코자크 지울코브스키는 자신을 선곰이라고 하는 원주민에게 편지를 받게 되었는데, 미친 말의 조각을 제작해 달라는 편지였다. 그는 이 편지에 큰 감명을 받고 검은 언덕을 깎아서 미친 말의 거대 기마상을 조각하기로 하였는데, 미국 정부의 지원을 거절하고 기부만으로 공사를 하고 있기 때문에 100년 가까이 지난 현재도 얼굴만 완성된 상태이다. 다만 이 작품 역시 성지 검은언덕을 훼손하는 것이라 많은 비판을 받고 있다.
3. 트리비아 ✎ ⊖
그는 전투 전에 '오늘은 죽기 딱 좋은 날이군!(Today is a good day to die!)'하고 외쳤다고 하는데, 이 내용은 어떤 원주민의 회고록에서만 나오기 때문에 진위는 확실치 않지만 여러 대중 매체에서 질리도록 패러디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