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영실

최근 수정 시각 : 2023-01-29 22:45:21 | 조회수 : 38

蔣英實

조선 초기의 과학자, 기술자.

목차

1.
2. 영상

1.

원나라 출신 귀화인(화교)인 아버지와 기녀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양인과 천인이 결혼하는 양천교혼으로 태어난 자식은 어머니의 신분을 따르는 종모법에 의해 관노 즉 관가의 노비가 되었다. 근데 말이 관노지 아버지가 양인이었고 그것도 상류층일 가능성이 높은 중국 한족이었으니, 후대에 비해 신분제가 느슨하게 작동했던 조선 초기의 실정을 떠올리면 실제로는 양인 취급을 받았을 가능성이 높다. 안 그랬으면 지체 높은 집안 자제들도 하기 힘든 중국 유학에 벼슬까지 했을 리가 없다.

태종 시기부터 등용되어 조선의 과학기술 발전에 많은 공헌을 했는데, 가장 잘 알려진 것이 물시계인 자격루다. 물시계라고 단순히 물이 졸졸 흘러서 눈금이 올라가고 그런 물건이 아니라 굉장히 복잡한 시스템을 가진 자동 시보 장치였다. 그밖에 천문 관측 기구인 혼천의를 개발하기도 했다. 참고로 측우기는 장영실이 아니라 문종이 세자 시절에 만든 거다.(1)

그렇게 잘나가다가 어느 날 조정에서 쫓겨나고 그 후로 기록에서 사라졌는데, 그렇게 만든 죄목이란 임금이 타는 수레가 제작 과정에서 부서졌는데 그것을 감독하는 책임자였다는 것이다. 세종이 타다가 부서진 것도 아니고 그냥 만들다가 부서진 거다.

천출임에도 등용하여 명나라로 유학까지 보내서 선진 기술을 습득하게 하고 이후엔 광범위한 자료 수집으로 장영실이 창의력을 마음껏 발산하도록 도운 진취성과, 잘못 같지도 않은 잘못이 임금의 '옥체'와 관련있다 하여 천재적인 발명가를 곤장 80대나 때려 쫓아내고 다시는 재능을 발휘하지 못하게 만든 경직성은 조선 초기 국가 체제가 어째서 그토록 많은 것을 이뤄내고 이후에는 그렇지 못했는지를 극명하게 드러내는 것이기도 하다.

2.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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