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  
  •  
  •  
  •  
  •  

조광조

최근 수정 시각 : 2023-02-11 01:39:18 | 조회수 : 24
趙光祖

조선의 문신. 호는 정암(靜菴)이다.

목차

1. 비판
2. 영상

1. 비판


夫貴賤之分, 不可侵陵, 嫡庶之倫, 尤當嚴別。
무릇 귀천의 구분은 침범할 수 없고, 적서의 윤리는 엄격히 구별되어야 한다.
현재의 시폐에 대하여 홍문관 부제학 조광조 등이 상소하다


조광조는 유교 사상과 도덕적 정당성을 일관성 있게 고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4년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관료로 재직하면서 도덕적 소양과 현인의 임명 등 유교적 가치를 고취했으나, 정작 경제, 국방, 외교와 같은 사회 문제에 대한 구체적인 정책 대안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 않았고, 이러한 문제들에 대한 그의 접근 방식은 특별히 정의된 바가 없었다. 공정하지 못하다는 비판이 제기된 현량과 실시도 그러하다.

결국 중종과 양반 사림 세력 양쪽의 공격을 받고 기묘사화로 사사되었다.(1) 정작 조광조 본인은 사약을 받으면서도 중종을 믿어 의심치 않아 명령서를 보여달라고 했다고 한다.(2)

2. 영상

(1) 김당택, 〈조선 성종~중종대 정치사의 이해와 '사림파'설〉, 《역사학연구》 제54집, 2014, 25-26쪽.
(2) 조광조의 일을 전교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