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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ttite-Egyptian Peace Treaty
기원전 1200년대(1)에 체결된, 기록상으로 남아있는 세계 최초의 평화조약.
단 세계 최초의 조약은 아닌데, 남아있는 세계 최초의 조약은 기원전 2100년대의 메소포타미아의 도시국가 라가시(Lagash)와 움마(Umma)의 돌에 새겨진 국경 협정이다.
1. 기록 ✎ ⊖
이집트의 피람세스로 찾아온 하투실리스 3세의 사신이 조약의 초안이 담긴 은판을 람세스 2세에게 가져왔다.
이집트 측 기록은 히에로글리프로 쓰여져 카르나크 신전 벽면에 약 40줄 가량 적혀있으며, 또한 라메세움 신전 벽, 아부심벨 신전에 남아있다. 히타이트 측 기록은 쐐기문자로 쓰여져 그곳에서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히타이트의 수도 하투사의 유적지에서 발굴된 점토판에 남아있다.
조약을 체결한 람세스 2세는 이 조약을 신전 벽면에 보란 듯이 새겨 과시의 수단으로 활용했다. 또한 히타이트본에는 없는 람세스 2세를 찬양하는 내용의 전문을 덧붙이고 본문의 표현도 약간 수정했다. 히타이트본에서는 람세스와 하투실리스가 모두 왕으로 표현되었지만 이집트본에서는 람세스를 왕으로 하투실리스를 왕자로 차등을 두었다. 또한 히타이트 측 기록은 아래의 파라오를 찬양하는 전문이 없다.
하투실리스 3세는 조약 체결 뒤에 막대한 지참금과 함께 맏딸을 람세스 2세의 후궁으로 보냈다.
이집트 측 기록은 히에로글리프로 쓰여져 카르나크 신전 벽면에 약 40줄 가량 적혀있으며, 또한 라메세움 신전 벽, 아부심벨 신전에 남아있다. 히타이트 측 기록은 쐐기문자로 쓰여져 그곳에서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히타이트의 수도 하투사의 유적지에서 발굴된 점토판에 남아있다.
조약을 체결한 람세스 2세는 이 조약을 신전 벽면에 보란 듯이 새겨 과시의 수단으로 활용했다. 또한 히타이트본에는 없는 람세스 2세를 찬양하는 내용의 전문을 덧붙이고 본문의 표현도 약간 수정했다. 히타이트본에서는 람세스와 하투실리스가 모두 왕으로 표현되었지만 이집트본에서는 람세스를 왕으로 하투실리스를 왕자로 차등을 두었다. 또한 히타이트 측 기록은 아래의 파라오를 찬양하는 전문이 없다.
스물한번째 해에, 첫번째 달의 스물한번째 날에, 상이집트와 하이집트의 지배아지인 라우세르마 왕(람세스 2세)의 치세에, 태양에게 집권을 허락 받으신 분, 태양의 아들이신 라메스 메리아멘, 영원한 삶을 사시며 영원히 존재하실 분, 아멘라-하르마추 신의 사랑을 받으시는 분, 멤피스의 프타 신, 아세루의 여신 무트, 네페르호테프의 가호를 받으시는 분, 호루스의 옥좌를 계승하신 분, 아버지이신 태양처럼 영원토록 빛나실 분의 치세에…
하투실리스 3세는 조약 체결 뒤에 막대한 지참금과 함께 맏딸을 람세스 2세의 후궁으로 보냈다.
2. 내용 ✎ ⊖
상호 불가침과 기존의 양국 국경을 인정하는 내용 다음으로 쌍무적 방위 동맹이 명시 되었다. 그리고 두 국가의 중요 인물이나 도시가 상대국에 망명 또는 투항할 경우 양국은 이를 받아들이지 말아야하고 상대국에서 도망쳐온 인물은 곧바로 돌려보내야 한다는 조항이 나온다. 또한 이러한 내용도 나온다.
히타이트 왕 하투실리스의 아들은 아버지를 이어 왕위에 오를 것이다. 만약 그에 반대하는 무리가 있다면, 이집트의 왕 람세스는 그들을 징벌하고자 보병대와 기병대를 보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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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기원전 1258년으로 추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