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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 11월 24일 서울 명동의 YWCA회관에서 일어난 민주화 운동 관련 사건이다. 집회의 목적은 유신헌법에 따라 통일주체국민회의가 체육관 선거로 최규하를 대통령으로 선출하는 것을 막고 군부독재의 종식과 대통령 직선제를 요구하려는 것이었다. 이 집회는 박정희의 사망 이후에 최초로 민주화 인사들이 주최한 집회였다.
1. 전개 ✎ ⊖
박정희가 사망한 후에 재야인사들은 간선제로 대통령을 선출하는 것을 막기 위해 집회를 열기로 하였는데, 당시는 계엄령 상황이라 공식적인 집회는 열 수가 없어 할 수 없이 생각한 편법이 가짜 결혼식을 만들어 결혼식의 하객 형식으로 모여서 집회를 여는 것이었다.
이에 민주화 인사들은 연세대 사학과 복학생인 홍성엽(1953~2005)과 그해 작고한 윤형중 신부의 성에 민주주의 정부의 앞글자를 따서 지은 가상인물인 윤정민의 결혼식을 가장하고 청첩장을 돌렸다. 집회는 윤보선, 함석헌이 주도하였으며, 이렇게 11월 24일 YWCA회관에서 신부 없는 결혼식이 열렸다.
신랑 입장 이후 전 공화당 국회의원 박종태가 선언문을 낭독하고 기독청년협의회 회장인 김정택의 선창으로 구호를 외친 순간 경찰이 난입하여 현장에서 98명, 이후 가두시위에서 44명이 추가로 연행되었고, 최종적으로 154명이 연루되어 체포되었다. 윤보선과 함석헌은 고령이어서 서면조사를 받았으나 주요인물 14명은 모진 고문을 당했다.
이에 민주화 인사들은 연세대 사학과 복학생인 홍성엽(1953~2005)과 그해 작고한 윤형중 신부의 성에 민주주의 정부의 앞글자를 따서 지은 가상인물인 윤정민의 결혼식을 가장하고 청첩장을 돌렸다. 집회는 윤보선, 함석헌이 주도하였으며, 이렇게 11월 24일 YWCA회관에서 신부 없는 결혼식이 열렸다.
신랑 입장 이후 전 공화당 국회의원 박종태가 선언문을 낭독하고 기독청년협의회 회장인 김정택의 선창으로 구호를 외친 순간 경찰이 난입하여 현장에서 98명, 이후 가두시위에서 44명이 추가로 연행되었고, 최종적으로 154명이 연루되어 체포되었다. 윤보선과 함석헌은 고령이어서 서면조사를 받았으나 주요인물 14명은 모진 고문을 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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