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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슐러 K. 르 귄

최근 수정 시각 : 2024-11-21 18:39:56 | 조회수 : 1470
어슐러 K. 르 귄


외부:https://pbs.twimg.com/media/GbIxxqwXgAAlUy3.jpg
Ursula Kroeber Le Guin, 1929년 10월 21일~

미국의 소설가. 어슐러 르 귄, 르 귄, 르귄이라고도 칭한다. 사실 르 귄 자신은 자신의 이름을 성만으로 부르거나 중간 이름을 생략하는 것 등을 몹시 싫어하여, 'U.K.르 귄'이나 '어슐러 르 귄'보다는 '어슐러 K. 르 귄'이라 불러줄 것을 여러 차례 요구한 바 있다. 특히 성인 잡지 《플레이보이》에 단편 「아홉 개의 생명」을 기고하였을 때 편집자가 이름을 'U.K.르 귄'이라고 표기하자, 훗날 『바람의 열두 방향』에 이 작품을 재수록하면서 《플레이보이》의 무지함을 비꼬는 서문을 남겼다. 여성주의자로서의 자존심을 보여주는 부분. 다만 이러한 면은 미국판에 한해서이고, 한국에서 출간된 『플레이보이 SF 걸작선』의 표지에서는 작가의 이름을 '어슐러 K. 르귄'이라고 제대로 표기하였다. 본 위키에서 다른 작가들과는 달리 르 귄의 항목의 이름에만 'K.'라는 약자를 남긴 것도 그러한 작가의 뜻을 존중하기 위해서다.

소설, 시, 수필, 아동서 등을 써왔으며 1960년대에 데뷔한 이래 주로 SF&판타지 장르에서 두각을 보여왔다. SF와 판타지 양측에서 업적을 쌓아, 한 때는 르 귄을 SF작가로 봐야는가, 판타지 작가로 봐야 하는가에 대한 소모적인 논쟁이 벌어지기도 했으나 SF와 판타지의 팬덤의 교집합이 점점 커져가는 최근에 들어서는 그저 'SF&판타지 작가'라고 부르는 추세이다. 1972년도 작품인 『머나먼 바닷가』가 전미도서상을 수상한 뒤로는 장르문학 진영만이 아니라 일반 독자들 사이에서도 나름 인정받는 작가이다.

이 때문에 "SF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탄다면 1순위는 바로 어슐러 르 귄이다."라고 하는 다소 희안한 평도 나오는 마당이다. 물론 이러한 평은 다소 과장된 것이기야 하지만 르 귄과 마찬가지로 전미도서상을 수상했던 스티븐 킹이 호러 팬덤을 넘어 일반 독자들 사이에서도 널리 사랑받는 점을 감안한다면 완전히 근거가 없지는 않은 말이라고 하겠다. 물론 한국에서는 스티븐 킹과 비교 자체가 어려울 정도로 고전하는 작가이기는 하지만.

데뷔 이래 40년이 지나도록 신작을 발표하는 등 왕성한 활동을 보이는 작가이지만 6,70년대에 쓴 초기작과 이후에 쓴 후기작에 대한 평가는 상당히 엇갈리는 편이다. 이는 작가가 나이를 먹고 세계 정세가 변함에 따라 초기작에서 보여준 아동/청소년 서적으로서의 성격이나 단순하고 명쾌한 전개 대신 도가나 무정부주의, 민족지학, 여성주의, 심리학, 사회학적 주제 등 다소 복잡한 사고실험에 천착하기 때문이다. 르 귄의 작품 다수(특히 《헤인 연대기》)를 번역했던 이수현을 비롯한 르 귄 팬 상당수는 르 귄의 초기작을 좋아하는 편이지만 후기작을 전작에 대한 작가의 자기부정, 발전 등으로 평가하며 호평하는 독자도 적지 않다.

거리에 관계없이 곧바로 의사소통을 가능케 하는 통신 장비인 '앤시블'이란 SF계의 클리셰를 탄생시킨 작가이기도 하다. 1975년 월드콘의 주빈이었다. 2000년에는 미국의 문화적 유산에 미친 현저한 공로를 인정받아 미국 국회 도서관에서 선정한 '살아있는 전설' 중 한 사람으로 선정되기도 하였다.

목차

1. 생애
2. 주요 작품
2.1. 《어스시》
2.2. 《헤인 연대기》
2.3. 《서부 해안 연대기》
2.4. 기타
3. 영상화
4. 국내 연구 상황
4.1. 학위 논문
4.2. 학술지 논문
5. 외부
6. 영상

1. 생애

캘리포니아 버클리 태생. 아버지는 미국에서 최초로 인류학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콜럼비아 대학교) 미국에서 두번째로 인류학과를 개설한(캘리포니아 대학교 버클리 캠퍼스) 인류학자 알프레드 L. 크뢰버였다. 어머니 시어도라 크뢰버는 르 귄의 아버지에 대한 전기를 썼는데, 이 책은 르 귄의 유년 시절과 훗날 르 귄의 작품에 반영된 요소들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좋은 자료이다. 이를테면 사회인류학에 대한 관심이라던가.

부모가 유복한 학자들이었던데다 세 명의 오빠와 함께 자랐기 때문에, 고독이나 결핍 등과는 거리가 먼 유년 시절을 보냈다. 다만 크뢰버 부부가 유명한 북미 원주민 연구자였던 만큼 부모를 통해서 사라진 원주민들에 대한 증언을 많이 들을 수 있었고, 여름이면 나파 밸리에 있는 농장에 가서 인디언 ‘삼촌’들과 지내며 구전되어온 신화와 전설을 듣곤 했다. 이러한 경험을 통해 르 귄은 유년 시절부터 자연스럽게 인류학적 정서가 몸에 베게 된다.

필립 딕과 같은 시기에 버클리 고등학교를 다녔고, 심지어 졸업반 때는 같은 반에서 수업까지 들었으나 당시에는 서로에게 별 관심이 없었다고 한다. 필립 딕과는 훗날 폴란드의 SF 작가 스타니스와프 렘을 놓고 벌어진 'SFWA 논쟁'에서 대립각을 세우기도 했다. 고등학교 졸업 후에는 래드클리프 칼리지에 진학하였고, 미국 전역의 대학 졸업자 중 극소수의 성적 우수자만이 가입 가능한 파이 베타 카파(Phi Beta Kappa) 클럽에 들어갔다. 콜럼비아 대학교에서 중세 프랑스문학 석사 학위를 받았으며 이후 풀브라이트 장학생으로 파리에 체류하던 중 남편인 역사가 찰스 르 귄을 만났다. 1953년에 결혼. 1958년부터 오레건 주 포틀랜드에서 거주중이다. 슬하에는 세 자녀와 네 손자가 있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문학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11살 때 《어스타운딩 사이언스 픽션》지에 첫 이야기를 투고하였지만 받아들여지지는 않았다.

1960년대 초부터 꾸준히 SF계열의 작품을 발표하기 시작했으며 1970년에 발표한 『어둠의 왼손』이 휴고상과 네뷸러상을 수상하면서 명성을 얻기 시작했다. 이후 40년간 활발하게 활동하면서 작가로서의 경력을 이어갔다. 휴고상과 네뷸러상을 각각 다섯 차례 수상하고 이외에도 SFWA 그랜드마스터로 선출되는 등 장르문학 진영 내의 위치를 확고히 했으며, 장르문학 진영 외부에서도 퓰리처상이나 전미도서상을 수여받는 등 상당한 인정을 받았다. 상당히 완고한 고전 애호가로 정평이 난 비평가 해럴드 블룸도 어슐러 르 귄을 미국의 고전 작가로 인정하였고, 『어둠의 왼손』에 대한 동료 비평가들의 글들을 책으로 엮어내면서 "르 권은 판타지 소설을 고급 문학으로 승화시켰다는 점에서 톨킨을 앞선다. 그녀의 작품에 나오는 탐구자들은 우리가 살 수밖에 없는 세상, 프로이트의 현실원칙이 있는 세상을 떠나지 않았기 때문이다"라고 서문에 썼다. 그레이스 팔레이, 캐롤린 카이저, 게리 스나이더, 존 업다이크 등도 르 귄의 작품에 찬사를 남긴 바 있다.

그 외에는 버몬트나 오스트레일리아 등지에서 창작을 가르치기도 했으며(현재는 은퇴) 그 자신이 많은 영향을 받았던 『도덕경』의 영역본을 내기도 했다. 1979년에는 자신의 소설 『하늘의 물레』를 극화한 동명의 PBS 영화 제작에 관여했으며 1985년에는 아방가르드 작곡가 데이비드 배드포드와 함께 스페이스 오페라인 《Rigel 9》의 대본을 썼다.

2. 주요 작품

※ 한국어 번역본을 중심으로 소개한다. 여기 소개된 책 외에도 다수의 아동서를 썼다.

2.1. 《어스시》

  • 1968『어스시의 마법사』
  • 1971『아투안의 무덤』
  • 1972『머나먼 바닷가』
  • 1975『바람의 열두 방향』
  • 1964「해제의 주문」
  • 1964「이름의 법칙」
  • 1990『테하누』
  • 2001『어스시의 이야기들』
  • 1997「잠자리」
  • 1999「검은 장미와 금강석」
  • 2001「찾은 이」
  • 2001「대지의 뼈」
  • 2001「높은 습지 이야기」
  • 2001『또 다른 바람』

2.2. 《헤인 연대기》

  • 1966『로캐넌의 세계』
  • 1966『유배 행성』
  • 1967『환영의 도시』
  • 1969『어둠의 왼손』
  • 1974『빼앗긴 자들』
  • 1975『바람의 열두 방향』
  • 1964「셈레이의 목걸이」
  • 1969「겨울의 왕」
  • 1971「제국보다 광대하고 더욱 느리게」
  • 1974「혁명 전날」
  • 1976『세상을 가리키는 말은 숲』
  • 1995『용서로 향하는 네 가지 길』
  • 2000『텔링』
※ 이 외에 번역되지 않은 단편 다수.

2.3. 《서부 해안 연대기》

  • 2004『기프트』
  • 2006『보이스』
  • 2007『파워』

2.4. 기타

  • 1971『하늘의 물레』
  • 1979『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거미줄』
  • 2008『라비니아』- 로커스상
  • 2009『날고양이들』

※『날고양이들』은 본래 1988년부터 1999년까지 네 차례에 걸쳐 출간된 시리즈물이지만 한국에서는 이 단편들이 한 권으로 합쳐져서 나왔다. 이에 한국어판 출간 시기를 따랐다.

3. 영상화

르 귄의 주요 작품 중에 영상으로 옮겨진 작품은 그리 많지 않다. 우선 1971년도 작품 『하늘의 물레』가 두 번 극화되었다. 첫번째는 1980년에 thirteen/WNET New York에서 이루어졌으며, 이 작품에는 어슐러 르 귄 자신도 참여했다. 두번째는 2002년에 A&E Network에서 이루어졌다. 1980년대 초에 미야자키 하야오가 어스시 시리즈를 애니메이션으로 만들고 싶다고 제안하였으나 르 귄이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을 잘 몰랐던 지라 이 제안은 거절되었다. (사실 이 당시만 하더라도 르 귄이 아는 애니메이션이란 디즈니 스타일 뿐이었고, 설상가상으로 르 귄은 디즈니 사의 애니메이션들을 꽤 싫어했다)
수년 뒤 『이웃집 토토로』를 본 르 귄은 미야자키 하야오에 의한 영상화를 꽤 긍정적으로 고려하게 되었다. 결국 지브리 필름에서 어스시 시리즈의 3,4번째 작품을 활용한 『게드 전기』라는 작품이 제작되었지만 이 작품은 미야자키 하야오가 아닌 그의 아들이 감독한 작품이었고, 르 귄은 이 작품에 대해 자신의 사이트에서 상당히 복잡 미묘한 감정을 드러내었다. 일단 작품의 기본 구조 자체가 원작에 그다지 충실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게드 등의 캐릭터를 원작과의 묘사와 달리 백인에 가까운 외양으로 그린 것이 르 귄의 신경에 거슬렸던 듯 하다. 80세 생일을 기념하여 황금가지와 했던 인터뷰에서는 뒤에 제작된 『어스시의 전설』과 함께 거론하며 "제작자들에게 배신당한 기분"이라고까지 하였다.

2004년에는 Sci Fi 채널에서 어스시 삼부작의 첫 두 작품을 이용한 미니시리즈 『어스시의 전설』(Legend of Earthsea)이 제작되었다. 르 귄은 자신이 제작 과정에서 차단되었으며, 완성된 작품 또한 자신이 상상했던 어스시와는 상당히 거리가 멀다며 혹평을 가했다. 이 미니시리즈에서 저작권 분쟁이 발생한 결과 미국에서는 2009년까지 발매될 수 없는 처지에 놓이기도 했다.

4. 국내 연구 상황

4.1. 학위 논문

저자논문 제목학교학위연도지도교수
김은정「어슐러 르 귄의 판타지와 과학소설에 나타난 균형의 문제
: 『어스시의 마법사』와 『어둠의 왼손』을 중심으로」
경희대학교 영어영문학과석사2002도정일
최선웅「어슐러 K. 르 귄의 『어둠의 왼손』에 나타난 양성성에 대한 연구」명지대학교 영문학과석사2011이기한

4.2. 학술지 논문

저자논문 제목게재지발행처연도
손영미「미국문학과 타자성의 문제: 어슐러 르 귄과 토니 모리슨」『영어영문학연구』Vol.27대한영어영문학회2001
신두호「어슐라 르 귄의 생태학적 상상력과 「언제나 집으로 돌아오기」」『문학과환경』Vol.2문학과환경학회2003
「어슐라 르 귄의 SF와 환타지 문학에 나타난 노장사상과 조화의 미학」『동서 비교문학저널』Vol.19한국동서비교문학학회2008
한혜정「용, 어린이, 여성
: 어슐러 르 귄의 『테하누』의 반가부장주의와 소녀의 변신」
『현대영미소설』Vol.18한국현대영미소설학회2011

5. 외부

6.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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