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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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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세 === 서로마제국으 멸망과 함께 시작된 중세는 일반적으로 지적암흑기로 여겨진다. 제국은 정치적 영향력을 상실하고 전국이 전란에 휩싸이자 실제로 고대의 문헌들은 거의 소실되었고, 5세기에서 6세기 경에 기독교 철학자들에의해 겨우 명맥을 유지하게되었다.특히 보에티우스를 통해 아리스토텔레스를 비롯한 여러 그리스 지성들의 저술들이 중세 초기 유럽에 남게되었으며 그의 저술은 중세 철학의 기본문제와 방향성을 결정하는데 영향력을 행사하게었다. 한편 9세기 경신성로마제국의 카롤링거 르네상스 시기에 이르러 고전 학문이 잠시나마 재생되어 에리우게나와 같은독창적인 사상가를 낳기도 했지만, 샤를마뉴 대제의 사망과 함께 봉건사회가 시작되어 유럽사회의 탈중심화와 무슬림,북구인등 이민족의 잦은 침략으로 문화적 암흑기가 다시 시작되어 10세기에서 11세기에 이르는 시기간 철학활동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게된다. 그러나 11세기에서 12세기에 이르는 기간 동안 무슬림들의 그리스고전 문헌의 번역본이 유럽으로 역수입되어 중세의 지적활동이 활발해지자 철학활동은 다시 활기를 띄게된다. 이 시기에는 주로 이성과 신앙의 문제, 보편자와 개별자, 신존재 증명등의 문제가 주요 문제였다. 한편 중세유럽이 지적 암흑기였을때 ,동방의 이슬람사회 ,특히 아리비아반도와 페르시아 등지에서 풍부한 철학적 발전을 이루게되었다.이 기간동안 알 킨디(801-866)알 파라비(870-950) 이븐 시나(980-1037)동방 이슬람철학에서 주도적으로 활동했다. 이들은 주로 고전 그리스 문헌에서 출발하여 신플라톤주의를 중심으로하고 그와 함께아리스토텔레스를 바탕으로 독특한 사상을 이루어냈다.특히 동방의 이슬람 철학은 이븐 시나에 이르러 절정에 이르렀다.그는 당시 현존하는 대부분의 학문에 통달한 천재로 그는 철학에서도 다방면의 성과를 이룬다. 공중인간부유사고실험을 통해 르네 데카르트의 코키토 에르고 숨을 선취하여 학문의 독자성을 주장하는 등 중세와 근세 철학의 여러문제에 선구적이면서 독창적인 성과를 나타내었다. 또한 그는 페르시아의 조명학파의 선구자 이기도하다. 한편 이베리아반도에세도 동방과는 독립적으로 철학이 발전했다. 이븐 밧쟈 이븐 투파일 이븐 루시드등이 그 대표자로 동방 이슬람철학이 전성기 이후 인도와 페르시아 등지에서 연구된것과 대조적으로 서방 이슬람철학은 서양사상사에 흡수되었다. 특히 이븐 루시드는 서양 중세철학에 큰 영향을 끼쳐라틴아베로에스주의라는 독특한 학파를 형성하게하고 지성단일성론 논쟁을 촉발하게한다. 이븐 루시드에 이르러 마그레브와 이베리아 무어인의 철학은 절정에 이르었으며 동시에 그의 죽음과 함께 급속히 퇴색되어 창의적인 발전을 멈추게되었다. 한편 이슬람철학은 동방과 서방을 포함하여 신비주의 신학자 알 가잘리에의해 대거 비판되어 그 문서들이 소실되고 지적활동이 위축되어가게됬다 그러나 그 지적 유산은 서양의 신학자들에게 흡수되고 페르시아와 인도에서는 후기 이슬람철학자들에의해 계속되었다. 중세 유럽은 초기에는 에리우게나와사이비 디오니시우스를 비롯한 신플라톤주의를 중심으로 논의를 전개한다. 그러나 보에티우스 에의해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 역시 영향력을 행사했고 플라톤주의와 아리스토텔레스주의 철학은 7세기에서 13세기에 이르는 기간동안 격돌하게된다. 이 시기에는 포르피리오스에의해 제기되 보에티우스가 공론화한 보편자문제가 중심문제로 떠오른다. 카롤링거 르네상스의 토르나스의 오도(878~942)를 시작으로 안셀무스(1033~1109) 샹포의 기욤(1070~1109) 로스켈리누스(1050~1125) 페트루스 아벨라르두스(1079~1142)가 이 문제를 중심적으로 다루었다. 한편 안셀무스 존재론적 신존재증명을 주장하기도했다.또한 모세스 마이모니데스(1135~1204)는 이베리아반도의 유대인 철학자로서 신앙과 이성의 문제를 주도적으로 탐구했으며 토마스 아퀴나스와 바뤼흐 데 스피노자에게 영향을 끼쳤다. 토마스 아퀴나스(1225~1274)는 앞서 서술된 광범위한 사상들을 대부분 파악했으며 이를 바탕으로 기독교신학과 고-중세철학을 방대한 체계에 종합함으로써 스콜라주의를 완선하게된다.특히 그는 보편자문제에는 이븐 시나와 아벨라르두스가 제시한바 있는 완만한 실재론을 주장했고 다섯가지의 신존재증명을 주장했고 인간이 철학적 방법론으로 신을 탐구할수 있다고 봄에 따라 주지주의적 입장을 취한다. 또한 신학과 철학에 중복적인면과 차별점을 들어내 양자가 독립적이며 연관관계가 있음을 주장했고 계시가 이성에대한 우위를 가짐을 인정하였다. 한편 그가 중세철학의 하나의 종합적인 체계를 건설하자 13세기에는 이런 체계를 다시 해체하려는 움직임이 주를 이루었으며 요한네스 둔스 소코투스는 주지주의에 반대해 주의주의를 주장했으며 요한네스 에크하르트는 신비주의를 강조했으며 오컴의 윌리엄은 보편자문제에 관해 유명론을 강력히 옹호했다. 이러한 비판을 시작으로 스콜라주의는 무너져갔으며 르네상스의 근세철학이 시작되었다. * 아우구스티누스(354~430) * 보에티우스(480~524) * 사이비 디오니시우스 * 알 킨디(801~866) * 요한네스 스코투스 에리우게나(810~877) * 알 파라비(870~950) * 토르나스의 오도(878~942) * 이븐 시나(980~1037) * 안셀무스(1033~1109) * 샹포의 기욤(1070~1121) * 이븐 밧쟈 (? ~ 1138년) * 페트루스 아벨라르두스(1079~1142) * 이븐 투파일(1100-1181) * 모세스 마이모니데스(1135~1204) * 이븐 루시드(1126~1198) * 토마스 아퀴나스(1225~1274) * 보나벤투라(1218~1274) * 둔스 스코투스(1266~1308) * 요한네스 에크하르트(1260년~1327) * 오컴의 윌리엄(1285년~1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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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세 === 서로마제국으 멸망과 함께 시작된 중세는 일반적으로 지적암흑기로 여겨진다. 제국은 정치적 영향력을 상실하고 전국이 전란에 휩싸이자 실제로 고대의 문헌들은 거의 소실되었고, 5세기에서 6세기 경에 기독교 철학자들에의해 겨우 명맥을 유지하게되었다.특히 보에티우스를 통해 아리스토텔레스를 비롯한 여러 그리스 지성들의 저술들이 중세 초기 유럽에 남게되었으며 그의 저술은 중세 철학의 기본문제와 방향성을 결정하는데 영향력을 행사하게었다. 한편 9세기 경신성로마제국의 카롤링거 르네상스 시기에 이르러 고전 학문이 잠시나마 재생되어 에리우게나와 같은독창적인 사상가를 낳기도 했지만, 샤를마뉴 대제의 사망과 함께 봉건사회가 시작되어 유럽사회의 탈중심화와 무슬림,북구인등 이민족의 잦은 침략으로 문화적 암흑기가 다시 시작되어 10세기에서 11세기에 이르는 시기간 철학활동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게된다. 그러나 11세기에서 12세기에 이르는 기간 동안 무슬림들의 그리스고전 문헌의 번역본이 유럽으로 역수입되어 중세의 지적활동이 활발해지자 철학활동은 다시 활기를 띄게된다. 이 시기에는 주로 이성과 신앙의 문제, 보편자와 개별자, 신존재 증명등의 문제가 주요 문제였다. 한편 중세유럽이 지적 암흑기였을때 ,동방의 이슬람사회 ,특히 아리비아반도와 페르시아 등지에서 풍부한 철학적 발전을 이루게되었다.이 기간동안 알 킨디(801-866)알 파라비(870-950) 이븐 시나(980-1037)동방 이슬람철학에서 주도적으로 활동했다. 이들은 주로 고전 그리스 문헌에서 출발하여 신플라톤주의를 중심으로하고 그와 함께아리스토텔레스를 바탕으로 독특한 사상을 이루어냈다.특히 동방의 이슬람 철학은 이븐 시나에 이르러 절정에 이르렀다.그는 당시 현존하는 대부분의 학문에 통달한 천재로 그는 철학에서도 다방면의 성과를 이룬다. 공중인간부유사고실험을 통해 르네 데카르트의 코키토 에르고 숨을 선취하여 학문의 독자성을 주장하는 등 중세와 근세 철학의 여러문제에 선구적이면서 독창적인 성과를 나타내었다. 또한 그는 페르시아의 조명학파의 선구자 이기도하다. 한편 이베리아반도에세도 동방과는 독립적으로 철학이 발전했다. 이븐 밧쟈 이븐 투파일 이븐 루시드등이 그 대표자로 동방 이슬람철학이 전성기 이후 인도와 페르시아 등지에서 연구된것과 대조적으로 서방 이슬람철학은 서양사상사에 흡수되었다. 특히 이븐 루시드는 서양 중세철학에 큰 영향을 끼쳐라틴아베로에스주의라는 독특한 학파를 형성하게하고 지성단일성론 논쟁을 촉발하게한다. 이븐 루시드에 이르러 마그레브와 이베리아 무어인의 철학은 절정에 이르었으며 동시에 그의 죽음과 함께 급속히 퇴색되어 창의적인 발전을 멈추게되었다. 한편 이슬람철학은 동방과 서방을 포함하여 신비주의 신학자 알 가잘리에의해 대거 비판되어 그 문서들이 소실되고 지적활동이 위축되어가게됬다 그러나 그 지적 유산은 서양의 신학자들에게 흡수되고 페르시아와 인도에서는 후기 이슬람철학자들에의해 계속되었다. 중세 유럽은 초기에는 에리우게나와사이비 디오니시우스를 비롯한 신플라톤주의를 중심으로 논의를 전개한다. 그러나 보에티우스 에의해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 역시 영향력을 행사했고 플라톤주의와 아리스토텔레스주의 철학은 7세기에서 13세기에 이르는 기간동안 격돌하게된다. 이 시기에는 포르피리오스에의해 제기되 보에티우스가 공론화한 보편자문제가 중심문제로 떠오른다. 카롤링거 르네상스의 토르나스의 오도(878~942)를 시작으로 안셀무스(1033~1109) 샹포의 기욤(1070~1109) 로스켈리누스(1050~1125) 페트루스 아벨라르두스(1079~1142)가 이 문제를 중심적으로 다루었다. 한편 안셀무스 존재론적 신존재증명을 주장하기도했다.또한 모세스 마이모니데스(1135~1204)는 이베리아반도의 유대인 철학자로서 신앙과 이성의 문제를 주도적으로 탐구했으며 토마스 아퀴나스와 바뤼흐 데 스피노자에게 영향을 끼쳤다. 토마스 아퀴나스(1225~1274)는 앞서 서술된 광범위한 사상들을 대부분 파악했으며 이를 바탕으로 기독교신학과 고-중세철학을 방대한 체계에 종합함으로써 스콜라주의를 완선하게된다.특히 그는 보편자문제에는 이븐 시나와 아벨라르두스가 제시한바 있는 완만한 실재론을 주장했고 다섯가지의 신존재증명을 주장했고 인간이 철학적 방법론으로 신을 탐구할수 있다고 봄에 따라 주지주의적 입장을 취한다. 또한 신학과 철학에 중복적인면과 차별점을 들어내 양자가 독립적이며 연관관계가 있음을 주장했고 계시가 이성에대한 우위를 가짐을 인정하였다. 한편 그가 중세철학의 하나의 종합적인 체계를 건설하자 13세기에는 이런 체계를 다시 해체하려는 움직임이 주를 이루었으며 요한네스 둔스 소코투스는 주지주의에 반대해 주의주의를 주장했으며 요한네스 에크하르트는 신비주의를 강조했으며 오컴의 윌리엄은 보편자문제에 관해 유명론을 강력히 옹호했다. 이러한 비판을 시작으로 스콜라주의는 무너져갔으며 르네상스의 근세철학이 시작되었다. * 아우구스티누스(354~430) * 보에티우스(480~524) * 사이비 디오니시우스 * 알 킨디(801~866) * 요한네스 스코투스 에리우게나(810~877) * 알 파라비(870~950) * 토르나스의 오도(878~942) * 이븐 시나(980~1037) * 안셀무스(1033~1109) * 샹포의 기욤(1070~1121) * 이븐 밧쟈 (? ~ 1138년) * 페트루스 아벨라르두스(1079~1142) * 이븐 투파일(1100-1181) * 모세스 마이모니데스(1135~1204) * 이븐 루시드(1126~1198) * 토마스 아퀴나스(1225~1274) * 보나벤투라(1218~1274) * 둔스 스코투스(1266~1308) * 요한네스 에크하르트(1260년~1327) * 오컴의 윌리엄(1285년~1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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