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在寅, Moon Jae-in, 1953년 1월 24일~
대한민국의 변호사, 정치인, 제19대 대통령.
대한민국의 변호사, 정치인, 제19대 대통령.
1. 삶 ✎ ⊖
1953년 1월 24일 경상남도 거제에서 문용형과 강한옥 사이의 둘째 아들(장남)으로 태어났다. 부모님이 가난한 실향민이어서 어린 시절이 풍족하진 못했다. 1965년 부산의 남항국민학교, 1968년 경남중학교, 1971년 경남고등학교를 졸업하였다. 재수 후 1972년 경희대학교 법과대학에 입학했다. 훗날 아내가 되는 김정숙을 1974년에 후배로 만났고, 아래의 1975년 시위 중 도움으로 연인으로서 인연을 맺었다.
1975년 4월 총학생회 총무부장으로 유신 독재 반대 시위를 주도하다 구속되어 징역 8월 집행유예 1년을 선고받고 경희대에서 제적되었다. 동년 8월 입대 후 1978년 2월까지 특전사로 군복무를 했다. 제대 후 사법시험에 몰두하여 1979년 1차 시험에 합격하였다. 그 뒤 1980년 복학 후 대학을 졸업하였고, 2차 시험에 응시하였다. 당시 비상계엄 전국확대 후 신군부에 의해 구속되었고, 유치장에서 합격 소식을 전해들었다. 석방되고 1981년 김정숙과 결혼하였다.
1982년 사법연수원 12기로 차석 졸업하였다. 위의 학생운동 전력으로 판사로 임용되지 못하고 변호사가 되었다. 부산으로 낙향한 그는 노무현 변호사를 소개받아 함께 합동법률사무소(1)를 열고 부산민주시민협의회 상임위원, 국민운동본부 상임집행위원 등을 역임하고 여러 변호를 맡으며 인권 변호사로 활동하였다.
2002년 노무현 변호사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자 부산 지역의 선거대책본부장을 맡았고, 대통령에 당선되자 민정수석에 임명되었다. 그러나 건강악화로 2004년초에 사임하였다가,
노무현 대통령 탄핵소추 및 심판이 일어나자 복귀해 변호사로 활동했으며 시민사회수석비서관, 민정수석, 비서실장을 역임하며 노무현 정부가 끝날 때 까지 활동하였다.
노무현 정부가 끝난 후 변호사로 활동하다가
박연차 게이트로 노무현이 검찰 수사를 받자 다시금 변호사로 활동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 사건이 일어나자 국민장위원회 상임집행위원장을 맡았고, 노무현재단이 설립되고 2010년 제2대 이사장을 맡았다. 이때부터 정치참여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으며, 2012년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을 시작으로 4월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부산광역시 사상구에 출마,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 그리고 제18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해 민주통합당 후보로 당선되었으나 본선에서 박근혜에게 패배해 낙선하였다.
대선 패배 후 국회의원으로 활동하며 세월호 침몰 사고가 벌어지자 단식 투쟁에 참여했다. 2015년 새정치민주연합 당대표로 당선되었으며, 2016년초에 사퇴하였다. 20대 총선 불출마 선언 후에도 꾸준히 정치 활동을 이어가다가, 박근혜의 탄핵으로 조기 대선이 열리게 되고 대선이 가까워지자 출마하였다. 높은 지지율을 유지하며(2) 경선에서 우승해 후보로 확정되었고,
제19대 대통령 선거에서 41.1% 득표율로 제19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당선 후 2022년까지 대통령직을 수행한 후 퇴임하여 양산 사저에서 지내고 있다.
1975년 4월 총학생회 총무부장으로 유신 독재 반대 시위를 주도하다 구속되어 징역 8월 집행유예 1년을 선고받고 경희대에서 제적되었다. 동년 8월 입대 후 1978년 2월까지 특전사로 군복무를 했다. 제대 후 사법시험에 몰두하여 1979년 1차 시험에 합격하였다. 그 뒤 1980년 복학 후 대학을 졸업하였고, 2차 시험에 응시하였다. 당시 비상계엄 전국확대 후 신군부에 의해 구속되었고, 유치장에서 합격 소식을 전해들었다. 석방되고 1981년 김정숙과 결혼하였다.
1982년 사법연수원 12기로 차석 졸업하였다. 위의 학생운동 전력으로 판사로 임용되지 못하고 변호사가 되었다. 부산으로 낙향한 그는 노무현 변호사를 소개받아 함께 합동법률사무소(1)를 열고 부산민주시민협의회 상임위원, 국민운동본부 상임집행위원 등을 역임하고 여러 변호를 맡으며 인권 변호사로 활동하였다.
2002년 노무현 변호사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자 부산 지역의 선거대책본부장을 맡았고, 대통령에 당선되자 민정수석에 임명되었다. 그러나 건강악화로 2004년초에 사임하였다가,
노무현 정부가 끝난 후 변호사로 활동하다가
대선 패배 후 국회의원으로 활동하며 세월호 침몰 사고가 벌어지자 단식 투쟁에 참여했다. 2015년 새정치민주연합 당대표로 당선되었으며, 2016년초에 사퇴하였다. 20대 총선 불출마 선언 후에도 꾸준히 정치 활동을 이어가다가, 박근혜의 탄핵으로 조기 대선이 열리게 되고 대선이 가까워지자 출마하였다. 높은 지지율을 유지하며(2) 경선에서 우승해 후보로 확정되었고,
당선 후 2022년까지 대통령직을 수행한 후 퇴임하여 양산 사저에서 지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