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朴正熙
대한민국의 군인이자, 정치가이자, 제5~9대 대통령이자, 제18대 대통령인 박근혜의 아버지이다.
5.16 군사정변을 주도하였고, 1963년 12월부터 1979년 10월 26일까지 대한민국의 대통령을 역임하였으나, 1979년 10월 26일에 중앙정보부장 김재규에게 권총으로 암살당하였다. 이를 10.26 사태라 한다. 후에 이 시해사건은 12.12 쿠데타의 계기가 되었다.
생전 핵개발을 추진하였으며 그에 대해 다양한 평가가 존재한다. 이를테면, 월남전 파병과 한일협정같은 데에서 평가가 상반된다.
1. 평가 ✎ ⊖
박정희에 대한 평가는 매우 상반된다.
1.1. 긍정적 ✎ ⊖
한국전쟁과 가난으로 인해 피폐해진 대한민국을 국가 주도의 경제 개발로써 한강의 기적을 이루어 내어 대한민국의 경제를 비약적으로 발전시켜서 후에 대한민국이 세계에서 중요한 위치에 서는 데에 큰 역할을 한 대통령이다. 새마을운동을 실시하여 획기적인 농촌 발전을 이루어냈다. 그리고 이 당시의 공업화 정책과 고속도로 개발은 이후의 산업 발전에도 많은 영향을 끼쳤다. 또한 이 당시의 경제개발은 현재의 삼성전자, 포스코 등이 자본을 축적하는 데 큰 도움이 되어, 세계적인 기업이 될 수 있는 밑거름이 되었다. 또한 대통령 비서실장 김정렴의 증언에 따르면 넥타이, 만년필, 전기면도기를 제외한 모든 물건을 국산으로 썼다는 증언이 있는데, 이를 통해서 박정희가 검소한 생활을 했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1.2. 부정적 ✎ ⊖
만주 군관학교와 만주군 장교에 있었던 시기에 대한 친일 행적 논란과 남로당 시기의 행적 논란이 있다. 또한 10월 유신, 인혁당 사건, 민청학련 사건 등에 대해서 민주주의 탄압 논란도 무시할 수 없으며, 경제학자 김수행 등은 박정희의 경제 정책이 높은 착취를 통해서 이뤄진 것이라면서 실제 국민의 삶의 질 개선은 6월 민주항쟁 이후라고 주장하였다. 강준만은 IMF 구제 금융 위기 이후의 박정희 신드롬은 조갑제, 조선일보, 군사 정권의 후신들 등에 의한 박정희 미화라고 비판하였으며, 김영삼 초산 테러 사건, 김대중 납치 사건, 김옥선 파동, 김영삼 국회 제명 사건 등 정적 탄압에 대한 논란도 있다. 진중권 교수는 "경제가 삐걱거릴 때마다 박정희 신드롬이 나타나곤 했다. 박정희 없었으면 아직도 우리가 보릿고개 넘고 있을 거라는 한심한 얘기가 꽤 널리 퍼져 있나 보다."라고 말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