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생일 | 1924년 1월 6일 |
사망일 | 2009년 8월 18일 |
학력 | 고려대학교 경영대학원 중퇴 경희대학교 경영대학원 석사 경희대학교 대학원 경제학 석사 모스크바 대학교 외교대학원 정치학 박사 |
한국의 제15대 대통령. 한국인 최초이자 한강 이전까지 유일한 노벨상 수상자이기도 했다.
1. 삶 ✎ ⊖
1924년 전라남도 신안에서 태어났다. 목포에서 학창시절을 보내고 사업을 영위하다가, 정계에 입문하여 1961년 보궐선거 민의원 당선을 시작으로 6, 7, 8대 총선에서 연달아 당선되며 국회의원을 지냈다. 이 때 민주당 등 각 당의 대변인, 정무위원 등을 역임했다.
제7대 대통령 선거에서 신민당 후보로 출마했으나 박정희에게 패해 낙선했다. 그 뒤 유신정권이 들어서자 일본, 미국에서 민주화 운동을 하다가
김대중 납치 사건을 당한 뒤 가택연금을 당한다. 그리고 1976년
3.1 민주구국선언 사건으로 투옥되었으며, 1978년 가석방되었다.
신군부 집권 후엔
전두환의 김대중 내란음모 조작 사건으로 투옥 후 사형을 선고 받았으나 전 세계적인 구명 운동으로 무기징역으로 감형되었고, 1982년 미국으로 망명을 갔다. 1984년엔 김영삼과 함께 민주화추진협의회를 조직하고 공동의장직을 맡았다.(1)
1985년 귀국한 뒤 1987년 통일민주당 상임고문을 맡았으며, 평화민주당을 창당해 제13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1988년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당선되었다. 1992년 민주당을 창당하고 공동대표최고위원이 되었다. 1992년 제14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정계 은퇴 선언 후 다음 해 영국으로 건너가 케임브리지 대학교에서 1년간 연구 활동을 했다.
1994년 귀국해 아시아·태평양 평화재단을 창립하고 이사장으로 활동했다. 1995년 정계 복귀(2)를 선언하며 새정치국민회의를 창당하고 제15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해 4수만에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대통령 재임 간 IMF 극복, 햇볕정책, IT 육성,
일본 대중문화 개방 등 여러 정책을 수행하였다. 2002년 퇴임 후 생활하다가 노무현 사망 후 건강이 악화되어 같은 해 8월에 사망하였다.
제7대 대통령 선거에서 신민당 후보로 출마했으나 박정희에게 패해 낙선했다. 그 뒤 유신정권이 들어서자 일본, 미국에서 민주화 운동을 하다가
신군부 집권 후엔
1985년 귀국한 뒤 1987년 통일민주당 상임고문을 맡았으며, 평화민주당을 창당해 제13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1988년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당선되었다. 1992년 민주당을 창당하고 공동대표최고위원이 되었다. 1992년 제14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정계 은퇴 선언 후 다음 해 영국으로 건너가 케임브리지 대학교에서 1년간 연구 활동을 했다.
1994년 귀국해 아시아·태평양 평화재단을 창립하고 이사장으로 활동했다. 1995년 정계 복귀(2)를 선언하며 새정치국민회의를 창당하고 제15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해 4수만에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대통령 재임 간 IMF 극복, 햇볕정책, IT 육성,
2. 수상 ✎ ⊖
- 1998년
- 무궁화대훈장
- 국제인권연맹 인권상
- 1999년
- 필라델피아 자유의 메달
- 북미주 한국인권연합 인권상
- 브루노 크라이스키 인권상
- 조지 미니 인권상
- 2000년
- 노벨평화상
- 라프토 인권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