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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최근 수정 시각 : 2024-08-26 14:10:13 | 조회수 : 248

외부:https://pbs.twimg.com/media/FvVXLPjaMAAIQ4a.jpg:large
佛敎 / Buddhism

불(佛)의 가르침을 따르는 종교로, 석가모니가 깨달음을 얻고 제자들을 모음에서 유래하였다. 인도에서 유래된 종교로 인도 철학이 반영되어 있으며, 처음에는 사제를 중심으로 하다가 이후 누구나 노력하면 부처가 될 수 있다는 현재의 불교가 되었다.

목차

1. 교리
1.1. 4성제와 8정도
2. 용어
3. 종류
4. 국가별 불교
4.1. 한국과 불교
4.1.1. 삼국시대
4.1.2. 전란기
4.1.3. 통일신라 이후
4.1.4. 고려시대:조계종과 천태종
4.1.5. 조선시대:숭유억불과 전환점
4.2. 일본의 불교
5. 채식
6. 보살
7. 불경
7.1. 한국의 블경
8. 영상

1. 교리

석가모니를 신앙의 대상으로 삼지만 신으로 모시지 않는다. 왜냐하면 부처란 모두가 될 수 있는 것이나, 그 부처가 되는 깨달음이랄 만한 깨달음이 딱히 어디서 구해올 수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석가모니 뿐만 아니라 모든 부처라고 불리는 것들과 깨달음을 얻은 중생이라고 불리는 것들의 그 가르침을 존중하고 그들의 가르침을 토대삼되 그들의 가르침에만 연연함을 벗어나 자신이 스스로 깨달음을 갖는 것이 불교의 핵심이다.

1.1. 4성제와 8정도


태어나자마자 인간은 고통스럽다.
그 고통엔 이유가 있을 것이고
그 이유를 알 수 있을 것이고, 뭔지 알아냈다면 없앨 수도 있을 것이며, 없애면 비로소 태어날 때 부터 가지고 있던 고통에서 벗어나게 된다.
8가지 수행으로 그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바르게 본다
바르게 생각한다
바르게 말한다
바르게 행동한다
바르게 생활한다
바르게 뭐든 열심히 한다
바르게 정신을 깨워놓는다
바르게 집중한다



이런 고통을 없애기 위해 절에 다니려면 세가지에 귀의해야한다.

부처님에 귀의한다
가르침에 귀의한다
스님들에 귀의한다

2. 용어

  • 공성(空性)/공(空)
마하야나의 진리이지만 딱히 그렇게 불릴만한 개념도 아니며, 테라바다를 저격하려고 만든 개념일 수 있다. 특히 선불교 계통에선 끊임없이 마음을 대상에 집착하지 않고 그 대상을 객관적으로 보려고 노력하는 행위인 참선으로 그 깨달음을 찾는 수행을 수행자들이 하는데, 공이 무엇인지 체험하려고 하고 찾으려고 하는 행위가 허상이다. 가르침을 토씨하나 안틀리게 외워서 전승하고 허구헌날 똑같은 옷입고 동네에서 밥빌어 한 끼 먹는게 도대체 고통에서 벗어나는 깨달음이랑 뭔 상관인가. 고통이 다른게 아니라 자신의 마음에서 오는 것인데 고대 중국말로 된 책 줄줄히 읽고 뜻 알아맞추는 거랑 뭔 상관인가.

3. 종류

기독교가 가톨릭과 개신교로 나뉘어졌듯이 불교 역시도 최대한 초기의 불교의 모습을 지키려고 하고 제대로 교제가 갖춰진 것과 귀족과 사제를 중심으로 심각하게 교조화 된 것에 반동으로 생긴 것이 존재한다. 동남아시아나 스리랑카, 파키스탄 같은 곳에서는 스님들이 맨 몸에 노란 장삼을 입는것으로 익히 알려진 테라바다가 대세고, 티벳과 중국, 그 중국으로 부터 영향을 받은 한국과 일본은 스님들이 회색옷에 붉은 장삼을 두루는 마하야나가 대세다.

4. 국가별 불교

4.1. 한국과 불교

불교는 고대 한국사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4.1.1. 삼국시대

고구려 4세기 소수림왕 시대에 처음으로 불교가 전래되었다. 비슷한 시기에 백제도 재빨리 불교를 받아와 공인했고 삼국 중 그 누구보다 불경을 열심히 연구해서 당시 한반도에서 가장 발전한 형태의 불교문화를 꽃피우고 일본에 불교를 전래 해주는 경지에 이른다. 위의 두 나라는 관료들이 제왕의 힘에 밀려서 빠르게 받아들여졌고 불교로 왕권을 굳건히 했다. 왕즉불 사상과 발전된 지배 철학과 법률은 왕권강화에 안성맞춤이다.

신라는 그보다 좀 늦게 받아왔는데, 신라는 여러 세력이 연합해서 나온 나라...라고 하기엔 좀 애매한 어떤 것이고 그 왕 또한 그 세력의 제사장 중 하나였기 때문에 애초에 왕권이 탄탄하지 못했다. 6세기 법흥왕에 이르러서야 왕실이 불교를 공인시키는데 성공한다. 이차돈의 이야기는 왕과 귀족간의 세력싸움의 이야기이다. 불교를 일찍 들여온 두 나라는 불교로 인한 왕권강화버프가 서서히 떨어지고 있을 때, 불교를 받아들여서 중앙집권체제를 구축시키고 전쟁을 하기 딱 좋은 상황이 만들어진다.

4.1.2. 전란기

숱한 전쟁으로 백성들은 미륵부처에게 자신들의 구제를 빌기 시작한다.

이런 난세에는 걸출한 인물들이 등장한다. 원효와 의상이라는 철학자들이 한반도에 나타난다. 당시 당나라로 유학을 갔던 원효와 의상은 어느 날 한 동굴에서 잠을 청했다. 원효는 며칠 날을 꼬박 걸어다녔던 탓에 자다가 심한 갈증을 비몽사몽 하며 물을 찾던 중 관세음보살이 나타나서 준 바가지의 정수를 받아서 시원하게 마신다. 갈증을 해결한 원효는 편하게 잠에 들었다.

잠에서 깬 원효는 그 물을 다시 찾아서 마시려고 했다. 그러나, 원효가 마신 물은 관세음보살의 정수도 아니고, 바가지도 바가지가 아니였다. 그 물은 사람 두개골에 고인 썩은 물이였다. 그걸 보고는 헛구역질을 한 뒤 생각했다. "심한 갈증을 느껴 간절히 갈구해서 겨우 마신 물은 관세음보살의 정수만큼 상쾌하고 깨끗하고 시원했으나, 그것이 해골물이였다는 것을 알고는 역겨워서 토를 하는구나." 그리고 깨달음을 얻어 더 이상의 유학길을 멈추고 돌아와서 사람들에게 자신의 일을 전파한다.

우리가 원효의 이미지를 기행 등으로 느끼지만 사실 의외로 비범해서 기신론소 같은 좋은 책도 많이썼고 이게 동아시아 대승불교에 큰 영향을 끼쳤다. 의상도 당나라까지 가서 교종계열 중 하나인 화엄종을 공부해 신라로 들여와 화엄종이 신라 귀족들 사이에서 크게 유행한다.

4.1.3. 통일신라 이후

당나라빨로 통일을 이룩한 신라는 매우 안정적으로 국정운영을 할 수 있었다. 원효와 의상의 영향으로 아미타불 신앙, 특히 전후 후유증으로 관음신앙이 세속에 널리 퍼졌다. 불교는 이들에게 왕권강화 외에도 불경을 쓰기 위한 목판인쇄술도 가져다줬다.

당시 중국 당나라에선 달마의 선종이 민간에 널리 퍼졌다. 이 선종은 두가지로 갈렸는데 하나는 수도가 있고 정치가 발전한 화북의 북종선, 경제가 발전한 화남 광동에 있는 조계산의 승려 혜능으로 부터 시작된 시작된 남종선으로 있었다. 북종선은 부처의 가르침을 배워서 열심히 수행하면 깨달음을 얻는다는 생각이라면 남종선은 부처는 우리 안에 있고 이걸 알게 되면 곧바로 부처가 된다는 급진적인 생각이였다.

북종선이 대륙에서 강세였으나 서서히 남종선에 감화되는 모습을 보인다. 신라의 도의는 이 때 남종선을 들여와 처음으로 한반도에 선종을 선보인다. 하지만 화엄종이 워낙 귀족계층에 탄탄해서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결국 선종을 배운 승려들은 산으로 들어가 지방 호족들과 함께 독자적으로 발달했고 나중에는 중앙정권에도 영향력을 끼친다. 이 말은 즉슨 문자와 이론, 철학을 열심히 공부해야하는 교종을 믿는 문벌귀족들의 힘이 약해지고 선종을 믿는 호족들과 무사들에게 힘이 강해졌다는 것을 뜻한다. 백성들도 같이 믿으니 힘이 호족들과 무인들에게 가는 것은 당연지사. 결국 망조에 이른다.

4.1.4. 고려시대:조계종과 천태종

그리고 또 온 천지가 혼란에 휩싸여 백성들은 다시 미륵을 찾기 시작한다. 이 때 궁예가 미륵보살을 자처하며 호족세력의 중심이 된다. 이 힘으로 나라를 전복시킨다. 하지만 워낙 갑작스러운 집권이였기 때문에 왕권이 상대적으로 약해 폭정을 했고, 결국 쫓겨난 후 왕건이 고려를 세운다.

선종의 위험함을 알게된 왕건은 다시 화엄종을 장려하고 이렇게 문벌귀족들이 다시 힘을 가지게 된다. 과거제를 폭넓게 시행한 고려에서는 아얘 승려들도 과거시험을 보게 해서 뽑기 시작한다. 이 때 산으로 흩어졌던 9개의 선종파들이 조계산의 혜능이라는 하나의 뿌리를 찾고 단일화해서 만들어진 거대야당종파가 조계종이다.

교종계열의 문파들도 의천을 중심으로 모여 천태종을 만들었다. 천태종의 세가 약해지고 조계종이 국사를 오랜 기간 맡는 기간이 거의 무신정권 때와 일치한다. 이 때 원나라의 침입에 시달리던 조정은 오랑캐들이 다 불살라서 불경들도 다 태워버릴까봐 지금까지 모아둔 모든 불경들을 찍을 수 있는 8만여 판의 목판을 깎는다. 이게 해인사의 팔만대장경이다. 그 후에도 성리학을 들여온 신진사대부들이 득세하자 교종은 거의 씨가 말랐다. 고려 말에 들으면 왕실과 함께 종교도 같이 부패해서 망조에 이른다.

4.1.5. 조선시대:숭유억불과 전환점

부패한 종교가 혹세무민한다 하여 건국 초기에는 불교에 대한 어마어마한 종교박해가 있었다. 사실 당시에는 중들이 절간에 재산을 축적하고 있던 시대였다. 이성계(1) 가 죽은 후 억불은 더 수위가 높아져 임진왜란 이전까지 불교계는 재산이 몰수되었으며, 산으로 내쫓기고, 신분이 천민으로 강등되었으며, 불씨잡변 같은 책들로 모욕당하고, 우상물을 테러당하는 등 많은 박해를 받았지만 이 또한 전환점이 된다.

승과는 계속 계승되어 궁궐의 여성들에게 영향력이 있었고 선비들에게는 불교가 어느정도 교양과목 수준으로 읽혔다. 백성들에게는 고려시대 때의 창달한 불교문화와 한국의 민간신앙이 적절히 융화되어 건전한 종교생활이 되었다. 약간 사교화 되었지만. 불교 스스로도 조용히 견실해졌다. 부패했던 고려말 보다 훨씬 건전해지고 교리에 가까워졌으며, 백성들과도 친숙해졌다.

걸출한 대사들도 계속해서 나왔다. 무학과 보우, 나옹, 서산, 사명당 등의 승려들이 있었다. 조선 중후기 부터는 본격적으로 난세가 시작되면서 승려들이 전쟁에 의용해서 참가하기도 했다. 사실 말이 좋아 의용이지 조정에서 살생이 금지인 승려들을 강제로 징병해서 갖다 쓴거다. 그리고 후대인들에 의해 호국불교라고 칭해졌다.

4.2. 일본의 불교

일본은 백제와의 교류, 견수사, 견당사를 통해 끊임없이 불교를 받아들였다. 이는 고대 한국사처럼 왕권강화에 목적이 있었다. 현대 일반 대중들은 불교의 교리에는 큰 관심은 없되, 뭔가 공식적인 것을 할 땐 꼭 스님들을 부르고, 염주를 차고, 언어에 불교적인 관습이 있는 등 불교적인 분위기와 모습만 있다.

5. 채식

원래 석가모니 시대 불교에선 육식을 금하지 않았다. 또 오신채의 구별도 없었다. 탁발하는 신세에… 인도니까 향신료도 잔뜩… 오신채를 꺼리는 동아시아의 불교 문화는 후에 중국을 거쳐 한국까지 왔다고 한다. 육식을 금하는 교리는 시대가 지나 극단주의 불교 교파의 교리로 정한 후 그것이 한국으로 퍼졌다라고 한다. 석가모니는 죽을 때 고열과 설사를 하며 죽어갔는데, 상한 고기로 인한 식중독이였다고 한다.

6. 보살

  • 관세음보살: 현세의 중생들을 돌보는 보살.
  • 지장보살: 죽은사람들을 구원하는 보살. 실수로 지옥에 떨어진 착한 사람들을 극락행으로 보내주기도 한다.
  • 미륵보살: 먼 미래에 태어날 후손들을 전부 구원하고 부처가 된다고 한다.
  • 문수보살: 석가모니나 아미타불과 함께하는 보살이다. 중생들에게 깨달음의 지혜를 쉽게 알려준다고 한다.

7. 불경

불교의 경전은 8만개 정도 있다. 이걸 다 모아서 나무에다가 거울모드로 새겨서 찍어낼 수 있도록 한게 해인사의 팔만대장경판이다. 한국 역사에서 이 정도로 문서수집과 데이터베이스화를 열심히 한 역사는 매우매우 드물다. 심지어 고문서를 데이터베이스화 해서 어떤 문서에서 발견한 뜻이 불확실한 사어나 옛말을 동 시대의 다른 문서에 있는 같은 사어나 옛말이 있는 부분과 대조해 뜻을 유추 할 수 있는 프로그램도 외국인 교수가 만들었다.

어쨌든, 초기의 불경은 부처의 입말인 빠알리어로 되어있다. 아쇼카왕 치하에서 많은 빠알리어 경전들이 산스크리트로 옮겨졌다. 마하야나 불경들은 처음부터 산스크리트로 쓰였다. 많은 산스크리트 불경들, 특히 마하야나 불경들이 한문으로 번역되었다. 많은 승려들이 중국과 인도, 네팔, 파키스탄을 오가며 선교를 했는데, 이 승려들을 삼장이라고 한다. 대표적인 삼장이 바로 서역승 구마라집과 당나라 현장이다.

구마라집은 불교가 퍼진 초기에 중국인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로컬라이징을 열심히 했으며, 그럼에도 문체의 아름다움과 운율을 살렸다. 현장의 번역은 조금 직역을 해서 뜻을 최대한 보존했다. 당나라에서는 도교의 선과 대승불교가 융합하여 선불교가 생겨나 대승기신론 등 독자적인 많은 불경이 나왔다. 여기의 영향을 받은 통일신라의 원효는 대승기신론을 해설을 간지나게 해서 대승기신론소를 당나라에 다시 수출하는 경지에 이른다.

일본은 근대에 들어서 활발하게 연구했는데, 마하야나 뿐만 아니라 빠알리어로 쓰여서 번역이 되지 않는 테라바다 초기불경 까지 연구를 했다. 이 결과 많은 빠알리어 미번역 경전들과 아함경에서 중복되는 내용이 발견되어 다시 아함경의 중요성이 대두되었다. 숫타니파타 역시 일본에서 현대어로 처음 번역했고, 법정스님이 이 경을 일본어와 빠알리어 원본을 대조해 한국어로 번역했다.

7.1. 한국의 블경

매우 현대까지 읽기도 어려운 한문으로 된 경전을 읽거나 읊는게 당연했다. 특정한 운율과 같이 독송을 해서 그냥 뜻이 있는 보통 말인데도 주문처럼 생겨서 뭔가 어려운 종교가 되어버렸다.(2)

그래서 많은 재가신자들이 한글로 한국한자음 써놓은것만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달달 읊으며 기도를 했다. 자식 잘되라고 죽어서 지옥에 빠진 사람들 건지고자 하는 서원이 담긴 지장경을 카세트를 틀어놓고 백팔배 기도를 하는 참사까지 오게 된다.

그래도 대한불교조계종이 한문경전을 기반으로 한국어로 번역해서 보급하면서 나아졌다. 종파에서 인정한 번역이라는 점에서 정확한 번역임은 보장되지만 아쉽게도 언어적인 아름다움이나 운율은 조금 아쉽다. 분명 부처는 게송으로 말했다고 하는데 한국어로 들어보니 시도 뭣도 아닌.

8.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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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실 이성계도 고려사람이라 불교 좋아했다.
(2) 주문을 외우는 것으로 대표되는 수행법을 밀교라고 한다. 동아시아, 특히 티벳 불교가 밀교적인 성격이 강하다.